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키의 로그人- 2. a의 불금 이야기

by 가키


8:00pm

a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찬물로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는 대충 수건으로 탁탁 털어내고

프릴모양으로 목이 늘어난 큰 티셔츠와 통큰 반바지를 입고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게 없다

2리터짜리 생수를 꺼내 입을 대고 벌컥 벌컥 마신다.

주머니에 지폐 몇장을 쑤셔넣고 밖으로 나온다

해가 지는 중.

알록달록하다가

푸르스름한 초저녁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한 여자

슈퍼에 갔지만 딱히 살만한게 없다. 아니 귀찮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부스럭 부스럭 봉지를 벗겨 낼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온 입안이 다 시원해지게

혀끝으로 아이스크림이 입 천장에까지 닿아서 녹아내리도록 야무지게 녹여준다.

꿀꺽 달달한 물이 된 아이스크림을 한 입 삼키자 이때 바람이 분다.

축축한 머리가 바람을 쐬니 온 정신이 다 시원해진다.

기분좋게 청량한 바람이다. 딱 이 짧은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바람.

조금 더 더워지면 이런 기분 좋은 바람은 없을텐데

산책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a는

사실 산책이 아니였지만

산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있었지만, 한 아저씨가 소주 한병을 사서 다른 쪽에 앉는다

내 시간을 방해하다니

a는 좀 더 걸어다니면서 바람을 쐬기로 한다.

근처 초등학교로 걸어간다.

큰 바위를 올려놓고 같이 시소를 타기도 하고

앉아서 서서 누워서 그네를 타기도 하고

정글짐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 야호를 외치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막대로 크게 자기 이름을 써보기도 한다. 모래바닥위에

실내화 걸이에 아슬아슬하게 아이스크림을 걸쳐둔다

마지막으로 철봉위에 거꾸로 메달렸다

a의 눈 안에는 초등학교 건물이 꽉 차게 들어온다. 거꾸로 매달린 학교.

몽블랑이 만든 거짓 그림같았다

저 뒤는 아무것도 없는 마분지로 만들어낸 학교 그림인 것 같았다.

땡그랑 땡그랑

주머니에 있던 아이스크림 거스름돈 동전들이 떨어졌다.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가서

영화랑 책을 보다가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a는

바닥에 떨어진 동전들을 대충 쓸어담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들과 모래알들이 통통통 튕기면서 a의 주머니 안에서 춤을 춘다

모래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한다.

a의 집에는 새로운 손님이 온다.


a는 오늘 나름대로 행복한 금요일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