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km 떨어진 그곳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금요일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아이와 몇 권의 책을 읽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였다. 도망 다니는 아이를 잡아 양치를 시키고 옷까지 입히면 준비 끝. 아이는 양 손에 우산을 하나씩 쥐어들고 현관을 나섰다. 햇빛이 쨍쨍 비추는 날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산 두 개를 제자리에 걸어 놓고, 화장대로 가 눈썹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는 그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막상 떠나봐. 아이 걱정되고 보고 싶어서 제대로 놀지도 못할걸?
여행을 계획했던 무렵부터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집에 달려가야 하니 정 떠나고 싶거든 가까운 곳으로 가라는 말도 들었다. 28개월이 되도록 반나절 이상 떨어져 본 적 없던 내게 그런 말들은 불안감을 불 지피기에 적당했다. 특히 밤에 떨어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집에서 372km 떨어져 있는 곳. 부산으로 향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여행 내내 걱정됐고, 생각났다.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잘 놀았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자유롭게 하루를 살고 싶었다. 가벼운 손가방을 들고, 발길 닿는 데로 계획 없이 무작정! 기름이 보글보글 끓어 나오는 감바스를 먹고, 조용한 선술집에서 술 한잔 곁들이고, '갬성 오브제'로 가득한 숙소에 머물고 싶었다. 맥주 한 캔 사놓고 동 틀 무렵까지 신나게 수다를 떨고 싶었다. "내일은 늦잠 잘 수 있으니까"
포부와 달리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잠시 숙소 앞 해변을 걸었다. 아직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불현듯 엄마의 첫 외박이 떠올랐다. 내가 10대일 때, 엄마가 40대 일 때다. 친구 집에서 자는 것도 허용되지 않던 집안 분위기였기에 엄마가 '홀로'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는 것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아빠 눈치를 슬쩍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빠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리하여 엄마의 월 1회 외박은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길게는 외국으로 짧게는 전국 각지로. 시간이 정 맞지 않을 때는 누군가의 집에서라도 모인다. 엄마는 그 안에서 나이 들어감의 불안감을 잊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놓치고 살았던 여행의 즐거움을 배웠다. 일상의 활력도 되찾은 듯하다. 산등성이에 일렬로 올라서 만세를 외치거나 꽃밭에 누워 하트를 만드는 엄마들의 모습은 어딘지 귀엽기까지 하다. 이제는 60대가 되어버린 영락없는 소녀들. 그 안에 '엄마' 아닌 박 여사, 송여사, 김여사, 하 여사만 있을 뿐이다. 나의 첫 외박이 그러하듯이.
눈앞에 자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엄마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나의 하루를 채우던 존재의 부재는 이따금 콕 날아와 나를 외롭게 만들기까지 했다. 해운대 해변 열차를 타며, 고운 모래를 밟으며,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을 보며 시시각각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소박한 일탈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는 아이에게 귀속되어 있을 때 진정 빛이 남을 몸소 알게 된 순간이다.
그러니 감히 주저하는 엄마들에게, 또 그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식 걱정하면서, 떠나도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