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올림픽에서 우승한 비결은? ㅣ 과학단상
1984년 LA올림픽에서 최대의 적은 상대 선수가 아니라 폭염이었다. 마라톤은 특히 그랬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막히는 날씨에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일은 그야말로 ‘사투(死鬪)’였다. 당연히 첫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마라톤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놀랄 일이 발생했다. 조안 베이노트(Joan Benoit)라는 선수가 2시간 24분 52초의 뛰어난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비공인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운 데다 세계 신기록과의 차이는 2분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우승 비결에 주목했다. 수능 만점자의 비결이 “교과서에 충실했기 때문”이듯 조안의 비결도 심심했다. 훈련 또 훈련. 그래도 남들과 다른 게 하나 숨어 있었으니 바로 속옷이었다. 그녀가 착용한 스포츠 브래지어는 형상기억 합금 소재로 제작됐다. 형상기억 합금은 심한 운동에도 가슴의 모양과 위치를 유지시켜주고 힘을 분산시켜준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 안테나 소재에 처음 적용됐다. 사람들은 우승을 차지한 조안 보다 그녀의 스포츠 브래지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후 1986년 한 여성 속옷 전문회사에서 일반인을 위한 형상기억 합금 브래지어를 내놨다. 우주기술이 여성들의 아름다운 가슴까지 지켜준 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녹아있는 우주기술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수기도 그렇다. 우주에서는 목욕물, 심지어 소변도 아껴야 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오염된 물을 정화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무실이나 식당, 가정의 필수품이 된 정수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또 요리를 할 수 없는 우주공간에서 진공포장 상태의 우주음식을 간단하게 데워먹기 위해 전기레인지가 만들어졌다. 화재경보기나 단열재는 물론 MRI나 CT, 라식수술, 인공 청각 장치와 같은 의료기술도 우주기술에서 비롯됐다. 국방 관련 기술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돈 쓸 곳이 얼마나 많은데 ‘달나라’ 가는 일에 그 많은 돈을 쓰느냐는 얘기가 가끔 나온다. 우주개발의 궁극적 목적이 어디 달나라 가는 것이겠는가? 그 과정에서 얻는 부수적인 결과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나라마다 우주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진짜 이유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