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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17. 2024

삶에는 명랑한 결기가 필요하다

한 때 삶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씩씩함'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어떤 불안, 고민, 걱정, 무기력 등이 닥쳐오더라도, 그런 내면의 상태를 겉옷처럼 벗어던지고 매일 나아가는 씩씩함이 삶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믿었다. 요즘에도 그 생각에는 크게 다름이 없다. 다만, 씩씩함이라는 말 보다는 명랑함이라는 말을, 나아가 '결기'라는 말을 쓰고 싶다.


삶에는 명랑한 결기가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삶에서 롤모델은 어느 소년만화 주인공 같은 존재에게 두고 있다. 주눅들고 무기력과 귀찮음에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늘 눈빛을 반짝이며 수평선 너머로 가고야 말겠다는, 다음 모험의 목적지를 향해 설레며 달려가고 말겠다는 의지로 빈틈없이 들어찬 그런 존재를 꿈꾼다. 어떤 날에도 마음의 명랑함에 불씨를 지펴야 한다.


삶이란 늘 의혹과 부담, 걱정과 고통이 따라붙는 것이지만, 인간이 그것들에 지도록 운명지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사유를 극단으로 몰아붙였던 니체는, 그 끝에 있는 게 삶의 긍정이라는 걸 찾아낸 '긍정의 발명가'이기도 하다. 삶이란 매일같이 마음 속에 그런 '긍정의 결기'를 다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이 지면 경기도 지듯, 삶도 진 것이다. 삶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실험해보듯, 최선을 다한 명랑과 성실을 배팅해야 할 때가 있다.


미리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모든 마음을 탈탈 털어 영혼의 총동원령을 내린 듯한 나날들을 살아야 한다. 사랑할 때는, 세기의 사랑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낭만을 실현해야 한다. 그것이 연인에 대한 사랑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말이다. 오늘은 아이와 둘이서 뻗어버릴 정도로 공원을 달리고, 축구를 했다. 어떤 종류의 사랑에는 기한이 있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 기한 동안 최선을 다한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안될 것 같은 사건, 못할 것 같은 사건 앞에서 주눅들지 말고, 무슨 사건이든 부딪혀서 직진하다 보면 해결하고 이길 가능성이 1%라도 늘어난다고 믿어야 한다.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늘 완전히 똑같은 케이스란 없다. 관성에 물들지 않는다면, 모든 케이스를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며 결기를 다지고 내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위한 최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게 믿지 못하면, 이미 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일도 없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종종 '백지'를 하나의 공포로 마주한다. 그 백지의 공포가 무거워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바닥을 뒹군다. 그러나 어떠한 백지에 어떠한 이야기든 내가 써나갈 수 있다고 믿고, 한 글자씩 입력하다 보면, 결기에 물든 나 자신을 어느덧 발견하게 된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나의 결기이고, 나는 결기라는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다. 쓸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당연히 삶을 계속 나아가다 보면, 수두룩한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절망과 좌절이 입가가 찢어지게 웃으며 나를 맞이할 날들이 있을 것이다. 슬픔과 불안에 떨 날들도 예비되어 있고, 죽고 싶은 부담감과 도망가고 싶은 욕구도 모두 잘 차려진 밥상처럼 내일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명랑과 결기를 잃고, 여기에 주저 앉아 벌벌 떨다가 남은 삶의 생기를 모두 패대기쳐 버릴 것인가? 삶이 얼마나 남았든, 매일의 하루하루는 동일한 질과 가치로 남아 있다. 마음을 빛으로 빚어내어 미래를 향해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결기로, 그냥 달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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