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여섯 번째 날.
추적추적 비로 시작하는 차분한 하루.
끼니를 챙겨 먹는 게 참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부터 배가 고파서 호스트 살로메가 준 땡땡이 우산을 쓰고 장을 보러 갔다.
그리고 결국 미루고 미루던 약국행.
입병 약 샀는데, 10유로.
연고가 왜 이렇게 비싸지?
그래도 바르니까 훨씬 나은 것 같다, 진작 올 걸 그랬다.
오늘은 다른 슈퍼로 왔다.
밖에 사 먹을게 너무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매번 사 먹는 것도 부담이라서
웬만하면 아침은 집에서 해 먹으려고 장을 보러 왔다.
그냥 과일이랑, 계란이랑, 샐러드 정도만 사놓고
아침마다 집 앞 빵집에서 따끈 따끈 갓 나온 빵 사다가 차려먹으면
나름대로 영양가 있게 해 먹을 수 있다.
아음, 아보카도 너무 안 익었잖아..
며칠을 후숙 해야 하나 저건 연두색인데?
아놔..
여기 바나나도 완전 초록색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심했다
방금 바나나 나무에서 갓 딴 줄 알았어요.
다른 나라 식재료랑 식품 구경하고
장 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의식주 중에서는 '식'에 제일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다람쥐가 도토리 찾으러 가듯이
자주 오는 동네빵집에 빵도 사러 왔다.
장기체류를 하니 이렇게 단골 가게도 생기게 되는구나.
비도 추적추적 오고
혼자 와서 커피에 빵 먹는 사람들을 보니까
나도 좀 있다 가고 싶었다.
가정주부의 소소한 일탈 같은 느낌이랄까.
헤헤 그래서 저번부터 눈독 들이던 초콜릿 케이크랑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맛있다. 커피랑 찰떡궁합.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작은 카페에 혼자 앉아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에 씁쓸한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시나요.
여하튼, 짧은 행복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2차전 시작.
평화로운 살로메의 주방
어제 다림질하다가 밤늦게 잤다고 피곤하다고 하면서 출근하던데...
다리미를 너무 기념비적으로 세워두었다. 허허.
따뜻한 차랑 같이 천천히 먹고,
빗소리도 듣고
블로그 글도 정리하면서
여유롭게 오전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보내는 시간과, 공간과, 섭취하는 음식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니 나를 구성하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들인지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중이다.
거실로 장소를 옮겼다.
너무 아늑한 이 집.
살로메는 동양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여행하면서 수집한 다양한 아트피스들이.... 집안 곳곳에 정말 많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아트북이랑 매거진도 정말 많아.
그녀의 직업과 취향이 고스란히 이 집에 있어서 너무 좋다.
나도 나중에 그런 집을 꾸밀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참 집에서 조용히 이것저것 하다가
씻고 준비하고 나가봅시다.
내가 좋아하는 까마귀 블라우스 입어야지.
근데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져서, 밖에 되게 춥다.
두꺼운 자켓을 입을까 하다가 얇은 재킷을 갖고 나갔는데 밤이 되어 후회했다.
(사람들 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이 계절에 패딩을 입고 다닌다)
그냥
잘 있나 궁금해서
하루의 고정된 일과 마냥
내가 좋아하는 동네 전망대에 들렀다.
갑자기 하늘 엄청 깨끗하게 파랗게 구름 구름 하게 바뀌었고
날씨가 굉장히 쾌청해졌다.
이래서 포르투갈 날씨 좋다 좋다 하는 거구나?
변화무쌍함이 매력적이다.
와 하늘
역시 시크릿 전망대!
햇살이 너무 좋아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싶어 졌다.
벤치 말고 벤치 위에 걸터앉았다.
올라가서 앉으니까 전망이 훨씬 잘 보이는구나.
따뜻한 햇살
탁 트인 전망
시원하게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
평화롭고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드는 시간.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중2병 말기 환자처럼, 아무도 신경안 씀)
미역이 되어도 좋아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언제 가져보겠어.
리스본 떠나기 전까지도 여기는 자주 와야지.
가까이에
혼자서 가만히 멍 때리고 치유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참 좋은 위로이구나.
