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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22. 2018

모나리자에 수학이 숨어 있다?

캔버스에 숨겨진 수학의 묘수 <미술관에 간 수학자>



한때 몬드리안의 그림이 유행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유행했다. 건물에서, 거실에서, 심지어 거리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문양으로 넣은 냉장고와 치마가 등장했다. 몬드리안의 그림 문양을 새겨 넣은 유리창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냉장고는 모르겠지만, 치마의 역사는 깊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 드레스’를 선보인 게 1996년이다.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도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나도 그렇다. 그림은 잘 몰라도 몬드리안 그림은 안다. 이제 질문을 던질 때다. 도대체 왜 몬드리안인가? 사실 그림은 단순하다. 빨강, 노랑, 파랑의 네모 모양(혹은 노랑에 검정선)이 전부다. 이 그림이 도대체 왜? 누군가 미술관에서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던가? “미술관 전시실에 에어컨이 걸려 있는 줄 알았어.” 


몬드리안의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 <사진 출처=책 본문 중에서>


◇ 몬드리안과 <모나리자>가 위대한 이유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몬드리안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림은 단순하다. 검은색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획을 나눈 후 빨강, 노랑, 파랑 3원색만 사용했다. 비결은 황금비율이다. 검정 수직선과 수평선은 서로 교차하며 사각형의 격자 구조를 이룬다. 모든 격자 구조는 1:1.618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황금 직사각형. 몬드리안 그림의 비결은 색이 아니라 이런 황금비에 있었다. 황금비는 곧 수학이다. 


황금비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수학자였으며 과학자였다. 정확한 황금비는 아니지만, 그림 속에는 황금 직사각형이 들어 있다. 또 그림 속 모나리자의 얼굴 가로길이가 1이라고 하면 세로의 길이는 1.618이다. 턱에서 코 밑까지의 길이가 1이면 코밑에서 눈썹까지의 길이는 1.618이다. 이처럼 <모나리자>에는 여인의 미소만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수학적으로 계산한 황금비가 곳곳에 담겨 있다. 


수학자에게 최고의 영예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공식을 남기는 것이다. 화가에게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일이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 피카소 등이 그랬다. 그런데 수학자와 화가는 작품 속에서 조우한다. 위대한 미술 작품에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수학 공식이 담겨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과 <모나리자>에서 황금비율처럼. 책은 수학자와 화가, 수학 공식과 미술 작품이 만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했다. 


많은 화가가 수학의 미적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그래서 팜필루스는 “산술과 기하를 모르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평행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유클리드 기하학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라며 그것을 그림으로 입증하려 했다. 알브레이트 뒤러는 “나는 수(數)를 가지고 남자와 여자를 그렸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황금비 값을 구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모나리자'의 황금비율. <사진 출처=책 본문 중에서>


◇ 황금비에 이어 원근법의 발견


미술에 수학이 투영된 가장 커다란 사건은 원근법의 발견이다.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림은 마치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를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그림 속 먼 곳의 건물은 점점 작아지고, 가까운 곳 우산을 든 남녀는 당장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것처럼 보인다. 입체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결은 소실점(小失點)이다. 더구나 이 그림에는 소실점이 두 개나 있다. 


소실점의 존재를 밝힌 사람은 페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5세기 화학이자 수학자였던 인물이다. 소실점은 두 직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평행하지 않은 직선은 언젠가 한 점에서 만나게 된다. 그곳이 소실점이다. 원근법이 적용된 회화에는 거의 예외 없이 소실점이 등장한다. 서양미술사에서 회화에 원근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의 <성삼위일체>가 르네상스 회화 중에서 원근법을 가장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꼽힌다. 


마사초와 카유보트의 그림이 수학적 원리를 적용했다면, 수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도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저울질하는 여인>이 대표적이다. 그림 속 여인은 저울의 양쪽 접시에 뭔가를 올려놓고 재고 있다. 저울이 작품의 중심이다. 여인 뒤에는 그리스도 최후의 심판 그림이 걸려 있다. 저자는 이 그림에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처음 주장한 공리(公理)를 떠올린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베르메르는 이 작품에서 저울을 정확히 화면의 중심점과 투시 원근법 상의 소실점이 겹치는 부분에 그렸다. 이것은 진리를 상징하는 물건을 측량하는 도구인 저울의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캔버스를 직사각형이라고 하며, 저울은 이 직사각형 대각선의 교점에 위치한다. 직사각형의 무게 중심에 해당한다. (…) 이것은 수학에서 저울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진리를 찾아내는 기본적인 방법인 등식의 성질이다.”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에는 고대 철학자와 수학자가 대거 등장한다.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거나 수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외에도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겸 철학자)를 만날 수 있는 그림도 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그렇다. 그림 한가운데 두 사람이 서 있다. 왼쪽에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이상주의자 플라톤이다. 오른쪽에서 손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 사람은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다. 


왼쪽에 흰옷을 입고 서 있는 여성은 히피타아,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왼쪽에서 책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고대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의 뒤쪽 기둥에서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사람은 데모크리토스, 그리고 녹색 모자를 쓰고 아기를 안고 있는 노인은 제논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나이를 맞히는 방정식 문제로 유명하다. 제논은 피타고라스학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다양한 역설을 만들어냈다.  


◇ "가장 아름다운 수학자는 화가"


이처럼 수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림에서 수학의 흔적을 부지런히 찾는다. 오랜 세월 수학자들이 밝혀낸 수학의 원리를 점과 선, 면과 색, 원근과 대칭 등 미술의 언어로 화폭에 담은 거장들의 발자취를 좇는다. 그림에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와 수학자, 과학자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한다. 


저자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름다움[美]이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감성의 꽃이라 불리는 미술과 과학의 언어로 불리는 수학의 접점에서 찾으려고 했다. 하긴 미술과 수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수학자는 화가였다”라고.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은 소실점이 두 개인 작품이다.


“수학이 거의 모든 자연과학의 언어이자 논리적 사고의 힘을 키우는 지렛대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지 못하는 순간순간마다 수학은 보이지 않게 우리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가다듬고 우리 삶이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수학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으면서도 작품에 원근법과 황금비 등 다양한 수학 원리를 응용했던 화가들처럼 말이다.” 


저자의 말에서 수학을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교과서의 공식을 아무리 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데 미술관에서 아무리 작품을 뚫어지라 봐도 수학 공식이 보일 리 없다. 사실 수학을 몰라도 작품을 감상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수학을 몰라도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그래도 수학적 시선으로 작품을 본다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원래 수학이란 그런 학문이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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