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늘 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좋다
그때 그때 적어둔 단상들.
1.
그 느낌. 그 향기. 그 색깔. 그 소리
비오는 날, 작은 부분을 볼 것.
작은 꽃에 맺힌 물방울이나
벤치 끝에 맺힌 물방울
2.
16살의 여름, 한 여름, 할머니 댁,
앞에 초등학교, 슬프도록 짙녹색의 버드나무, 아래로 축 쳐진 푸른 버드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할 수 있어
나는 엎드려서 빗물로 푹 푹 페인 모래바닥을 보고있었어 무엇을 관찰하는 걸까.
짧은 반바지로 드러난 다리에 스치는 비릿하고 박하맛 바람들이 스쳐, 비올때만 느껴지는 바람 맛.
친구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운동장, 쓸쓸하면서 오묘하고 몽롱한 분위기야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처럼 어딘가로 통하면 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장마는 얼마나 갈까, 할머니 댁에서 머무는 며칠동안은 나는 신기한 경험을 헀다.
3.
나는 물들도록 아주 짙은 초록색이 가득한 숲이 좋고, 촉촉하게 비가 오는 날 그 숲을 걷는 게 가장 좋아.
4.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물기 뚝뚝 떨어지는 머리로 포트에 물을 올려 탁탁탁탁 끓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물이 끓고 뜨거운 물을 텀블러에 담았다가 잠깐 기다렸다가 뚜껑을 탁, 열었다.
그 위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그 모습이.
작은 공간 안에 꾸역꾸역 눌려있다가
톡 소리를 내며 따이는 뚜껑 사이로
가지각색 아름다운 모양으로 , 아름답고 요염한 곡선과 흔들림 흐드러짐 부드러움 연약함을 뽐내며
뭉게 뭉게 잘도 올라온다
물속에서 번지듯이, 허공에서 풀어지는 ..
찬바람 스치면 곧 사라지겠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이
잠시 멍 하게 했던 종일 추적 추적 비오는 오늘
5.
오늘도 비가 온다고 하더니, 아침 일찍부터 하늘이 금방이라도 울것처럼 회색빛으로 울먹울먹
3시가 다되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올때의 소리, 냄새, 무드, 느낌, 기분, 비와 어울리는 음악, 촉촉하게 젖은 초록빛이나 회색빛
비가 올 때 걷던 거리나, 숲 속, 나의 들뜸과 설레임,
감칠맛나는 매력에 한없이 빠지게 된다
감추고 싶은 것들을 가려주기 때문인지, 씻고 싶은 것들을 씻겨내주기 때문인지, 그냥 인지,
창 끝에 한 알 한 알 떨어지는 물방울을 통해 세상을 보고싶은건지,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비로 커텐을 치고 싶은건지, 알 수 없는 따뜻함을 , 나의 것들의 속 안으로의,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건지.
학창시절 교실 안의 큰 창에 가득찬 비, 그날 따라 유독 창가를 많이 보게 되고, 유독 조용한 학생들, 유독 지루하게 울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한 낮에 더 밝게 빛나는 하늘과 대조되는 백열등.
아련하게 기쁘고 아련하게 슬픈데, 이 느낌을 정말로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