리스본에서 제일 좋아하는 슈퍼 go natural
유기농 & 비건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
건강식품 좋아하는 사람들, 베지테리언인 사람들은 여기 오면 환장할 듯 ㅎㅎㅎ;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료품들, 그리고 정말 많은 옵션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오프라인 마켓에서는 쉽게 접하기가 어려워서
아이허브 등등에서 사람들 직구해서 먹거나 인터넷에서 시켜 먹고 그러는데
여기는 이런 bio 슈퍼들이 많아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여기 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슈퍼를 찾는 사람들은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거 구경하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우유 옵션도 정말 많다.
두유, 귀리 우유, 아몬드 우유, 캐슈너트 우유 등등등-
우유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 비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우유들이 있고.
글루텐프리, 로우팻, 로우 슈가 시리얼들
비건 요거트들
다양한 맛이 첨가된 두부 (두부는 한국게 나음, 여긴 뻑뻑해)
콩고기, 콩 소시지도 종류 엄청 많고
글루텐프리 과자들
요리를 좋아하진 않는데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은 최대한 건강하고 오가닉 한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맘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식료품들 보면 구경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잼나다 잼나 -
포르투갈에도 빈티지샵이 굉장히 많다.
좋은 제품을 셀렉해둔 컨셉샵, 아트 갤러리 같은 고급 빈티지샵도 있고
아래와 같은 레알 빈티지샵도 있다.
잘 보면 괜찮은 것도 있지만, 대충 보면 쓰레기장 같기도 하다
일단 인트로 분위기는 나름 묘했음 괜찮았음.
컵도 꽤 귀여운 것들이 많았다.
모두가 무수히 밟고 지나가는 이 더러운 양탄자도 파네...?
이건 왜 파는 걸까..?
새로운 장소에서
이색적인 것들을 구경하니까
너무너무 재미있다.
정말 독특한 곳이야.
그다음으로 들어가 본 빈티지샵.
처음에 가본 곳이 너무 harsh 해서
여기는 굉장히 깔끔하고 선별된 제품들로 느껴졌다.
아름다운 오브제를 좋아하는
흔키가 보면 환장할 것들이 많다(?)
잠시 쉬면서 핸드폰 배터리도 충전할 겸 로스터리 카페에 들어왔다.
노트에 이야기들을 끄적거린다.
여기서 좋은 생각을 많이 했다.
오트 우유로 만든 라떼맛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길.
오늘도 역시 리스본 거리에서는 버스킹이 끊이질 않고요.
밤이 온다.
lost in 잡지에서 찜해둔 힙 플레이스
minimall 이라는 편집숍에 왔다.
굿굿, 내 스타일에 예쁜 옷들 많았어.
이쪽 지구에, 굉장히 현대적인 힙한 감각적인 (?) 샵 & 카페 & 와인바가 많았다.
아쉬우니까 뭐 하나 집어서 입어보고요,
가격 근데 500유로. 쩝.
그리고 밤거리를 거닐었다.
정처 없이 걷는 것이 곧 나의 일정.
무계획이 계획.
지나가다가 또 괜찮은 야경 전망대 발견!
알고 보니 여기, 그 유명한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에서 주인공이 앉아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앉아서 피맥 하면서 야경 보고, 달보고, 내님 보기 딱 좋은 장소.
분위기 정말 너무너무 너무 좋더라.
나는 혼자라 약간 외롭기 시작 (훌쩍)
가다 보면 정말 작고 아담한 가게인데
따뜻한 불빛만 켜놓은 아늑한 로컬 식당들이 많았다.
힙스터들이 즐기는 힙한 음악과 조명이 뿜어져 나오는 bar도 꽤 있었고.
굳이 한국인들이 블로그에서 많이 추천한 식당들보다도, 돌아다니다가 좋아 보이는 곳 들어가는 것도 좋은 듯!
but 책 냄새 벌레는 (책벌레아님, 책 냄새 벌레) 지나가다가 괜찮은 서점이 있어서 들어가 봅니다.
핸드폰도 꺼져가고, 날이 너무너무 추워서 택시를 탔다.
여기도 택시기사들은 한국 택시기사랑 똑같네.
일단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본다, 가까우면 안 태워 주려고 하나? 흥
대충 계산해보시고, 오케이 타랜다.
그리고 블루투스 이어폰 끼고 계속 통화하면서 수다 떨고 계심.
한국에서도 많이 본 장면.
에혀 그러거나 말거나, 집까지 잘 태워다 주셔서 감사할 뿐.
오늘도 잘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