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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18. 2024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문을 읽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몰랐는데, 작가들 사이에는 작가의 황금기가 50에서 60세 사이라는 통념이 있다고 한다. 그 통념에 따르면, 자신에게는 6년 정도가 남았으므로, 남은 6년 동안 3편 정도의 소설을 더 남기고 싶다고 했다. 소상소감문 전체에서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좋았던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담담한 현실인식 때문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전성기가 영원하길 바란다. 하물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면, 이제부터 근사한 인생이 펼쳐지리라고 믿을 법도 하다. 전 세계에서의 초청이 이어질테고, 작품을 내기만 해도 주목을 받을 것이며, 여러모로 '멋진' 인생이 앞으로 펼쳐질 것을 기대해볼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자기에게 남은 시간의 초침 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30년간 작품 생활을 해온 작가가 믿는 자신의 삶이란 참으로 단순할 수 있을 듯하다. 그저 쓰고 싶은 작품이 있고, 그것을 써내기만 하면 되는 삶이다. 다만 그 여정이 푹푹 발이 빠지는 진흙 속을 한 걸음씩 옮기는 만큼 어렵거나 괴로울 순 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교수 자리를 주겠다거나, 엄청난 강연료를 주겠다거나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그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지난 30년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는 건 그 삶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나는 종종 노년에 이른 하루키의 삶과 심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는 평생 달리기를 하며 매일 글을 써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왠지 내 안에서 그의 모습은 40대 정도에 머물러 있는데, 이미 70대를 훌쩍 넘어 80세를 향해가고 있다. 그런데 그의 40세나 70세는 그다지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는 그저 쓸 수 있는 데까지 쓰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도 느끼면서, 그러나 쓸 수 있는 걸 쓰고 있을 것이다. 어떤 작가들의 삶은 그런 일관됨을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오거나 폭염이 오거나, 노벨문학상을 받거나 금서로 지정되거나, 100만부가 팔리거나 100부가 팔리거나 상관 없이 자신의 글쓰기와 같은 무언가를 이어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란, 참으로 부럽고도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써낸 글이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도 있고, 많은 비판을 받을 수도 없고, 어느 쪽이든 별반 세상의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의 삶을 묵묵히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쌓아낸 것만으로도 그는 고유한 자기만의 삶을 산 게 아닌가 한다.


바라건대 나도 그랬으면 싶다. 이미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내 삶에도 참으로 많은 풍파와 변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앞으로 20년, 30년 뒤에도 가만히 나의 황금기 같은 것을 가늠해보면서도,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쓰고 사는 사람이었으면 싶다. 아마 나는 유혹에도 더 많이 휩쓸릴테고, 내 인생은 그다지 단순하진 못할 것이며, 온갖 복잡다단한 일들과 사건들로 가득하겠지만, 그래도 내 안에 이어지는 '일관됨' 하나는 있었으면 싶다.


그것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하고 짜증나고 괴로워도, 오늘 하루치의 글을 읽고 쓰는 일이다. 잠들기 전, 자정이 넘어가 이제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데, 라며 눈꺼풀이 잠기는 와중에도, 그래도 오늘치 글을 쓰고 자야지, 라며 잠깐 타자기를 붙잡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이어졌으면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느냐고 누군가 묻더라도, 그냥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다, 라고 답할 수 있었으면 싶다. 삶이 저물어갈 때도, 아직 내게는 쓰고 싶은 몇 편의 글이 더 남아 있다고 말하며 백지를 검은 선들로 채워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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