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길 정말 잘했다
해외여행 갈 때나 들고 다니는 28인치 캐리어를 한가득 채우고, 버스로 3시간 30분을 달려 본가에 왔다. 높은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당연한 서울을 떠나 스타벅스 하나 없는 이곳 시골에서 나는 한 달을 지내기로 했다.
고향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셋째 날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여기에 있는 동안만큼은 '미라클모닝'이라는 이름은 붙이고 싶지 않다. 서울 생활의 연장선 같은 기분은 사절이다. 대신 휴가 동안 하고 싶은 일 1순위로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적었다. 서울과 비교할 수 없는 풀내음과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감쌀 때의 기분을 느낀다. 하루 시작이 좋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밭일이다. 부모님을 따라 밭에 가서 자잘한 일들을 돕는다. 고구마, 가지, 깻잎, 호박, 고추 등 농약 없이 손수 일구는 채소들에게 물을 흠뻑 줬다. 물을 주면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작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구름이 되는 것만 같다. 내가 구름이 돼서, 비를 내리는 기분.
잠시 숨을 돌리려 밭 주변을 걷는다. 서울엔 아스팔트 도로가 기본값이라면 이곳은 좁다란 길을 시멘트로 덮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밭 옆에는 또 다른 밭, 혹은 논, 거기서 거기다. 남의 집 논에는 봄에 심은 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기지개를 켜는구나. 언제 커서 벼가 될까 싶지만 다음에 오면 훌쩍 크는 것도 모자라 노오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 같다.
남의 밭에 가서 일도 했다. 그것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가서 2시간 동안 쪼그려앉아 마늘과 양파를 다듬었다. 이곳에서 특별한 기술은 사치다. 그저 무거운 엉덩이와 지루해하지 않는 인내심만 있으면 1인분은 할 수 있다. 단순 반복의 노동의 끝은 개운한 샤워 그리고 달콤한 낮잠. 누가 마취총을 쏘았는지 픽 쓰러지고 말았다. 누워서 책을 펼친 건 신의 한 수였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한 달 동안 매일 먹을 수 있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다. 서울과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서울로 가야 성공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어린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그렇게 대학에 합격해 서울에 갔고 대학에 갔으니 졸업을 해야 하고, 졸업을 했으니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했으니 경력을 쌓아야 했다.
그렇게 흘러버린 8년, 내게 남겨진 건 '더이상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날이 없을 것 같다'는 비극적 결론이었다. '왜 그래야만 하지?'라는 뾰족한 마음이 툭 튀어나와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건강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커리어가 될 만한 복잡하고 어려운 일 대신 엄마 아빠의 심부름과 잡일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쓴다.
자체휴가 3일째.
집에 오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