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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24. 2024

퇴사하고 가장 좋은 순간


개업을 하고, 묘하게도 가장 좋은 순간은 운전을 할 때다. 법원, 접견, 방송 일정 등으로 점심 먹을 시간조차 없을 때, 운전하고 가며 커피를 마시며, 주차장에 세운 차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서둘러 넥타이를 가다듬고 구치소로 걸어들어갈 때, 묘하게 자유로운 기분을 느낀다. 내가 필요한 곳들로, 어떤 소속의 일부가 아닌 오직 나의 이름만을 가지고 향해갈 때, 나는 나 자신이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어머니를 떠올린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운전을 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운전을 잘하는 '엄마'는 드물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중에서 가장 저렴했던 중고 경차를 한대 사서, 나와 여동생을 태우고 전국을 누비곤 했다. 어머니는 언젠가 자동차는 자신과 한 몸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차는 한 줌의 자유와도 같았을 것이다.


수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운전을 하고 가고 있으면, 이것은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퇴근할 때나, 로펌의 운전기사가 몰아주던 차를 탈 때랑은 느낌이 다르다. 나는 나의 의지로 선택한 의뢰인을 만나러, 나의 의지로 시간을 낸 방송에 출연하러, 나의 의지로 만나고 싶은 청중들을 만나러, 나의 일을 하러 간다. 그러면, 묘하게도 배고픔이나 귀찮음도 잊어버린다. 나는 자율성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는 남들이 다 인정하는 성공을 위해 정확하게 내달릴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큰 돈, 많은 권력, 드높은 명예를 얻기 위해 과녁을 노리는 명사수처럼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종류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건 성공이라는 과녁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정이다. 나는 목표가 어느 곳이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내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채워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는 길이 대단한 성공의 길인지는 모르고,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가는 길을 내가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날들을 쫓으려 했다고 느낀다. 물론, 수험생활이나 수습생활 같은 다소간의 희생은 있었지만,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도 사랑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 시절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는지, 그렇게 필사적으로 애쓴 마음들이 행복이나 사랑, 시절에 관한 책들로 남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오늘을 사랑할 방법들을 좇아 왔다.


내가 바라는 건 나의 걸음걸음들이 나의 의지와 자유로 채워져 있는 삶이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불어오는 바람에서 자유를 느끼고 싶다. 돌이켜 보면, 그토록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세상을 자유롭게 거닐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서른 무렵,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온갖 곳들의 취업문을 두드렸을 때, 그래서 어느 기업의 최종면접날 어째서인지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가지 않고, 로스쿨에 가기로 택한 것도, 이 직업이 가져다 줄 자율성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나로서 자유롭고 싶었고, 그런 삶으로 걸어가고 있다. 내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을 내 의지로 책임지면서, 내가 선택하고, 무한한 자율성과 책임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싶었던 것이, 내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싫은 건 불안이나 책임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그럴 능력이 필요했고, 그럴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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