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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an 13. 2019

사랑받지 못할 존재의 슬픈 운명

과학기술과 인간의 편견에 대한 경고 <프랑켄슈타인>



평생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늘 그렇듯 문제는 사랑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지 문학적 상상과 과학적 공상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사랑과 결핍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결핍 때문에 사랑을 찾지만, 사랑 때문에 결핍을 느끼게 되는 사랑의 역설. 너무 슬퍼하진 말자. 그 힘이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키곤 하니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 개봉한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의 한 장면.  어느 날 밤 다섯 명이 바이런의 별장에 모였고, 이때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 시작됐다.


불꽃과도 같던 메리 셸리의 삶


메리 셸리(1797~1851)의 젊은 시절은 그야말로 불꽃과도 같았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 자신을 질투하는 계모와 이복형제의 틈바구니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출판사 겸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여성 운동가였던 어머니의 묘지에서 고딕소설을 읽고 습작한다. 


그리고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난다. 상대인 퍼시는 아버지의 제자이자 시인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17세.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200년 전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다. 둘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8년에 걸친 긴 유랑과 가난의 시작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시인 바이런의 별장에 다섯 명이 모였다. 함께 여행 중이던 메리 셸리와 의붓자매 클레어, 메리의 불륜 상대이자 미래의 남편 퍼시 등 세 명의 일행이 시인 바이런을 찾아간 것이다. 바이런의 주치의였던 존 폴리도리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따분해할 때 바이런이 하나의 제안을 한다. 길고 지루한 우기(雨期)의 밤을 흥미롭게 해 줄 괴담을 하나씩 써보자는 거였다. 메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날 밤, 별장에서 두 편의 유명한 소설이 탄생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 자리의 주인공들조차. 하나는 메리의 <프랑켄슈타인>이었고, 또 하나는 폴리도리의 <뱀파이어>였다.  


1831년 출간된 <프랑켄슈타인> 표지.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병적인 상상력의 기이한 산물


그날 메리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제대로 된 공포소설을 쓰고 싶었다. 등골이 오싹한 그런 소설. 어느 날 메리는 퍼시와 바이런이 ‘갈바니즘(galvanism)’에 관해 나누던 대화를 우연히 엿듣는고 소설의 모티프를 얻는다. 의사 갈바니가 죽은 개구리 뒷다리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실험에서 유래한 용어였다. 


1818년 마침내 최초의 SF 소설로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됐다. 원제는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였다. 이 소설은 익명으로 출간됐고, 1831년에야 작가의 본명을 밝힌 개정판이 출간된다. 초판 출간 당시 메리의 나이 21세. 이야기를 구상하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열아홉 살이었다. 초판이 익명으로 출간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작가가 분명 나이 많은 남자였을 것으로 생각했다. 문학성보다는 오히려 작가가 누구냐에 관심이 쏠렸다. 


예상과 달리 젊은 여성으로 드러나자 “스무 살이 안 된 여성의 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 낸 기이한 산물”이라는 악평이 이어졌다.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나 현상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혹은 공포. <프랑켄슈타인>은 그것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소설이었지만, 저자도 그 선입견과 벽을 넘진 못했다.   


최초의 SF 소설로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의 과학기술과 인간의 편견이 만들어낸 공포를 그리고 있다. 사진은 1931년 작 영화판의 한 장면.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피조물의 운명


평생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피조물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소설에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이름도 없이 ‘크리처(creature)’로 불린다. 글자 그대로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켰다는 성공의 흥분도 잠시, 피조물의 괴기스러운 형상에 놀라 도망친다. 그렇게 생명이 있는 존재, 크리처는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버려진다. 낯선 존재, 다른 존재는 늘 고독한 법이다. 


혐오스러운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놀라 도망치거나 극도의 혐오로 공격하거나. 겨우 생명을 유지하던 괴물은 어느 허름한 집의 축사에 숨어서 지낸다. 그곳에서 진정으로 ‘생명이 있는 존재’의 삶을 발견한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고 인간의 언어를 익힌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같은 이성의 존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나를 위해 여자를 만들어달라. 내 존재에 필요한 공감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요구는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내 권리의 주장이다.” 당연히 이 요구는 거절당하고, 비극으로 내달린다. 비극은 괴물이 탄생할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피조물은 태생적으로 고독하며, 비극적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숱하게 영화로 만들어졌다. <프랑켄슈타인>을 영화로 만든 최초의 인물이 ‘발명왕’ 에디슨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에디슨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유가 과학기술 만능의 디스토피아를 발견해서인지, 기발한 소설의 발상에 놀랐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천재였던 에디슨이 천재적 작품을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야 하는지 말해 달라.” 사진은 1994년 작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


모든 인류가 나를 증오하지 않는가?”


이 소설이 탄생한 때는 과학의 산물이 기술로 이어지고, 그 기술이 인류의 삶과 문명을 송두리째 바꾸던 시기였다. 과학혁명의 마침내 산업혁명으로 꽃을 피웠다.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많은 것이 이루어졌으나 나는 그 이상을 이룰 것이다. 앞서 찍힌 발자국을 따라 새길을 개척하리라. 미지의 힘을 발굴하고, 창조의 가장 심오한 신비를 세상에 밝히리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야심만만한 외침대로 인류는 마침내 장기를 이식하고, 유전자를 변형하고, 이종교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숱한 경고음(가장 큰 경고음을 내는 곳이 바로 과학계라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에도 인류는 끝까지 가볼 태세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도망칠 태세는 아니지만, 무책임하기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프랑켄슈타인>이 과학 문명이 가져올 미래의 암울한 세상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낯선 존재, 다른 존재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적대감을 들춰낸 것이 이 소설의 위대함이다(이 소설을 쓸 때 메리의 나이가 열아홉 살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이름 없는 한 피조물의 외침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모든 인류가 나를 피하고 증오하지 않는가? 내 창조주인 당신도 나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승리의 기쁨에 젖으려 한다. 그걸 기억하라. 그리고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야 하는지 말해 달라.”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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