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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27. 2024

소설에 타인의 사생활을 함부로 써도 되는가

Unsplash의Markus Spiske


최근 소설 속에 타인의 사생활을 동의 없이 써도 되는가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소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법적인 관점에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학적이거나 윤리적인 논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법적인 측면에서 어떠한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 있는 주제여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몇 가지 적어본다.


일단,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SNS 등에 자기를 표현하고 1인미디어도 매우 발달한 시대이기 때문에, 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이와 관련하여 내가 언론사 등으로부터 공식적인 발언을 요청받은 것만 열 번은 넘는다. 소설에 타인의 사생활을 적어도 되는가의 문제도 우선 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다. 


기본권을 논할 때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기본권에는 '제한'과 '충돌'이라는 두 층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본권 제한'의 문제는 통상적으로 개인 대 국가의 대립구조 안에 있는 문제다. 반면, '기본권 충돌'의 문제는 개인 대 개인의 대립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 문제도 먼저 '개인 대 국가'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공공의 질서나 안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제한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 나라는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사전검열은 절대적으로 금지되고 있고, 사후적인 조치 등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미국 판례에서 유래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리를 적용하여,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등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가 아니면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소설가의 '표현의 자유'는 매우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가령, 과거 마광수 교수가 성적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식의 일은 더 이상 일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사안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권과 관련된 문제는 개인 대 국가(공공)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과는 다소 차원을 달리한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강력한 자유권이라고 할지라도, 헌법은 제21조 제4항에서 아예 그 내재적인 한계를 명문으로 박아버렸다. 그 내용은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헌법은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개별 기본권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인 한계를 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명료하게 못박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가 '인격권'보다 더 중시된다고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흔히 말하는 프라이버시권, 명예권 등도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다. 특히 우리 형법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범죄로 규정하면서, 표현의 자유보다 인격권을 중시한다고 볼 여지도 있는 법률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 적시를 전제로 한 형벌조항은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도 제법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범죄로 명백히 인정되는 상황이다.


설령,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된다 하더라도, 이것이 표현의 자유가 프라이버시권보다 우선된다는 의미로 해석되긴 어렵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수 없고, 그럴 경우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설령 해당 행위가 형사적으로 비범죄화된다 할지라도, 민사적인 '인격권 침해' 차원에서의 위법성은 지금처럼 인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타인의 표현(사실 적시 등)에 의해 자신의 인격권이 침해당한 사람은 법원에 (강제) 정정 청구, 출판물 폐기 청구,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등을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인격권'이라는 강력한 방어책으로 인해 타인의 사실에 대해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을까? 그렇진 않다. 대표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명백한 예외를 하나 두고 있는데,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실적시는 가능하다. 가령, 공인의 비리 사실을 폭로하거나, 학계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표절 문제를 제기하거나, 공공의 질서를 위한 성범죄 피해사실을 적시하는 건 허용될 때가 있다. 


만약, 소설에서의 표현이 명백히 그 누군가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의 오랜 인습을 폭로하거나, 폭력적인 질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등 공적 목적이 인정된다면, 허용될 여 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위법성'이 제거된다는 의미에서 '위법성조각사유'가 있다고도 한다. 즉, 합법적이게 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과거 왕권이나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표방하는 상당히 '현대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정보 등에 대한 권리는 그보다도 더 현대적인 권리라 볼 수 있다. 개인의 사생활 등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자각 자체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최근에 명료해진 것이다. 과거 마을 공동체나 집단주의 시절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의식 같은 건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 등 인격권'의 문제는 매우 현대적인 논의라고 볼 수 있고, 그만큼 첨예하고 또 역동적으로 변화해갈 여지가 있다. 당장 앞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될 가능성도 있고, 모두가 표현하는 시대에 인터넷에서의 온갖 표현이나 각종 영상, 웹툰, 미술 등 일반 표현물에 대한 어떤 자유를 주고 규제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법적으로 보더라도, 해당 이슈는 현재진행형의 이슈이고, 공론장에서 여러 분야 사람들의 의견과 입장이 실시간으로 요쳥되는 상황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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