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재 Aug 01. 2022

불안장애, 이겨낼 수 있을까?

불안장애 1주년 회고록


작년 이맘때였다. 시도때도 없이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불안정하더니 길을 걸어다니는 것조차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힘들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모니터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서 비상계단으로 도망쳐야 했다.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에 방문했다. 내가 느낀 증상을 심장이나 호흡기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정신과로 찾아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린 진단은 불안장애 초기. 정확히는 장애라고 부를 정도로 증상이 심한 수준은 아니라서 불안증 정도라고 했다. 불안증이든, 불안장애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당시의 나는 죽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항불안제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아 매일 복용하고 심리상담도 병행했다. 매주 토요일 10시, 나는 살면서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던 일을 처음 만난 상담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가장 친한 친구, 연인, 엄마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그 선생님에게 오열과 함께 털어놓았다. 상담을 마치고 나면 한동안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워서 주말 내내 즐겁지 않았다.


내가 불안장애를 겪게 된 심리적 압박감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주변의 기대를 늘 충족하며 살아왔던 나는 일도, 사이드 프로젝트도, 인간관계도, 어느 것 하나 포기해서는 안되는 성격이었다. 주변의 인정을 곧 나의 가치로 여겼던 내 속은 점점 썩어 문드러져갔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3600만원이었던 연봉은 4500만원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번아웃도 함께 왔다. 생산적인 일에 너무 많은 자아를 투영한 나머지 정작 내 욕구와 내 행복은 없었다. 풋풋한 열정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어느새 꿈과 목표를 상실했고 남은 건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돈에 대한 결핍뿐이었다. 월급 앞자리가 바뀌어도 전부 치료비로 나갈 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데 애썼다. 6개월 즈음부터는 약 복용을 중단했다.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신체적 증상이 예전만큼 뚜렷히 나타나지 않아서 이제부터는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기력함이 이어졌다. 취미로 쓰던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게 되었고, 책 한 줄 읽기도 버거웠다. 가끔 브런치에서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 120일이 지났어요ㅠㅠ' 같은 푸시를 받을 때면 자괴감에 빠질 뿐 힘을 낼 수는 없었다.


그후 다시 6개월이 지나 만 1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불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사 다닐 때 느꼈던 공황 증상이 다시 나타나진 않았지만 가슴 두근거림은 약하게 지속되고 있다. 아직 백수 신분이라서 공황 증상이 없는 건지 혹은 아직도 백수 신분이라서 가슴 두근거림이 지속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약을 다시 복용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나에게 지난 1년은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찾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한참을 고민하다 모르겠다고 답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는 깨달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터널을 지나간 후에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화 속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결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솔직한 한줄평은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문이다. 어쩌면 반드시 이겨내기보다 불안과 함께하며 스스로 불안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해피엔딩일 것이다. 나는 아직 단단해져가는 과정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근황 알림) 남해 한달살기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