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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May 19. 2021

몸은 서울에, 마음은 자연에


올해 초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온 후로 서울살이 '9년 차'라는 시간의 무게를 한껏 느끼고 있다. "내가 벌써 서울에 산 지 9년이나 되었다니" 이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오늘도 그랬다. 모처럼 혼자 보내는 여유로운 휴일. '나 홀로 집에'의 시작은 창문을 여는 것이다. 이 집을 구할 때 가장 마음에 들고 기대를 했던 점은 햇빛이었다. 남향인 이 집은 맑은 날이면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일뿐더러 따사로운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의 방문이 이렇게 기쁜 건 오로지 해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초대하지 않을 생각도 없지만.


창문을 연 뒤엔 화분을 내어놓는다. 내가 지은 이 아이들의 이름은 봉천동 초록이 1호, 2호, 3호. 상도동에서 살았던 작년, 1호 초록이를 데려오면서 첫 식물집사 생활을 시작했고 올해 1호에게 친구들 2호, 3호를 만들어주었다.


반려견을 산책하듯, 반려식물에게 광합성을 시켜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사알짝 올라간다. 주인이 회사에 있는 동안 홀로 집을 지키는 반려동물처럼, 나 때문에 이 녀석들도 강제로 광합성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이들이 광합성을 하는 사이, 나도 광합성을 하러 나왔다. 헬스장이 주는 인위적인 기운을 싫어하는 나에게 집 뒤에 자그마한 동산이, 가지런한 산책로가 있다는 건 아주 큰 행운이다.


좁다란 흙길을 지나며 푸른 잎들과 스치는 순간, 출퇴근길이 떠올랐다. 평소엔 일면식 없는 다른 사람의 옷깃을 스치기 바빴는데, 각양각색의 나뭇잎과 가지들이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말이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도 위안을 준다. 흔들려도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말이다.


흙을 밟을 때마다, 나뭇잎 내음을 맡을 때마다 나는 고향을 생각한다. 엄마를, 아빠를 생각한다. 뼛속까지 농사꾼인 아빠와 사계절 내내 제철 음식으로 한상 차림을 해주는 엄마.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과수원과 나의 학창 시절 추억이 가득한 동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의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늘 자연에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만개한 장미. 엄마에게 한 아름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오늘도 그녀에게 안부를 전한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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