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없던 완벽한 축구교실 만들기
2021년 10월, 스페인 명문축구팀인 VALENCIA CF의 한국 공식 아카데미인 발렌시아CF 아카데미 서울(이하 VCF서울)에 Product Manager로 합류했습니다.
VCF서울이 몸담은 도메인(분야)는 예전에 제가 실패했던 스포츠, 교육 영역이었습니다. 저를 아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완전한 IT도 아니고, 성공의 경험이 있는 도메인이 아닌데 왜 다시 들어가냐고요. 어리석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 가늠하고 싶다.'
성장에 대한 욕구, 도전에 대한 갈망. 불가능을 극복하는 쾌감과 재미. 몸치였던 제가 축구를 배우고 연습하며 느꼈던 그 감정들을 비즈니스에서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습니다.
합류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VCF서울은 1년 전 보다 10배 이상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확보한 Scalability를 통해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VCF서울 프로덕트의 성장 과정을 공유 해 보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첫 글인지라 오늘은 합류 과정과 배경설명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본격적인 프로덕트 제작/기획기는 다음 글 부터 진행됩니다 ㅎㅎ)
[목차]
1. 실패와 성장
2. VCF서울에 합류하다
2016년 저는 스포츠 소셜벤처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B2G, B2B로 신체활동 프로그램/이벤트를 교육하고 운영했습니다. 작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B2C 영역에서는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지역의 아파트에 꽃을 돌리며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 커뮤니티를 활용해 클래스를 열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죠. PMF(Product Market Fit)를 찾는데 실패 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비즈니스의 기본도 모르고 무작정 덤볐던 것 같습니다. 좋은 팀원들과 함께 했지만, 아쉽게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2017년에는 공유 모빌리티 스타트업에 있었습니다. 학원 셔틀을 공유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였고, 수십억의 투자를 받은 꽤 유망한 곳 이었습니다. MVP(Minium Viable Product)와 PMF는 검증했고, 여러 지역에 확장하며 Sacle-up만 하면 된다고 했죠. 실패 후 성공의 경험에 목말랐던 저에게는 꽤 괜찮은 상황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Scalability를 확보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확장하여 운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고, 결국 Cash Flow가 막혀 폐업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공동창업자도, 경영진도 아니었지만, 회사가 고용했던 기사/동승자에게는 해고를, 본사의 직원들에게는 권고사직을 통보하는 역할을 제가 맡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퇴직금을 주기 위해 서비스 이름을 건 마지막 운행을 직접하고, 회사의 남은 자산을 최대한 처분한 뒤 퇴사하였습니다. 직접 금전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경영진에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이 때의 착잡한 감정은 꽤 오랫동안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성공의 경험을 위해 스타트업에서 몸 담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곰곰히 생각 해 본 뒤, 성공을 바라던 마음이 잘못된 방향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성공은 실패를 통한 성장의 결과였기 때문이죠.
성공 보다는 성장에 집중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는 1)실패를 인정하고 2) 실패를 교훈삼아야 하고 3) 계속해서 다시 일어서야 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Win or Learn의 마음가짐, 좌절과 실패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가 성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다 보면 성공의 열매가 따라오는 것이고, 성장이 멈추면 실패의 경험이 쌓이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직접 경영한 회사의 실패가 아니었기에, 저렴한 수업료로 실패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후 몇 개의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작은 실패와 작은 성공을 반복하며 의미있는 경험과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VCF서울의 입사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스포츠, 교육 도메인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스포츠 선진국과 다른 문화, 줄어드는 학령인구, 부족한 인프라 등... 논리적으로 생각 해 보면 무조건 실패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큰 Tech 기업에 들어가 연봉도 뻥튀기 하고, 괜찮은 네트워크도 만들어서 나중에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게 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성공 보다는 성장이 중요함을 배웠음에도, 아직까지 성공에 목말라 있던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 성장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을까.
