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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은우 Jan 16. 2021

미국 예술대학에서 얻은 투자가치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며 얻은 것들 중 가장 값비싼 것이 무엇일까?" 이 생각은 슬프게도 아빠의 투자에 대한 비전을 들으며 시작되었다. 부산에 살고 있는 나는 올해 여름 서울에 취업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에게 보증금을 6개월만 빌려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주식을 살 예정이라고 했고 지금 내 몰골을 보니 아마도 내게 돈을 빌려주는 것보다는 주식에 투자하는 게 당신에게는 더 이익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나는, 영화라는 분야에서 인정을 받지도, 일을 하고 있지도 않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수익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다. 전혀 나 자신을 변호할만한 건더기도 없기에 나는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상황을 넘겼다. 뭐, 돈이 없으니 고시원에서 살면서 돈을 모으면 될 것이다. 그런 것은 걱정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찝찝하게 남은 질문이 있다. 정말 내가 예술대학에서 얻어 온 것은 무엇일까? 수년간의 유학 생활을 증명해주는, 내 이름이 금박으로 박힌 얇은 졸업장도 아니고, 얻게 된 유창한 영어실력도 아니다. 물론 두 가지 다 내게는 감사하고 소중한 것들이니 감히 아니라고 말하긴 싫지만, 조금 더 깊은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내가 가져온 결론은 '사고하는 방향과 스펙트럼'이었다.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비판하고, 예술 작품을 구상하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사려 깊게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은 교육받아야만 생기는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내가 다닌 학교는 성소수자와 다양한 인종, 그리고 수많은 국가와 주에서 모인 아이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하나의 작은 지구였다.


     우리는 교실에 모여 서로가 기획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크리틱의 시간을 가졌다. 1학년 때는 모두가 정해진 전공 없이 두루두루 모여 교수가 선택한 주제에 대해 작품을 만들었다. 다들 본인이 자신 있거나 관심 있어하는 예술적 표현방식이 있었기에 다양한 작품들을 보았다. 누군가는 영상을, 다른 누군가는 페인팅을, 또 다른 누군가는 조형예술을 했다. 매 수업마다 서로 가져온 작품을 보며 크리틱을 했고 한 작품당 적어도 3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 작가는 크리틱의 방식을 고를 수 있었다.


        1. 먼저 저의를 밝힌 후 대화를 나누기
        2. Cold Read :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대화를 나눈 후 저의를 밝히는 것.


들 중 개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이지 매 크리틱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안락한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예술성과 정치적 올바름을(Political Correctness) 가득 장전한 동료들 틈으로 끼어든 아이들에게는 교실이 정글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백인 학생이 자신의 조각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 어둠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 학생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조금은 유치하지만 흑색으로 어둡고 네거티브한 것을 표현하려 했다."라고 발언했고 학생들은 반발했다. 한 학생이 지적했다. "흑색이 왜 당연히 네거티브한 것이냐? 너는 인종차별의 저변에 깔려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을 네 예술 작품에 생각 없이 가볍게 사용했다." 그 이후로 그 친구가 눈물을 흘릴 때까지 학생들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 일 학년은 각자가 가진 사회적 인식을 한번 더 재검토해 보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맞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래 제작했는지도 중요했다. 퀼트(Quilt)를 만드는 프로젝트에서는 개인적인 것일수록 손바느질 노동을 한 작품이 더 칭찬을 받았고 대기업에 관련된 작품은 상업용 재봉틀로 작업한 작품이 각광을 받았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 노동의 방식까지도 작품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얻게 되었다.


     한 번은 각자 제비뽑기를 통해 도시의 거리들을 배정받아 그곳에서 주운 쓰레기로 그 거리에 대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주어진 6시간 내에 그 거리에 대한 특색과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게 중에 한 학생은 자기가 쓰레기를 주웠던 모든 공간의 사진을 찍어와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선보였다. 교수는 지신의 작품 구성 요소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약점이 될 수 도 있지만 용기 있게 행동했다고 그 친구를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몇몇 재료가 그 작품의 의도와는 다른 곳에서 가져왔기에 결국은 혼이 났다.


     교수님은 이야기했다, 예술가가 세상에 작품을 내놨을 때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 때문에 우리는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 제작하는 방식, 제작할 때 사용하는 재료, 그리고 display에 대해 그 누구보다 세심하게 고려를 해야 한다고. 물론 이런 것들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기본 소양이다. 하지만 매 크리틱마다 교수들과 동료들은 서로의 작품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물고 늘어졌다. 우리는 강제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기상천외한 질문에도 답을 할 자세를 갖추어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영화과 졸업생으로 물론 성공적으로 내놓은 작품은 없지만 나는 내가 기획하고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 조심스럽다. 이 이야기가 만들어져 상영이 될 때 나의 관객은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내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다양한 메타포와 설정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자 한다.


    결국 나의 투자가치는 예술가로서의 철학과 신념밖에는 남지 않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이런 것들이 미래의 내 모습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술은 비평의 장이 될 수도, 놀이 감이 될 수도, 또는 역사의 일부분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의 의식을 바꾸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어낸 작품들은 그 쓰임을 막론하고 그 작가의 철저한 신념으로부터 탄생되었다.


     나는 나와 함께 자라나고 있는 예술계의 청년들이 조금 더 조심스럽게, 또 포용력 있게 서로를 비판하길 바란다. 작품의 아주 작은 부분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큰 의미를 줄 수 있으니까.



이제 나는 밀린 시나리오를 쓰러 가야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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