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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Jul 27. 2020

눈 질끈 감고 알래스카

미쳤구나, 크루즈로 달아나다니

알래스카 캐치칸에서 로컬 맥주 한 캔





모든 걸 떨어내기로 했다. 나의 손가락은 나라들을 붙이느라 여념 없었다. 일이었기에 훈장 같았고, 모일수록 빛이 난다고 믿었다. 그만큼 그림자가 늘어나는 줄은 모르고.


단 한 마디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처럼 응대를 하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라 했다. 알아서 하게 놔둘 걸. 컨택포인트 어쩌구 하며 징징거리는 통에 겨우 얻어주었더니 꼰대질이었다. 늘 첫 마디는 연차로 시작했다. 이전에 그만둔 어떤 이는 겨우 그 정도의 경력이란 말에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굳이 가까이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던 인생이기에 귀를 닫은 채 있었다. 다양한 나라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정성어린 진심 하나에 어리숙했지만 사람들은 기회를 건넸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더 없이 감사했다. 행복했다.


이미 회사와 틀어질 대로 틀어진 동료를 어쭙잖게 만나는 게 아니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그렇게 열릴 줄은 몰랐다. 성사되는 여행일정이 채워질수록 영문모를 말들은 알 수 없는 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텃세라는 건가. 잃는 것은 두렵지 않았기에 진상을 파헤치려 했다.


여전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와전된 것인지는 모른다. 모두가 공범이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감싸기에 여념 없었다. 돌아가는 판을 보니 뒤집을 수는 없어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터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게 맞았다.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일은 없었다.


정리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간 인연을 맺은 곳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고 했다. 고민이 됐다. 지극히 맞는 방향이지만 그만큼 영향력있는 시간과 내가 아니었다. 만나거나 연락을 취하면 이유를 물을 것이고, 마음과 달리 언어들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알아서 생각하겠지. 이직이 잦은 변화의 업계에서 익숙했다는 듯 다른 이를 찾을 거니까. 내가 아니어도 된다면 굳이 부담을 줄 이유는 없었다. 소식을 모르는 이들은 나의 전화벨을 울렸지만, 그만두었다는 팩트만 문자로 답했다. 홀가분했다.


자극 찾았다.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정체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떠나고 돌아오는 업이었는데도 패턴은 고정된 상태였다. 겪어보지 않은 공간과 풍경이 절실했다. 가장 매력을 느꼈던 시간들을 돌이켜봤다. 인생에서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크루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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