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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an 05. 2019

선택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생각의 모험으로 이끄는 열두 번 강의  <열두 발자국>



#1. 마시멜로 챌린지. 처음 보는 사람 네 명이 테이블에 앉는다. 그들에게는 20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 마시멜로 1개가 주어진다. 이 재료를 이용해 탑을 쌓는 게임이다. 주어진 시간은 18분. 모양은 상관없다. 주어진 재료로만 탑을 가장 높이 쌓은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유치원생 4명으로 구성된 팀과 MBA 학생이나 변호사처럼 ‘가방끈 긴’ 어른들로 구성된 팀이 겨루면 누가 이길까?


#2.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 햄릿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주인공이다. 삼촌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데려가 결혼하자 고민에 휩싸인다. 자살을 택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것인지, 삼촌을 죽이고 복수할 것인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Frailty, thy name is woman)”라며 어머니의 부정은 원망하면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햄릿은 며칠 밤을 번민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무엇인가 선택할 때 사람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진 출처=픽사베이>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장선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과 마주한다.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안정적인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지, 불안정하더라도 자신의 자유로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창업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지금 만나는 이 상대와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혹은 계속 만날지 헤어질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도 온다.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이런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장선이라고 할 만큼 소소한 선택과 결정의 문제로 가득하다. 버스를 타고 갈 것인지 지하철을 타고 갈 것인지,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평생 이러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과 마주하는 인간의 존재를 뇌과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선택하는 인간’이다. 어떤 한 사람의 현재 모습은 그동안 그 사람이 과거에 내렸던 선택의 총합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한 사람의 미래는 지금 그 사람이 내리는 선택의 총합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선택과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한다. 


책은 ‘마시멜로 챌린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게임 방식은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 톰 우젝이라는 학자가 실제 실험을 했다(이렇게 호기심 많은 사람 때문에 세상은 돌아간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방끈 긴 어른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았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은 MBA 학생들이나 변호사가 기껏해야 스파게티 하나 높게 쌓지 못한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을 고를 것인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선택을 방해한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마시멜로 챌린지에서 유치원생들이 이기는 이유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들은 일단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다양한 가설과 나름의 원리를 바탕으로 여러 계획을 짰다. 계획이 완성되면 거기에 맞춰 쌓았다. 그렇게 열심히 쌓은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마시멜로를 올려놓는다. 그 순간에 마시멜로 탑은 십중팔구 무너진다. 유치원생들은 달랐다. 일단 명함 주고받기 따위 없다. 자기소개도 없다. 무엇보다 계획을 짜지 않았다. 가설과 원리? 그런 거 없다. 그냥 쌓았다. 도중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러면 다시 쌓았다. 실험 결과, 유치원생들은 주어진 18분 동안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여섯 개의 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이 정말 계획대로 되었는지, 자신이 만든 계획 중에서 성공적으로 완수한 계획은 몇 퍼센트쯤 되는지 돌이켜보세요. ‘내가 왜 이런 짓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정재승 교수는 ‘딴지 총수’ 김어준과의 일화도 소개한다. “제가 ‘나꼼수’의 김어준 씨와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인간이 하는 제일 멍청한 짓이 계획을 세우는 거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계획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이 있다면 그는 아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인간을 골탕 먹이는 재미로 살 것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역시 김어준이다. 중요한 건 계획이 아니라 실행이다. 마시멜로 챌린지의 교훈이다.  


정재승 교수. <사진 출처=정재승 교수 페이스북 페이지>


선택지가 너무 많아 선택 못하는 선태의 패러독스’ 


‘햄릿 증후군’은 우유부단한 사람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서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결정 장애를 앓을 때가 있다. 선택지가 적어 결정 장애를 앓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선택지의 과잉이 결정 장애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른바 ‘선택의 패러독스’. 선택지가 많을수록 우리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만족스러운 결정을 방해하는 현상이다. 


이 역시 실험으로 증명됐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시나 아이엔가와 스탠퍼드대학 마크 레퍼 박사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한 식료품 계산대 근처에 과일잼 판매 부스를 설치하고 시간마다 진열을 바꿨다. 한 번은 6종류의 잼을, 다음에는 24종류의 잼을 판매했다. 당연히 24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하지만 실제 구매는 6종류만 진열했을 때 가장 많았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참 바보 같다. 부끄럽게도 그게 우리의 민낯이다. 결국 햄릿 후군, 혹은 결정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은 선택의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다. 정말 후회하는 일은 선택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을 가장 후회한다. 정재승 교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선택지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한 뒤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인생에서 경험한 선호나 우선순위가 적용됩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에 명확할수록 결정이 쉬워져요.”


성공률 100%의 리더가 되는 방법은 쉽다. 100% 확실한 것만 빼고 아무 의사결정도 안 하면 된다. 그렇다고 정확도 100%의 리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결정했어야 했던 수많은 순간을 놓친 것도 정확도에 포함해야 한다. 결국, 좋은 의사 결정자는 100% 확실한 일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놓쳐서는 안 될 의사결정을 해내는 사람이다.  



어떤 후회를 선택할 것인가?  


‘열두 발자국’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은 크게 12개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에서는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지 등을 탐구한다. 2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에서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지,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등을 강의한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지난 선택의 시간을 돌아보게 마련이다. 동시에 선택과 결정을 기다리는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연말연시가 되면 더 심란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고 미루거나 덮어두는 일이 많았다. 그것을 ‘새해 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나의 우유부단함을 가려오곤 했다. 


무언가를 결정해서 오는 후회는 그나마 극복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해 오는 후회는 극복할 수 없다. 자, 이제 어떤 후회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 어떤 후회를 더 막아야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늘 그렇듯, 선택의 순간은 지금이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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