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개념들
제가 사는 동네는 이상하게 지네가 많습니다. 저는 경기도 태생인데, 경기도에 살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지네가 이곳에는 참 많습니다. 우리 학교 관사는 목조주택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그곳에 지네가 많습니다.
밤에 자다가 무언가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을 켰습니다. 지네 한 마리가 방바닥 저 구석으로 기어가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실내화를 들어 냅다 후려갈겨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계속 기어갑니다. 숨 쉴 틈 없이 3~4차례 더 세게 내리칩니다. 그제야 몸의 30% 정도가 마비되어 더 이상 기어가지 못합니다. 나무젓가락을 가져와 집어 들어 올리고는 변기에 던지고 물을 내려버립니다.
불을 끄고 자려고 해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습니다. 무언가 계속 발 밑에서 돌아다니는 느낌이 듭니다.
방에 지네가 나타나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기어코 잡아서 죽이고는 이곳저곳 약을 뿌려야만 잘 수가 있습니다. 방에 나타난 지네를 죽이는 것은 지네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지네의 기괴한 모습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네를 자주 보게 되고, 지네가 물어도 큰 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려움은 덜 합니다. 우리 학교 한 외국인 선생님은 지네가 자기 배위를 지나가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지네가 낯설지 않게 되면 두려움은 경감됩니다.
아도르노는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이유를 '혐오의 메커니즘'에서 찾았습니다.
자연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 인간은 주술의 시대에는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과 유사하게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부족은 호랑이를 숭배하고, 호랑이처럼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호랑이 모양을 만들어 제물을 바치고, 호랑이 가죽을 입고 호랑이 흉내를 냅니다.
하지만 근대 계몽의 시대에는 자연에 인간을 투사합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로이지만, 이제는 자연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방법은 자연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연에 숫자를 입히고, 분석하고, 추상화해서 자연을 하나의 물질로 치환해 버립니다. 이제 자연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지배가능한 대상입니다.
근대 계몽의 시대에 자연은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자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근원에는 바로 '두려움'이 존재하고, 두려움은 혐오로 바뀌어 대상에 대한 공격적인 지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도, 지배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자연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잘 관리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창1:26-28, 새번역]
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여기에서 '다스리게 하자'는 말은 '약탈'이나 '훼손'의 의미가 아닙니다.
메시지 성경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들로 우리의 본성을 드러나게 하여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집짐승과 온 땅과 땅위에 사는 온갖 동물을 돌보게 하자.” 로 쓰고 있습니다.
즉 다스린다는 것은 '돌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은 숭배의 대상도 약탁의 대상도 아닌 돌봄의 대상이며, 인간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물을 받
근대화라는 것이 빚어낸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훼손된 자연은 인류사회에 큰 재앙이자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연 훼손의 결과는 인간의 지배욕구 때문이고, 이성중심의 근대문명 때문이라는 것이 아도르노의 주장입니다.
무엇이든 이해하고, 분석하고,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철학, 예술계의 노력은 19세기 후반부터 계속되었습니다. 니체부터 시작된 근대 비판은 프랑크푸르트 비판철학자들을 지나 현대 예술가와 환경운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I See You!로 대표되는 아바타이고, 미야자키하야오의 영화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