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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키 Oct 24. 2019

포르투갈에서 아침을(2)_새벽 운동 그리고 몸살

리스본에서의 두 번째 날.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부터 스멀스멀 시작되던 비염 증상이 내 몸을 피곤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아서 

한국에서도 늘 그래 왔듯이 아침 운동을 나가봤다. 

이곳의 고요한 아침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사실 '포르투갈에서 아침을'이란 제목도

포르투갈 여행 내내 아침운동을 나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보고 기록하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일종의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


여하튼, 이 계절 이곳의 해는 거의 7:30 ~ 8:00 쯤에 뜨기 때문에 

7시쯤 집 밖을 나섰더니 밤처럼 어둡다.


사실 밖이 어두워서 

거리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어둠 속에서도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많았다. 


출근하는 사람들. 안녕.


그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 

내가 머무는 동네의 새벽을 구경하고

천천히 공기를 마시며 걸어보았다.                           

사실 어제까진 관광지 속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인파에 놀라서

리스본이란 도시를 '갸우뚱' 했다.


내가 워낙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을 좋아하다 보니

이 도시의 활기참에 생각보다 놀랐던 것 같다. 

잠깐은 '아 리스본에 너무 오래 머물기로 했나...?'

걱정도 되더라. 


근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나오길 참 잘했다.

그런 마음을 없앨 수 있었으니까.


나는 구글맵을 보지만, 경로는 보지 않는다.

구글맵은 가장 빠르게 편리하게 가는 루트를 알려주는데,

나는 방향만 확인하고 (그럴 거면 나침반을 들고 다니렴... )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간다. 

가면서 딴 길로 셀 때가 많아서 시간이 2배는 걸리는데, 

그래도 나는 이런 여행 방법을 좋아한다. 


배회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되겠군.

이런 방법으로 늘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늘의 아침 운동도, 가고자 하는 공원을 하나 찍고 그 방향으로 무작정 쭉 올라갔다.

근데 계속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일출을 만나게 되었다.



Miradouro da penha de franca           

           

사진엔 잘 담기진 않지만, 유명한 전망대 못지않게 

(아직 안 가봄) 

정말 멋진 뷰를 볼 수 있었다.


리스본 시내와 테주강 그리고 일출까지!

정말 의도치 않게 이런 곳을 발견하면, 말 그대로 기쁘다.


구글 리뷰를 찾아보니, 다들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전망대라고 써놨더라.

사람 바글바글 많은 전망대가 지친다면, 이런 곳에 와도 좋을 것 같다.


앉을 수 있는 벤치도 있어서 일몰엔 맥주 하나 들고 와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집이랑 가까워서, 밤에도 걸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어서 더 좋은 듯!

일단 찜콩!     


걷는 김에 조금 더 걸어 Almeda park에 왔다. 


여기부터는 큰 길가라 그런지 

아침을 분주히 시작하는 리스본의 출근러들, 학생들이 많았고

거리에 꽤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미 아침은 왔다.

하늘이 엄청 파랗고 맑아졌다.


리스본 사람들은 아침에 빵집에서 간단한 빵과 커피를 즐겨 마신다.

출근 전에 잠깐 들러서 작은 에스프레소를 호로록 먹고 가기 때문에

서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부터 대차게 걸었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달콤한 빵과 고소한 커피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빵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현지인처럼, 그들의 아침을 따라 해 봤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작은 에그타르트.

커피는 0.7유로, 타르트는 0.8유로.

행복한 아침의 시작이다.            


아 내가 정말 포르투갈에 왔구나!


짧은 모닝커피를 즐긴 후 

집으로와 씻고 호스트와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는 출근을 하고 

난 조용해진 거실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뭐랄까, 주인 없는 이 집에서의 시간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금세 내 집처럼 편해지고 있었다. 

빠른 적응력 보소.

뭔가 아침부터 오늘 할 일을 다 한 느낌...?

그렇지만 나가봐야겠지! 

왜냐면 이 나라 날씨가 너무너무 좋다. 


그리고 이때까진 몰랐지, 

이 화창한 날씨로 인해 얼마나 내가 지칠지.


어제 너무 관광지에 데어서, 

사실 그다지 관광지 쪽으론 가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 머무는 기간이 길기도 하고

'꼭 가야 해'라는 곳들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내방 포토존

아침부터 사람 사는 생기가 넘치는 우리 동네.                 

                     

아, 아침을 좀 먹기 위해서 장을 좀 봤다. 

포르투갈은 식료품이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다.

독일에 살 때는 bio 마켓도 그렇고 식료품 종류가 너무너무 다양해서 

식료품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는데, 여긴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


요리라고 해봤자 간단하게 먹는 거지만, 

나름대로 차려서 내방 테라스에서 먹었다.

그냥 그 테라스에서 함 먹어보고 싶었다.....


아보카도 너무 좋아.

