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살면서 내가 언젠가 출간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책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 낸 책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모든 글을 기억한다>이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일이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글쓰기'일 뿐, 글쓰기를 가르치거나 하는 일은 작가의 일에서 부수적인 일에 불과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가로 살아온지도 어언 10년을 훌쩍 넘었고, 첫 글쓰기 모임을 한 지도 어언 10여년은 되었다. 대략 30대라고 할 수 있는 이 10년을 돌아보면, 나는 약간 난감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내가 정말 이 삶에서 한 번 밖에 없는 30대를 다 써버렸단 말이야? 그렇구나, 이제는 더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삶을 살았다'라고 말해야할 때가 되었구나. 믿을 수 없게도, 나는 정말 그런 나이가 되었다. 삶의 절반 정도를 살아내고, 공자가 말한 불혹에 이르러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앞으로도 삶은 대략 절반쯤은 남았으니, 이렇게 살아야겠다, 저렇게 살고 싶다, 이런 저런 삶을 살거야, 하는 다짐들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는 이제 내가 살아버린 삶에 대해서도 말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살고 싶은 삶만 말하기엔, 나도 살 만큼 살아버린 입장이 되었다. 그렇게 특히, 최근 10년을 돌아보며 내가 무엇을 했나 생각해보면, 먼저 결혼과 육아가 생각나고, 홀로 글쓰던 밤들, 그리고 글쓰기 모임이 떠오른다.
30대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인연들의 상당수는 이 글쓰기 모임과 얽혀 있다. 모임을 시작하게는 그저 '가르치고 돈 버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해왔던 거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 또한 돈을 주고 받는 서비스이고, 한 쪽은 소비자, 한 쪽은 서비스 제공자 정도의 일일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모임이 이어질수록, 단순히 서비스 제공과 소비가 아니라 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었고, 인연을 이어가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곧 삶이라는 것도 말이다.
돈을 받고 서비스를 주는 시간은 몇 주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10년 가까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나는 부산을 떠올리면,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과 더불어 지금도 부산에서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실제로 부산에 가면, 그 때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 만난 사람들을, 아이가 초등학교를 간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인연들이 흩어 사라졌는데도, 글쓰기로 만난 사람들 만큼은 여전히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글쓰기 모임이 단순한 모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글 안에는 우리 삶의 가장 아팠던 순간, 기뻤던 순간, 우울하거나 감동적인 순간들이 농축되어 담긴다. 그런 글들을 함께 나눈 사이란, 아무래도 '단순한 사이'는 아닌 것이다. 특히, 글쓰기로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 나이 서른이나 마흔에 작가가 된 사람들에게 그렇게 글로 시작된 인연은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 글쓰기는 때로 삶을 남기지만, 동시에 삶을 시작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함께 시작한 삶의 동료들이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어떻게 글쓰기 모임이 시작되어, 함께 한 사람들과 삶의 동료에 이르렀는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 가운데는 나름대로 글쓰기에서의 중요한 원칙이나, 글쓰기 모임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방법도 담아보고자 했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에는 함께 글을 쓰며 꿈꾼 사람들의 글이 담겼다. 나는 이 마지막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글들이 글쓰기 모임이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증명하는 증거들이라고 믿는다.
당신이 만약에 아직 글쓰기 모임을 해본 적이 없다면,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글쓰기 모임을 해보았으면 한다. 내심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죽기 전에 한 번은, 글쓰기 모임>이라고 지어지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런 의향을 출판사에 채 전하기 전에 제목이 지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지어진 근사한 제목을 보니, 역시 책을 만드는 일에 작가란 한 발 물러나 있는 게 좋다는 생각도 든다. 글쓰는 일은 그렇게 독자 뿐만 아니라, 편집자를 비롯한 다양한 동료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진심을 전하는 연결이고, 때론 모임으로 이어지는 사람 사이의 일이며, 나아가 삶 그자체이기도 하다는 점에 대해 이 책이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삶에서 한 번쯤 해볼 만한 일로 글쓰기를, 무엇보다 글쓰기 모임을 꼽고 싶다. 당신이 글을 써도 된다는 것, 글쓰기로 새로운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믿는다면, 글쓰기는 그에 보답할 것이다. 우연히 당신의 품에 든 이 책이 그런 글쓰기를 등떠밀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젠가 당신의 글로, 또 나의 글로 당신과 내가 만날 수 있길 바란다.
* 사진 - 7년 전, 당시 부산에서 했던 글쓰기 모임에서 찍어준 사진이다. 늦은 밤 카페가 문을 닫자, 길에 서서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순간. 아련하고 열정어린 추억으로 남았다. 사진에 있는 두 사람은 얼마 전 부산의 북토크에서 또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