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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준 Sep 05. 2024

스타트업 이직 대신, 창업을 선택한 이유

리스크를 두려워하던 나를 발견한 이야기



회사에서 일을 제일 잘 하지만,
창업 정도의 리스크는 지지 않는 사람



창업할 생각은 없어요?



2017년, 당시 다녔던 H사에 투자했던, VC 대표님과 고민 상담을 위해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어떤 이유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몰랐다. 잠재력이 있어 보여서? 만약 좋은 뜻과 아이템이 있다면 투자를 해 줄 수 있어서? 그냥 인사치레로? 8년 전이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장은 없다는 식으로 답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창업이란 좀 더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응당 "대단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큰 시장과 큰 문제, 큰 의지, 엄청난 비즈니스 역량… 돌이켜보면 꽤나 오랫동안 마음 깊이, 보이지 않게 대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리했던 것 같다.



처음 일을 시작한 직후 2개 회사가 연달아 망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나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일을 잘해야 한다고 믿었고,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누군가의 눈물로 이뤄진 반면교사와 성공의 방정식을 공부한 덕분에 직접 실패하지 않고도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노하우를 많이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애자일 철학에 기반한 린과 그로스해킹 방법이었다. 작게 실패하고 배우고 개선해 나가는 것. 이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


나의 노력은 빛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씩 성공의 경험이 쌓여갔다. 세번째 회사인 S사에서는 5배 이상의 매출 성장과 함께 동료에게 인정 받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네번째 회사인 D사에서는 대기업 수준의 보상을, 발렌시아CF 아카데미에서는 Zero Base에서 고객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다. “대단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직할 때도 더 좋은 조건, 더 큰 회사로 가고자 했다. 보상과 안정을 “개선”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준비”는 실체도, 끝도 없었다.


“언젠가 내 사업을 할 거야”라는 마음은 계속 있었다. 다만 준비한다는 것으로 안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실패가 두려워 준비만 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물론 직장 생활을 통해 많은 배움과 도움을 얻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일을 잘하게 되고, 더 인정받고,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는 직장인 사이클에 최적화될 뿐, 내 사업을 하게 될 “언젠가” 와는 한 치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리스키 한 스타트업 씬에 있고,

도전과 개선을 통해 성과를 내는 일잘러를 지향했지만,

정작 나는 도전의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모순을 깨달은 뒤,

8년 전 나에게 창업할 생각 없냐는 투자사 대표님의 질문도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하면서 배우고 채워 나가야 하니, 기왕이면 빨리 하는 게 낫다.”


그래서 이직 대신 나의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꽤나 오랜만에, 불면증이 다시 찾아왔다.


불면을 유발하는 원인과 증상을 설명하자면,

1. 침대에 누우면 몸이 V자로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엉덩이만 너무 들어갔다.
2. 메모리폼은 내게 너무 더웠다.
3. 1과 2 때문에 새벽에 깼고, 다음날 집중력이 박살 났다.


이사하면서 새로 샀던 Z사의 저렴한 메모리폼 매트리스가 범인이었다. 예전에 불면증을 극복한 경험도 있었고, 수면 브랜드에서 일 한 경험도 있었는데 방심했다. 사용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구도 이슈(꺼짐 현상)가 생겼음 알 수 있었다.


매트리스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수면 브랜드 S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멤버 중 한 명인 재원님의 결혼식 청첩장 모임이었다.


가벼운 안부 인사와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자연스레 비즈니스로 주제가 옮겨갔다.


우리가 함께 일했던 S사는 초기에 성장을 견인했던 직원들이 퇴사 한 뒤 성장이 꺾였다. 야심 차게 준비한 신제품들이 계속해서 아쉬운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재원님은 컨설팅 차원에서 이커머스 시장을 조사하던 중, 우리가 일했던 S사를 제외하고, 모든 매트리스 브랜드의 매출이 늘었단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모임에서 헤어진 뒤, 나는 수면에 도움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문제를 겪었던 분야였고, 불면 때문에 미칠듯한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5년이 지나긴 했지만, 해 봤던 영역이었고, 꾸준한 수요가 있는 영역이었기에 수면 브랜드를 창업하고 수면에 도움 되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거란 자신이 생겼다. 


며칠 뒤, 재원님이 함께 있는 카톡방에서 수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Catch the wave


나는 VCF서울에서 퇴사한 뒤, 파도가 좋은 날 부산이나 양양으로 가서 서핑을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서핑을 하는 날은 항상 기분이 좋지만, 중간중간 아쉬울 때가 있다. 언뜻 보기엔 라이딩이 어려운 파도 같아서 패들링 하지 않고 넘겼는데, 귀신같이 내가 있는 지점을 지나자 파도가 좋아지는 경우다. 그럴 때는 ‘일단 패들링 해서 잡아볼걸’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서핑에서 배운 것은, 일단 그럴듯하면 패들링부터 해보는 것이다.


애매한 파도를 잡아 라이딩하면, 애초부터 좋은 파도를 잡았을 때 보다 10배 이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을 서핑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수 없이 치는 파도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패들링은 도전, 라이딩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패들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서퍼의 마음으로


재원님이 수면 브랜드를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라이딩이 되건 안되건 일단 패들링 해 봐야 할 파도처럼 느껴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회사를 선택할 때 가지고 있던 5가지 기준에 부합한 게 가장 컸다.

미션 : 불면은 내가 겪은 최악의 문제, 해결하고 뿌듯함을 느낀 최고의 문제였다.

동료 : 재원님은 내가 만난 동료 중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제품 : 도메인 경험이 있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문화 :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조직문화의 중요성이란 공감대가 있었다.

분위기 : 재원님과 나는 개과천선한 Bad Cop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게임과 맛있는 술도 좋아한다)


함께 점심을 먹고, 우리가 경험한 불면의 고통과 좋은 수면으로 행복을 되찾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재원님도 좋은 수면을 경험하기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불면을 극복한 뒤, 에너지 넘치는 삶을 되찾고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더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밑바닥에서부터 인정받는 동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팀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좋은 수면으로 삶이 10배는 나아지는 경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거라 믿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경험해 봤고, 비즈니스적으로 풀어본 경험이 있기에 자신감이 더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앞으로 재원님과 제가 만들 브랜드, 슬립부스터의 성장 과정을 틈틈히 브런치 매거진에 공유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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