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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이 Dec 14. 2017

당신은 할 수 있습니까?

전기는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생산된다 - 월성 1호기 사고의 재구성

우연히 기사를 보고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2009년 3월13일, 월성 1호기 원전에서 연료봉 교체 중 폐연료봉이 바닥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사용이 끝난 폐연료봉이라 해도 계속해서 엄청난 양의 열과 방사선이 뿜어져 나옵니다. 사용후 핵연료 보관은 원전의 골칫거리이기도 하죠. 임시 수조에 저장되다가 나중에 건식 저장 시설로 옮겨지는데, 보관 용량이 다 차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수조의 냉각수가 상실되거나 하면 핵연료의 온도가 상승하고 화재가 나면서 후쿠시마 사태 때처럼 수소 폭발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하튼 그때 사고 당시에도 연료봉을 빨리 저장 수조로 옮기지 않으면 큰일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접근할 경우 치사량을 넘는 1만 밀리시버트(mSv) 이상의 피폭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이 폐연료봉을 집게로 집어 다시 수조로 넣은 것은 로봇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사용한 도구는 무슨 최첨단식 도구도 아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신발 정리하는 것 같은 '집게'였다고 합니다. 아주 위험하고 어렵고 중요한 작업이 이렇게 사실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에 또 놀랐습니다. 사실 이런 건 원전뿐만이 아니죠.


이 과정에서 작업자는 피폭량을 측정하는 방사선량계조차 빼앗긴 채 10시간 이상 작업하면서 상당량의 피폭을 입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안전 범위 내의 피폭만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어쨌건 이런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월성 1호기에서만 하루에 16다발, 1년이면 6000개에 가까운 연료봉 교체 작업이 이뤄집니다. 원전은 100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쓰다보면 어딘가는 고장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꼭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전은 결국 누군가의 피폭, 그러니까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가능한 발전입니다. 이 피폭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편히 전기를 사용하는 일은 과연 지속가능한 일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이 일을 독자들이 직접 작업자가 돼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내가 원전 노동자라면, 내가 만일 그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기꺼이 들어가 일할 수 있었을까. 그런 느낌이 드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한겨레 길윤형 기자의 칼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죄송하게도, 제목까지도 여기서 따 왔습니다. 맨 마지막 문단이 가슴을 때립니다.

우리는 이런 원자력 발전을 이어가야 할까. 당신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치사량의 방사선이 방출되는 저 방에 들어가 ‘집게로 폐연료봉을 처리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싫다. 그래서 원전 없이 만들어갈 수 있는 우리의 미래와 그 속에서 찾아내야 할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사이트가 이렇습니다. 여력만 되면 3D 같은 것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자신은 없어서 2D로 만들었습니다. 오래 전 고전게임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인터페이스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직접 체험해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원전에 대해서는 찬반 논쟁만 있었습니다. 저희도 원전회의록 같은 콘텐츠를 만든 적이 있지요. 하지만  직접 이런 위험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논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원전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분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는 점이 너무 간과돼 온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는 실제 페이지 화면입니다. 



체험이 끝난 뒤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알 수 있어야 했습니다. 역시 길윤형 기자의 칼럼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83일>이란 책이 있습니다. 방사선 피폭 환자가 사망하기까지 83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말 섬뜩합니다. 방사선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오우치의 염색체는 산산조각나 있었다.
몸의 설계도를 잃어버린 셈이다.
방사능 노출은 병에 걸리는 것과는 다르다.
고작 몇 초 사이에 모든 장기의 운명이 뒤바뀐다.
피폭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출판사에서 허락해 주셔서, 책에 나온 피폭 환자의 사진도 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피폭 직후에는 멀쩡하던 팔이 몇 주만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은 쉽게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체험 사이트의 전체 맵입니다. 옛날 RPG 게임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몇몇 전문가 분들께 사이트를 소개해 드렸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독자 여러분께 전달되지는 못한 것 같네요. 모쪼록 더 많은 분들이 들어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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