누가 봐도 안될 것 같은 영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실패하면 또 배웠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대표인 최문한님이 말하는 회사의 미션과 비전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제가 보고 싶고, 만들고 싶은 세상의 모습과 일치하기도 했습니다.
미션 Mission
팀의 존재 이유이자 해결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문제
스포츠 문화의 올바른 확산
비전 Vision
미션을 달성했을 때 볼 수 있는 세상의 모습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스포츠를 쉽게 즐기는 세상
그렇게 VCF서울에 Product Manager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도전하자.
스스로 납득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더 성장 해보자.
VCF서울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 더모스트그룹'은 2020년 발렌시아CF와의 계약을 통해 한국에 발렌시아CF의 공식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메인 비즈니스는 엘리트 선수반(프로선수 지망생을 위한 교육) 운영이었죠. 이는 제가 합류하던 2021년 3분기 까지도 유지되던 기조였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COVID-19로 인해 오프라인 훈련은 쉽지 않았고, 학령인구 감소로 유소년 연령대에서 축구선수를 하겠다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 선수 확보도 쉽지 않았습니다. 강의 횟수와 수강생 수가 곧 매출인 교육 비즈니스에는 치명적이었죠.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장기간의 체질개선을 위해 문제를 깊숙히 들여다 봤습니다. 그리고 VCF서울이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2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선수 확보의 어려움
출생아수가 줄어들며 유소년 선수 수급이 힘들어지고 있었고, 더 힘들어질 예정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 60만명이었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20년대엔 20만명대로 줄었습니다. 간단한 통계적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불보듯 뻔했습니다. 축구를 하겠다는 사람도 줄거고, 그 줄어든 사람들 중 축구를 잘 하는 아이들 수는 더더욱 줄 것이었습니다. 인구통계를 통해 상황을 예상 해 보면, 없어지는 프로구단이 수두룩 할 것이고, 국가대표축구팀은 인구가 많은 동남아에 밀려 월드컵 진출이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대표 출신 유명코치도, 국내 시장에서의 브랜드 신뢰도도 없는 VCF서울이, 인구의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시장에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국가대표급 선수를 다수 키워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훌륭한 시설의 확보가 먼저 필요했죠. 시간 걱정 없이 실력을 늘리게 훈련 할 수 있어야 아이들을 좋은 선수로 키워볼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국가대표 키우기 전략은 당시의 VCF서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음껏 훈련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2) 경기장 확보의 어려움
축구는 100미터 * 65미터의 넓은 필드 위에서 90분 동안 경기가 진행됩니다. 이 넓은 공간에서 공을 드리블해야 하고, 공을 원하는 거리와 방향으로 차내야 하며, 공이 나에게 없을때는 공을 빼앗거나 받기 위해 빈 공간을 쉴새 없이 뛰어다녀야 합니다. 그러니 축구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면 넓은 공간에서 꾸준히 훈련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국내에는 넓은 운동장이 부족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운동장도 공공시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넓은 운동장을 쓰기 위해서는 직접 사설 구장을 조성하거나, 이미 조성된 사설 구장을 빌려쓰거나, 공공기관과 협력하거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구장 조성과, 구장 대여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VCF서울이 보유한 빈약한 자본력으로는 힘들었습니다. 해서 VCF서울의 최문한 대표는 여러 지자체의 기초의원, 기초단체장, 교육기관장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네트워킹을 했음에도 성과는 없었습니다. COVID-19와 기존 사업자와의 형평성 때문에 장기간, 장시간 엘리트 선수 훈련을 위해 운동장을 대여해 주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VCF서울은 새로운 성장 방식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VCF서울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더모스트그룹'의 미션은 스포츠 문화의 올바른 확산 입니다.
해외생활을 오래 했던 VCF서울 최문한 대표는 항상 외국의 스포츠 문화를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동네 어귀에 나가서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하고, 주말 오전에 지역 리그에 참여하며, 주말 저녁에 지역의 최고리그 팀을 응원하는... 선진국들은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에 스포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동네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인생의 교훈을 얻으며 성장합니다. 최문한 대표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업을 했던 것이죠.
