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결정은 어렵지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 작가가 있다.
사실 사진 작가로 알려진 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거였고,
본인은 사진 촬영하는 행위에 초점을 뒀지
그 사진을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팔거나 전시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상업성을 배제한 순수한 창작 활동만 한 셈이다.
그녀는 부잣집 자녀들을 돌보는 보모라는 직업의 일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우연히 경매에 올라온 그녀의 수만장의 필름을 누군가 낙찰 받고,
그 사진의 결과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뒤늦게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그녀의 미스테리한 일생도 그녀의 사진이 명성을 얻는 데 한 몫 했다.
여기까지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이다. 오늘 퇴근길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퇴근할 생각이다.
스타트업에서 입사 제의가 왔다. 커피챗은 간단하게 성공적으로(?) 진행된 듯 하다.
막상 면접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니까, 지금의 회사가 너무 좋게 느껴진다. 근무 제도도 좋고, 업무량도 좋고, 사람들도 좋다. 물론 처음 입사 후 비슷한 년배의 동료들의 텃새에 적응하는데 작은 부침이 있었고, 경쟁자로 견제하는 그들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은 있었지만 모두 예상한 가능한 수준이었고, 전 회사에 비하면 사람들도 훠얼씬 좋아서 쉽게 털어내고, 지금은 나름 만족하고 있다.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지난 회사에서 진급을 하지 못한 채 급히 이직을 해서,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연봉이 낮다는 거다. 연봉 수준만 맞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장점들이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지만, 가끔 어떨 때는 그 단점이 유독 뾰족하게 마음을 갉아 먹는다. 행복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이니까. 상대적인 환경에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때면 어김없이 불만이 나오고, 그 불만이 심할 경우엔 전에 내 진급을 가로막았던 임원에게 한 바탕 욕지거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인다.
이직 제의가 온 회사는 내 한 몸 희생해서, 우리 가족을 흙수저에서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주는 곳이다. 재테크 관련 회사고, 실제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 회사 내 멘토들 덕에 모두 부자가 되었다는 풍문이 있다.
와이프는 내 한 몸 희생해서, 인생을 바꿔보자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더 닫혀 버린다. 그 저변에 흐르는 나의 심리는 내가 더 잘 알지만, 굳이 여기서 표현하지는 않겠다.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데, 내가 여기서 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스타텁에서 도전하면서 쏟을 에너지는 남아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스타텁 가서 다시 돌아오기엔 기회비용과 매몰비용도 두렵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 작가가 있다. 그녀가 보모라는 삶에서 벗어나 한 발 더 나아가 사진 작가로서 명성을 얻을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았다면 그녀의 삶이 달라졌을까.
나는 지금 숨어서 보모로 일하는 사진 애호가일까, 사진을 적극적으로 찍고 전시하는 사진 작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