근데 아보카도는 여기라고 싸지 않았다. 

하나에 2유로가 넘었다.


아무리 찾아도 포크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서, 숟가락으로 먹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오늘은 공원에 좀 가보려고 한다.

어제 지나가다가 봤던 예쁜 공원으로.                

                                   

Campo martieres da patria


역시 좋군.

관광객 보단 레알 현지인들이 공원에서의 낮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 일광욕하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사람들.

그리고 오리, 닭, 알 수 없는 조류들이 정~말 많았다.

이곳은 그냥 그들을 위한 공원이고, 사람은 이방인 같았다.             

               

정말 너무 예쁜 공원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여유롭게 누리는 사람들.

전망대나 유명한 관광지도 리스본이지만, 

이런 로컬들의 공간도 진짜 리스본을 누릴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나무에 기대어 책 읽는 언니                 

신발 벗고 누워서 일광욕하는 오빠

나도 드러눕고 싶었는데, 오리랑 닭똥이 왠지 많을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는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배꼽시계가 울린다. 

찾아보니 근처에 예쁜 정원이 있는 #PSI 라는 식당에 갔다.

(참고로 나의 포르투갈 여행기에서, 포르투갈 전통 음식은 별로 안 나온다. 기대하지 마시길)


보타닉 가든, 자연에 둘러싸인 예쁜 식당이었다.

나는 이렇게 다니다 보니까,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은 거의 가지 않고 있다. 

어딜 가나 다 이 시간을 누리는 로컬들뿐.

           

벌....써 한식이 그리운 건 아닌데

내가 시킨 건 코리안 보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마디로 두부조림.

맛있긴 한데, 이거 먹으니까 엄마표 두부조림 먹고 싶다.

한국 와서 한 수 배우셔야 할 듯.


배도 부르니 이제 또 정처 없이 걸어본다. 

정처 없이 걷고, 길을 잃어가면서 매력적인 골목골목을 발견하는 것이

리스본 여행의 포인트!             

꽃 아래 감미로운 할아버지의 버스킹도 감상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어차피 언덕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그라피티가 가득한 리스본 골목골목을 걷는다              


리스본의 마스코트, 28번 노란 트램이 정차되어 있던 곳.


저 멀리엔 테주강이 보여서 뷰가 너무 예뻤다.

드디어 여기서 내 사진을 찍어봤다.               

                         

아. 또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 전망대가 있다.

Miradouro de santa catarina


에스트렐라 공원 가기 전에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테주강이 쫙 보여서 정말 멋지다. 

관광객도 붐비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쉬어가기 좋다.

뷰가 좋은 카페나 식당도 보인다.

여기 앉아서 잠깐 책을 읽었는데, 오히려 지금 읽기 잘했다.

페소아의 리스본은, 포르투갈 유명 문학인이 쓴 리스본 가이드 같은 책인데

어제오늘 리스본을 좀 걸어보고 읽으니 그가 말하는 리스본의 구석구석이 그려진다. 

혼자 여행을 오니 책이 그렇게 잘 읽힌다. 

책과의 대화 뭐 그런 건가           

                               

딱히 뭐 하는 것 없고 걷기만 하는데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는 뭘까.

안 좋았던 컨디션도 그렇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지치기 시작했다.


사실 도보여행을 하고 싶어서, 교통패스를 안 샀는데..... 

이제 좀 사서 중간중간 힘들면 교통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지치기도 했고.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무리해서 걸어 다니나 하는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얼굴은 새빨갛게 타고, 자외선이 강한 건지 뭔지 빨갛게 알레르기들이 엄청 올라왔다.

이대론 안 되겠다....!


여하튼 정말 많이 걸어서

목적지인 Jardim da estrela 공원에 도착했다.


이미 나는 거의 넉다운 직전이었지만, 진짜 여기도 너무너무 너무 아름답다.

리스본에 가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본다면

이런 곳에 꼭 와서 쉬어갔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작은 공원이었는데

정말 아름답고 바로 앞의 성당도 아름다웠다.

종이 울려 퍼지는 소리도 멋있다.


더운 날씨에 하도 걸었더니 

일단 너무나 힘들어서 공원 안 카페로 직행해 

갓 짠 오렌지 주스를 원샷했다. 


여기 카페도 진짜 좋구나. 

힘이 든 와중에도 눈 돌아간다. 

삼삼오오 모여서 과제하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 근처에 학교가 있었나?

나무가 꽤 높았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니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이 가림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다 마심 목타 죽는 줄!!

여기도 여유롭게 피크닉 하며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이 정말 많았다.



풀밭에서 기타를 연습하는 소녀

피크닉 나온 엄청 사랑스러운 아가들이랑 엄마들

누워서 일광욕하는 오빠들 (여기에도 많았다)

벤치에 앉아서 책 읽고 음악 듣는 사람들.



