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개념들-비판철학
2001년에 영화 '반지의 제왕'이 처음 개봉되고, 3년 동안 한편씩 연속 개봉하였습니다. 3편이 우리나라에서만 약 1천4백만의 관중을 모았을 때 까지도 저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옛날 영화를 싫어합니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도 '사극풍'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성공한 '반지의 제왕'은 한번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후 반지의 제왕이 재 개봉을 했는데, 그때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보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의 장대한 스케일과 스토리 구성이 너무나도 훌륭했고, 특히 비주얼적으로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습니다.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의 신화를 연구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톨킨이 기독교 작가인 C.S. Lewis의 친구였다는 사실과, 이 영화가 기독교 세계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도 아실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 이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마블의 세계관은 북유럽과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성공이 신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무비의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신화 소재 영화의 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유럽 사회는 1,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지성 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그 반성의 주요 대상은 1) 근대 이성중심 철학 2) 자본주의였습니다.
이성중심의 철학과 자본주의는 인간을 수단화하는 경향으로 흘렀다는 것이 '비판 철학자(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주장이었습니다.
"진보하는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전부터 인간으로부터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는 승리하고 있는 재앙의 표식 속에 빛나고 있다. 계몽 기획은 세계의 탈주술화였다. 계몽은 신화를 해체하고 지식을 통해 상상력을 붕괴시키려 하였다."
출처: 계몽의 변증학_아도르노
계몽이란 18세기부터 시작된 이성을 중심으로 한 문명화 과정 전반을 의미합니다.
근대화의 핵심 내용은 '이성중심', '합리성'입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고, 받아들일만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1997년 개봉작 '콘택트(Contact)는 외계의 존재를 찾아 나서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엘리너 박사(조디 포스터)는 많은 사람의 회의적인 시선과 예산 삭감 등의 과정 가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외계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결국 외계 존재와의 조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외계존재는 자신들이 생각했던 외계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 어쩌면 사후 세계 또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엘리너 박사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하나의 메시지는 '우리의 합리적 이성을 뛰어넘는 그 어떤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너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한 기계를 통해 우주를 여행하고, 외계의 존재를 만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청문회장에서는 증명되지 못하는 개인의 경험은 '망각 delusion'일뿐이라고 치부되지만, 엘리너 박사는 자신이 경험한 것은 사실이라고 끝까지 주장합니다.
영화의 맥락 안에서 엘리너 박사의 경험은 사실이었습니다. 그저 '이성'이라는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을 뿐이었습니다.
근대는 오만하게도 인간의 이성을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성이란 그저 하나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칸트는 '순수이성'의 능력은 오성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며, 이를 넘어서는 세계는 '물자체'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아도르노는 근대의 이성중심 문명이 상상력과 초월성을 파괴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실은 '지배하려는' 시도이며, 이성의 이해하려는 능력은 '지배하려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다."
독일어 begreifen은 '개념'이라는 뜻인데, 이는 '손에 쥐다'라는 greifen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개념화'한다는 것은 이해하려는 사람의 손에 무언가를 딱 쥔다는 의미입니다. 개념화한다는 것은 다양한 무언가 들을 동일한 특성을 기준으로 잘라내고, 만들어서 손에 딱 쥐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자연을 하나의 인격처럼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죽어있는 물질로 인식했으며, 인간의 이해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름을 붙이며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근대 문명은 신화를 말살했고, 죽은 사물을 건져 올렸습니다.
잠깐 성경의 이야기를 하자면, 성경의 정신은 오래전부터(구약) 자연을 '신'으로 인격화하여 섬기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관은 인간은 신의 형상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자연을 돌보도록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동물과 교감하고,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리스-로마권 신화는 조금 다릅니다. 자연을 신격화하여 신화를 만들고, 인간은 자연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중세 이후에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으로부터 모든 신성을 제거하고 하나의 활용가능한 물질로 만들어버린 계몽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을 위한 자연,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개념을 상실했습니다.
비판철학자들은 근대의 이성중심 문명은 독재적이고, 폭력적인 문명을 양산해 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