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완결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답을 찾기 전에 질문을 바꿔보자.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답은 알고 있다(고 간주하자). 전작 「사피엔스」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 후속작 「호모 데우스」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힘도 약하고 보잘것없던 사피엔스는 인지·농업·과학 등 세 개의 혁명을 거치며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사피엔스).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기아·역병·전쟁이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자신을 위협하는 그 세 개의 위협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대신 불멸·행복·신성의 영역으로 조금씩 다가서는 중이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인류는 마침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다(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는 이런 말로 전작 「호모 데우스」를 마무리했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극도의 비참함에서 구한 다음에 할 일을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완결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완결 편이다. 다시 처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지금 세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사건들의 심층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패기 넘치는 진단과 분석, 예측은 이번 책에서도 유지된다. 이 책은 그야말로 우리가, 현재, 지구 차원에서 당면한 곤경의 다양한 면을 다룬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 가짜 뉴스, 위기에 빠진 자유민주주의, 미국과 중국의 대립, 테러리즘, 인공지능,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비약적 발전. 저자 스스로 말했듯 이번에는 앞선 책과 달리 역사적 서사를 가급적 배재했다. 대신 실제로 그동안 대중과 나눈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도출했다. 그래서 언급하는 문제는 더없이 현실적이다.
내가 유발 하라리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을 바탕으로 지구를 지배했다. 뒷담화의 힘이 사피엔스의 힘이다. 그것이 신화와 종교와 민족을 만들어냈다. 국가를 탄생시켰다. 먼 훗날 역사가들은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시작할지도 모른다.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니다. 첫 장 ‘환멸(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사실과 숫자, 방정식보다는 이야기 안에서 생각한다. 이야기는 단순할수록 좋다. 모든 사람, 집단, 민족은 자기 나름의 이야기와 신화가 있다. 하지만 20세기 동안 뉴욕과 런던, 베를린, 모스크바의 글로벌 엘리트들은 세 가지 거대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모든 과거를 설명하고 전 세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진단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시즘의 이야기가 나가떨어졌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격전장이 됐다. 자유주의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를 지배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차례로 무너지고 전 세계를 지배한 자유주의는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1세기 자유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순과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집권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는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 세력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자유주의는 우리의 당면한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생태학적 파괴와 기술적 파괴에 속수무책이다. 저자는 이런 대안을 제시한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격동이 20세기의 참신한 이데올로기를 낳은 것처럼, 다가오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을 맞이해서도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은 치열한 자아 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 모델 구상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 왜냐하면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은 수십억의 사람들을 고용시장에서 밀어내고 자유, 평등까지 위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자리’ 관련 논란만 봐도 그 징조를 알 수 있다).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땐 일이 없을지도 몰라”라는 두 번째 장의 부제는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다. 이미 현실로 나타난 우울한 디스토피아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비관적인가?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인간은 두 가지 능력으로 생존하고 세계를 지배했다. 육체적 능력과 인지적 능력이다. 기계의 발명과 발전은 인간의 육체적 능력과 경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지적 능력까지 위협받고 있다. 그것을 촉발시킨 것은 정보통신 기술과 인공지능 혁명이다. 인공지능은 학습과 분석, 의사소통, 감정 등 인간 고유의 인지적 능력을 추월하고 있다.
그래도 인간 고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고?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비물질적인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컴퓨터, 혹은 인공지능은 운전사와 은행원,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과 욕망이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면, 컴퓨터가 이러한 알고리즘을 해독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 훨씬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한 21가지 주제를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인류에게는 ‘회복 탄력성’이 있다. 인공지능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그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학교의 교육 내용을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력, 창의성으로 당장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결국 인간 고유의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21가지 제언을 마친 뒤 ‘한국 독자를 위한 7문 7답’을 수록했다. 이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나, 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나, 페이스북이 글로벌 공동체 구축을 위한 플랫폼의 주요 후보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등이다. 이게 한국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 제언을 ‘명상’으로 마무리한 것도 미심쩍다. 질문만 던지고 답은 찾지 못한 채 뭔가 도피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의 성찰은 중요하나 그것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해법을 찾는 것은 비겁하다. 과거(사피엔스)와 미래(호모데우스)의 문제에는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 놓고, 정작 현재(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의 문제에는 무딘 칼을 꺼내 든 이유가 궁금하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