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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37 < 자신감과 만용의 사이에서 >

자신감이 결여된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용기라 할 수 있는 <만용>도 우리의 영혼을 다치게 합니다.

의기소침함과 만용은 사실은 열등감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실패로 인해 좌절된다고 해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지만,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부리거나,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지나친 열망 때문에 만용을 부린 사람은,

그로 인한 실패가 따를 경우 치유하기 어려울 만큼 좌절하고 그 후유증이 참으로 오래가기도 합니다.

나는 성공적으로 연주가 되고 난 후, 자신감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또다시 훌륭한 연주회를 준비해서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적인 여유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연주회를 준비하고는, 마침내 몸의 컨디션을 잘 관리하지 못한 탓에 음악회를 망친 적이 있었습니다.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된 나는, 나의 만용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자신감이고 또 만용이 되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면서, 내가 자신감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인정받고자 하는 강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은 어쩌면 나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던 열등감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다 명성을 떨치는 음악가가 되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나의 실력을 과시하고 인정받아야겠다는 집착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존재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감과 만용은 하나의 뿌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예로부터, 모자란 것이 지나친 것보다는 더 낫다.라는 말이 있어왔습니다. 자신감도 지나치면 화를 부르거나 일을 그르치게 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와이셔츠의 떨어진 단추를 꿰매면서 꼼꼼하게 매달겠다는 강박감으로, 계속 천과 단추 사이를 오가다 보면 더 이상 바늘도 들어가지 않게 투박해지거나 아예, 와이셔츠의 천이 찢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조금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인정하고 모든 것이 원만하게 펼쳐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자신감만을 추구했더라면 자칫 만용을 부리다가 그처럼 낭패를 보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용(中庸)의 도(道)란 바로 이런 때에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와 겸허하게 있어야 할 때를 알고, 더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추고 자중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용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입장이나 중간자적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용은 아닙니다. 흑백의 논리 속에서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의 상태에 머무는 것은 진정한 중용의 도라 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 모르기 때문에 중간에 놓여있는 것 또한 중용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용이란, 사물의 이치나 인간사의 흐름을 깨달은 마음으로 매사에 그 적정선을 잘 헤아려 유지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의 시절, 잘못된 가치관과 만용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만용은 일종의 객기이거나 허세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용을 부리는 사람들은 대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만용은 또한 자만심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어떤 힘을 자랑스러워만 하다가, 태만해지기도 해서 오히려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들에게 뒤지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자동차를 이제 겨우 잘 운전하게 된 사람이 만용을 부리다가 차 사고를 내듯이 누구나 한 번쯤은, 어설픈 시점에서 만용을 부리다가 인생에서 크고 작은 과오를 남기게 되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가능하면 실패가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중한 마음으로 중용의 도를 구하며 사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큰 뜻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중에, 우리는 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지녀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만용이나 자만심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깨달음을 통한 통찰력이 먼저 길러져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주어진 여건보다 큰 자신감이 만용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잠재 능력 자체를 훨씬 크게 성장시키고 그만한 그릇이 되도록 키워놓는 일부터 하면 되는 것입니다. 깨달은 마음이 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될 때, 자신의 가능성이 무한히 커져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넘치는 자신감은 하나의 추진력이 될 수 있으며 더 이상 만용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우주의 생명력과 그 도움의 섭리를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자신감은 만용이 아니라 신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능력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성 자체에만 기반을 둔 자신감은 실패를 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큰 용기와 자신감으로 위대한 창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우주의 어떤 힘을 사용한 것입니다.


신에 대해 오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자신만의 힘만을 과도하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씩 실패의 느낌을 맛보게 되더라도, 좀 더 하면 될 거라며 오기를 부리듯 끝까지 혼자의 힘만으로 버팁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완전히 참패를 하고, 또 완전히 기가 꺾이게 돼서야 신의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앉으나 서나, 잠을 자거나 길을 걸을 때에도 항상 명상을 하듯이 자신과 만사를 깊이 통찰하고 예의 주시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그것이 매 순간 만용을 부리지 않을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노력을 덜해서 생긴 실패는 자신이 인정하기가 쉽기 때문에 상처가 덜하지만 과욕이나 만용으로 인해 실패를 하게 된다면,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안 된 것이기에 그 상처의 후유증이 매우 크고, 우리의 마음에 오래 남아서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용이나 허세를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영혼이 밝아지게 해서 그 영혼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자기 보호 본능이 매우 뛰어나서 어떠한 이유로든 영혼 스스로가 다치게 되는 일은 꺼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밝은 영혼은 모든 일을 앞뒤로 꿰뚫어 보는 것과 같은 예리한 직관력과 통찰력을 우리에게 갖도록 해 줍니다.


영혼이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매사를 추구한다면 틀림없이 올바른 이치 그대로의 삶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고, 영혼과 가장 친한 우주의 도움을 받기도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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