우리는 VCF서울이 가진 자원으로,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엘리트 선수반을 운영하는게 과연 최선일지 고민 했고,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좀 더 본질적인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맞다고 판단했죠.
우리가 바라는 세상, 스포츠 문화가 확산되며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스포츠를 즐기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생겨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포츠가 재밌다는걸 진작부터 알고, 인생의 일부가 되도록 교육하고 습관화 해야만 했죠.
공교육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체육 선생님은 부족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시간은 매우 적습니다. 기형적인 입시제도, 범죄와 사고에 대한 우려로 아이들을 밖에서 마음대로 뛰어놀게 놔두는 부모도 적습니다. 아이들은 집-학교-학원-집의 사이클에서 10여년을 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에 대한 경험이 박탈당합니다. 스포츠를 경험하기 전 까지는 스포츠가 재밌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스포츠가 왜 재미있는지, 어떻게 재미있는지 알 기회가 적어집니다.
우리는 이 사이클을 깨부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스포츠(축구)가 진짜 재밌는 것 이란걸 알려주자.
잘 하면 선수가 되고, 취미로 동호회에 들어가고,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
이를 위해 아이들의 스포츠(지금은 축구) 접근성을 낮추자.
이를 구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성장해 나간다면, 언젠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설정한 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정의 내리기로 했습니다. 미션과 비전에 맞는 전략과 로드맵을 준비하며, 이를 빠르게 실행해 우리의 생각을 검증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미션과 비전, 전략과 로드맵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용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 우리의 생각을 담은 용어를 합의하고, 이를 실행하는데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더모스트(VCF서울)는 이미 멋진 미션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미션 Mission
팀의 존재 이유이자 해결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문제
스포츠 문화의 올바른 확산
비전 Vision
미션을 달성했을 때 볼 수 있는 세상의 모습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스포츠를 쉽게 즐기는 세상
이걸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다음과 같이 세웠습니다.
전략 Strategy
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
[STAGE 1]
(대외비)
[STAGE 2]
(대외비)
[STAGE 3]
(대외비)
위 과정 중 일부를 실패한다면, 빠르게 피보팅한다.
출생아 수가 2~3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감소 했기 때문에, 2-30년 뒤에 축구 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을 기존보다 2배 이상 늘리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축구교육시장에는 당장 5년 뒤부터 닥칠 이야기 입니다.) 축구를 좋아해야, 교육도 받을거고, 교육을 받아야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선수가 안되더라도 좋아하는 축구를 취미나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기며 축구 시장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규모가 큰 축구부터 시작해, 다른 비인기종목이나 특수종목으로 우리의 비즈니스를 통해 참여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션과 비전이 언젠가 달성 될 것이라 믿습니다.
로드맵 Roadmap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이정표
1. 2021년 내에 취미반에 대한 MVP(Minimun Viable Product)를 검증한다.
2. 2022년 1분기 까지 1번 지역에서 PMF(Product Market Fit)를 달성한다.
3. 2024년 1분기 까지 최소 3개의 센터를 확보한다.
빠르게 우리의 교육방법론과, 운영 시스템을 확립해야 했고, 그게 시장에 먹히는지 검증하여 작은 J커브를 그리는게 Stage 1까지의 전략이기에, 이를 위한 큰 마일스톤을 잡았습니다.
사실 로드맵을 처음부터 디테일하게 짰던 것은 아닙니다. 러프하게 아이디어 스케치 정도만 해 두고, 검증은 잠재고객군에게 물어보면서 진행했습니다.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우리는 가설을 세운뒤 고객에게 직접 물어보는 UX리서치로 모든 일을 시작합니다.)
큰 방향성이 잡히자, 할 일이 명확히 보였습니다.
바로 우리의 Product를 구체화 시키는 일 이었죠.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