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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Jun 17. 2021

직장인 3년 차, 자체휴강 말고 자체휴가

떨리는 연봉협상 그리고...

다가오는 7월엔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한 달간 휴식기를 갖는다. 조금은 독특한 휴가다. 퇴사나 이직으로 인한 공백기는 아니고 회사 사정 등 타의에 의한 반강제 휴직도 아니다. 근속 연수에 따른 보상인 안식휴가, 안식월도 아니다. '자발적 무급휴가'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겠다.


그럼 이만 퇴사해보겠습니다


사실은 퇴사를 하려고 했다. 작년 여름, 첫 직장을 박차고 나온 나는 한 달 여의 휴식 후(그때도 프리랜서 일을 하긴 했지만) 지금의 회사로 출근했다. 프리랜서 에디터로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아 3개월간 진행했고, 이후 기자와 에디터, 앱 서비스 운영 경험을 확장해 서비스 기획자로서 새로운 TF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6개월 계약을 맺었다. 계획에 없던 빠른 이직의 영향인지 새로운 분야에 발을 내딛으면서 어려움을 느낀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몸과 마음이 절실히 휴식을 외치고 있었다. 무수한 고민 끝에 대표님께 퇴사 의사를 밝히고 그렇게 계약은 종료를 앞두는 듯했다.


도전과 휴식 사이


며칠 후 상황이 달라졌다. 마케팅팀 인력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대표님은 나에게 마케팅 리드 포지션을 메인으로 하여 회사에 계속 남아줄 것을 제안했다. 분명 좋은 기회였다. 마케터라는 직업이 '꿈꿔온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향후 이직이나 커리어를 위함보다는 지금의 도전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크리에이터든 사업가든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공백이 된 기존 인력이 사실은 회사 내 빌런이었기에 회사 분위기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볼 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계속 다녀서는 안 되는 문제였다.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느라 일상에 쓸 에너지는 금세 소모해버리고 마는 나 같은 성격은 젊음의 패기와 호기심만으로 새로운 일에 덤비면 지금처럼 일찌감치 방전되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분명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했고 지금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육체와 영혼의 주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이라는 걸 나는 잊지 말아야했다.


협상의 시나리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연봉협상이었다. 회사가 나를 얼마큼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연봉을 회사가 맞춰준다면 근속을 이어가고, 그렇지 않을 경우 '어차피 퇴사할 거였는데' 하는 심정으로 이참에 푹 쉬는 것이 나의 플랜이었다. 연봉을 맞춰준다고 한들 무조건 한 달 이상의 휴가는 전제로 깔고 있었다. 직무, 커리어, 경제적 여유, 육체적 정신적 상태 등등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한 달가량의 휴가를 가진 뒤 회사에 복귀를 하고 내가 원하는 더 높은 연봉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협상에서 꼭 이기고 싶었다. 나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이직과 연봉협상에 대한 아티클을 찾아 읽으며 나름대로의 전략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커리어에 대한 흥미가 왕성해진 자아와 '닥치고 휴식'을 주장하는 자아는 서로 매일같이 싸웠고, 남은 건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하며 흔들리는 눈빛과 불안한 채 바쁘게 흘러가는 나날들이었다.


회사의 제안을 먼저 받고 이에 대한 나의 제안을 회사에 전달하고, 남은 건 회사의 최종 결정. 대표님의 부름에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이내 돌아온 답변은 "OK". 연봉도 내가 원하는 대로, 휴가도 내가 원하는 대로 가지게 된 것이다! 이상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자체휴강 말고 자체휴가


여기까지 '조금은 독특한 휴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몇 주 뒤면 안식월을 가진 후 같은 회사에 다른 포지션으로 입사하기로 했다.


정말로 '조금은 독특한 휴가'인 이것을 나는 조금 더 세련되게 부르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휴가'보다 '무급'에 눈길이 가는 '자발적 무급휴가' 말고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휴직, 안식월, 다 애매하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맞이하는 '방학'이라고 부를까? 아냐, 더 주체적인 느낌의 단어였으면 좋겠어! 그럼... 자체휴가 어때? 학교 다닐 때 마음대로 수업 안 가는 이른바 땡땡이를 '자체휴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도 내 마음 끌리는 대로 잠깐 쉬었다가 출근할 거니까 '자체휴가!'


여전히 햇병아리인 직장인 3년 차. 회사는 정 붙이는 곳이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 둘 곳 없어 이리저리 전전하며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안식휴가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그런 건 '똑같은 직장'에 계속 다녀야만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꼭 직장이라는 소속을 기준으로 두어야만 성립하는 걸까 싶다. 어쨌거나 일은 내가 하는 건데. 그리고 나는 항상 '똑같은 사람'이고 3년째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어느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든, 3년 5년 7년 등등 사회에서 일정 기간 이상 굴러다닌 영혼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리저리 구르며 상처 난 몸과 마음에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회사는 불쌍한 육신에게 먼저 손길을 건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주도적 결단을 내리는 과감성도 미리 장착해두는 것이 좋겠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결정하고 이루어낸 자체휴가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한 달 만에 많은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몸과 마음에 충분한 휴식을 주고 그것이 휴가 이후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 원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행복한 계획을 세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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