내가 외롭지 않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허


유럽이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포르투갈 사람들도 정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남 신경 안 쓰고 자유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뭔가 정말 나이브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에너지가 정말 좋았다.


여기서 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뭔가 울컥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있고,

왜 여행을 하고 있고,

여행에 와서 얻고 싶은 건 뭐고,

여기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생각부터.

뭔가 어떤 압박에 사로잡혀 있는 내 사고들까지.

이것저것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보내왔던 내 숨 가쁜 시간들.


좋은 여행은 뭘까.

좋은 경험을 뭘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가식 없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또 심플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에 또 생각 군더더기가 너무 많이 붙어서, 다시 두꺼워지는 껍질이 무거웠는데.


그리고 또 살아가는 삶은 참 다양한 건데.

나는 무엇을 원하기에 이렇게 살아가는지.


뭐 이러쿵저러쿵 

생각의 부스럼이 생기는 진지한 그런 것들.                

              

나도 벤치에 앉아서 아까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에라 모르겠다, 신발도 벗어던졌다.             

                      

정말 궁금한데

여기 비둘기가 정말 정말 되게 많은데

사람들은 비둘기 똥 이런 건 걱정하지 않나 보다.

벌러덩 벌러덩 잘 눕는다. 풀밭이 침대인 줄 

그래도 좋구나. 

아기들 보니 조카 효민이가 너무 생각났다.

보고 싶다 우리 효민이.


애기들이 너무너무 예뻤다 정말.

그리고 어떤 애기는 18개월 축하로, 18로 쓰여있는 큰 풍선을 묶어놓고 

가족끼리 모여서 피크닉 파티를 하기도 했다.


나 어렸을 땐 집이나 햄버거 가게 가서 축하파티했던 것 같은데 크크.

공원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성당            

                      

이 공원이 있는 근처 동네가 되게 좋았다.


공원을 나와서 걸어 다니다 보니, 멋진 성당도 많았고.

대체적으로 붐비지 않고 로컬들이 많았다.


왠지 한국으로 치면 한남동 같다고 해야 하나-? 

집값이 비싼 동네일 것 같았다.


집에 올 땐 힘들어서 우버를 불렀다. 

우버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한국이랑 비슷!       

                    

오늘 해가질 때

유명한 전망대에 가서 혼술 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숙소로 왔다.


그리고 호스트 언니 와인을 좀 마셨다.

그리고 넷플릭스로 #매드맨 한 편 때리고

딥슬립에 빠졌다.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이 글을 쓴다. 


으 확실하다.

감기에 걸렸다 분명해. 

코도 너무 붓고 아프고 기침도 계속 나오고 머리도 엄청 아프다. 


분명 흐릴 거라고 했는데, 밖에 날씨 엄청 좋다.

모든 걸 내려놨다.

욕심내서 다닐 이유가 없다.


약국에 가서 감기약을 사고

교통카드를 사야겠다.


 호스트랑은 왓츠앱으로 소통하는데,

이거 호스트한테 보낸 사진 중 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면 되는 거냐고 묻는 중.

포르투갈은 음식물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네.


어제 남은 재료들로 아침 차려 먹기.

그리고 느지막이 준비하고 나간다. 

티셔츠 무엇 ㅋㅋㅋㅋㅋㅋㅋㅋ

#올라 = 안녕

(스펠링 어퍼스트로피 안 붙었지만)

한국으로 치면 안녕하세요 입고 다니는 거다 ^^;


샀어 교통카드.

이제는 자외선 따위에 지지 않을 거야.

덥거나 힘들면 탈 거야.  

나의 컨디션은 소중하니까.             

                                   

그리고 또 추천하는 우리 동네 커피 맛집 

#brick

호스트가 추천해준 곳인데, 진짜 여기 너무 좋다.


집 바로 앞에 있고, 커피가 정말 너무 맛있다.

에스프레소 0.7유로 아메리카노 1유로.


가격 무엇.

하루에 3잔도 가능해!!


오늘은 점심시간에 왔더니 사람이 좀 많았다.

여기 이 동네 맛집이었어..?


원래 블로그 글 여기서 쓰려고 노트북 들고 쫄래쫄래 왔더니

사람 많은 점심시간에는 노트북 쓰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럼 커피만 먹을게, okay?

-okay


아마 리스본에 있는 동안 여기는 참새 방앗간이 될 거다.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감기약도 먹고

와이파이 빵빵한 숙소에서 글을 좀 쓰고, 오늘은 쉬어가려고 한다.

이따가 햇살이 좀 누그러들면 동네 전망대 산책이나 좀 다니고, 밤엔 음악공연이나 들으러 갈까 보다.

쉬엄쉬엄 여행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3주를 이곳에서 사는데 생각해보니 바쁘게 여행자 코스프레를 할 필요가 없다!


근데

여기 오니까 한국 노래 듣고 싶음.

그것도 옛날 노래

그래서 조덕배 듣는 중 헤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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