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밀실에서의 싸움 2

중학생에게 '고백록' 가르치기

by 진리의 테이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가


이상하게도 10대, 20대 시절에 '가위'에 눌린 경험이 많습니다. 결혼을 하고, 30대가 넘어서 가위에 눌린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10, 20대에 수 많은 고민과 번민, 연약한 심력과 정신으로 인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번은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눈빛이 따뜻하지 않고, 오싹했습니다.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눈을 떴습니다. 일어나려고 했으나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일어나기 위해서 손을 펴 바닥을 짚고, 발 버둥을 치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나의 누운 몸은 그대로 오른 쪽에 있던 침대 아래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매트리스와 침대 다리 사이에 있는 검은 공간 안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나는 마치 문어처럼 두손을 쫙 펴서 방바닥을 부여 잡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밀려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천정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그렇게 여러차례 기도한 후에야 몸이 자유로워지고, 꿈속에서 깨어나 눈을 떴습니다.


또 한번은 고3 시절 독서실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고시원과 같은 곳인데, 방에서 수 많은 칸막이와 커튼으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책상, 의자 그리고 독서등(스탠드)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 작은 공간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천청쪽을 향하여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서서히 떠올라 급기야 칸막이 넘어서 천정과 불과 50cm 남짓한 위치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여러 차례 가위에 눌렸던 경험이 있었기에 몸부림 치지 않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이게 꿈인지 아닌지 가위에서 풀려나면 확인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중에서 고개를 돌려 어떤 칸막이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3~4군데 칸막이에 불을 켜고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가위에서 풀려난 내 의자를 밟고 일어섰습니다. 의자를 밟고 일어서니 다른 칸막이들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확인했던 불빛의 위치와 실제의 위치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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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병원 자료에 의하면 '가위 눌림'을 '수면 마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흔히 가위눌림이라고 알려져 있는 수면장애가 의학적인 용어로는 수면마비를 말합니다. 수면마비는 수면시작 혹은 수면 말미에, 흔히는 꿈꾸는 수면(REM sleep) 직후에, 골격근의 마비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수면 마비의 시작은 급격히 시작되어 1-4분 정도 지속하고 급격히 또는 서서히 끝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소리를 듣거나 신체를 누군가 만지면 이러한 현상에서 쉽게 벗어나게 됩니다. 수면마비 동안에는 깨어있거나 반쯤 깨어있는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하며 움직이려고 애를 쓰고, 죽음이나 질식감을 느끼거나 환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골격근은 마비가 되어도 눈의 근육과 호흡근육은 보존되어 있어 움직이려고 애를 쓸 때 심한 눈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가위 눌림의 특징은 나의 의지와 몸이 서로 분리되는 경험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려워지기는 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wr-1200.sh-18.jpg?type=w1200 아우구스티누스

젊은 시절 방탕한 삶을 살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가 된 이후 그 삶을 청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자신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오랜 습관은 그가 가는 길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내 모든 뼈가 나에게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당신과 계약을 맺으라고 하늘 높이 부르짖어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몸부림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내 몸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의 손발을 움직여 쉽게 따랐지만, 내 마음은 마음이 하라는 바를 수행해 나가는 데서 그것을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단순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벌어지는 고통은 모두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함이 일치되지 못하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어떤 나쁜 이들은 의도를 가지고 나쁜 일을 꾸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은 어떤 자들은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이를 폭행하는 어떤 사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그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살인과 폭행을 저지른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충만함과 행복, 성취감을 경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을 우리는 비정상적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충동과 욕구를 만족시킴으로 짜릿한 충족의 경험과 충만함과 행복은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욕구의 충족은 강력하고, 일시적이지만, 그것의 결과가 자기 자신과 타인의 유익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반면, 충만함과 행복은 은근하고, 지속적이며, 그 행위의 결과가 모두의 영, 혼, 육에 유익을 도모합니다.

욕구의 충족은 타인을 무너트리거나 소모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살인, 폭행, 성 범죄,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모함 등이 그렇습니다. 강력한 욕구 충족 욕망에 사로잡혀 그것을 만족시키면 순간적인 충족감을 느끼지만, 그 결과로 인해 더 많은 혼란과 상처가 남습니다. 하지만, 선한 행동으로 인한 충만함과 행복은 나와 타인이 더불어 살아가도록 돕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가위에 눌려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롬7:18-25, 새번역]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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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인 바울은 내가 선한 일을 하기 원하지만,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선한 의지를 따를 수 있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이 어떻게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지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그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 합니다.

1) 인도하는 빛 2) 믿음의 의지 3) 돕는 존재 입니다.


아주 짙은 밤, 망망한 태평야 한 가운데 배가 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물결이 출렁이며 배가 움직이고, 그 안에 몸을 맡긴 나는 이 곳이 바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불빛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육지이고, 어디로 가는 것이 더 깊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한쪽은 삶이고, 또 다른 한쪽은 죽음입니다.


가만!

나는 육지로 가면 살 수 있고, 더 깊은 바다로 가면 죽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바다에 오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모른다면 다음 순간 비쳐오는 등대의 불빛이 구원의 신호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등대는 육지에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것을 따라가야 살 수 있다는 사전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등대의 불빛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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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불빛이 보입니다. 이것은 초대입니다. 드디어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멀리 있는 불빛이 나를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배가 저절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양손으로 노를 저어 저 불빛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정말로 저 불빛을 따라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반문합니다.

오히려 이 어둠 속에서 살아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옵니다.


노를 몇 번 저으려다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그대로 배에 누워 버리니 편안합니다.

"차라리 이대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얼마나 편해"

그 사이에 배는 점점 더 깊은 바다속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지를 상실한 채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불빛을 향해 노를 정어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는 나의 마음을 힘껏 밀어내며, 일어나 노를 저어 불빛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그 목소리는 내가 노 젓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소망을 줍니다.

목소리는 나의 의지에 믿음을 불어 넣어 소망을 갖게 할 뿐, 대신 노를 저어 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의지는 온전히 나의 소유이기 때문이며, 어떤 거대한 존재라도 그 영역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나는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노 젓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어둠의 존재는 존재는 언제나 숨겨져 있습니다. 그 어둠의 존재는 나의 믿음을 무력화 시킵니다. 절망감을 안겨 주어 불빛을 따라 가고 싶은 나의 의지를 꺽어 버립니다.


마음 속에서 내 의지에 힘을 불어넣는 소리는 '돕는 존재'입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인도하는 빛, 그 빛을 향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믿음의 의지, 그리고 돕는 존재의 도우심이 우리를 선한 빛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빛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둠에 끌려 다니거나, 그 어둠을 혼자의 힘으로 벗어나려하다 실패하고 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깨달았습니다. 스스로의 힘 만으로는 이 거대한 어두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음에서 힘을 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두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확증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너는 이 젊은 남녀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냐? 네 생각에는 이 사람들이 이런 일을 주님의 도움으로 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만 하는 것 같으냐? 그들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나를 그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왜 너는 네 발로만 서려고 하느냐? 그래서 너는 설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 너 자신을 맡겨라. 두려워 말라. 그가 너를 붙들어 넘어지지 않게 하시리라. 두려워말고 너를 그에게 용감히 맡겨라. 그가 너를 영접하여 온전케 하시리라."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도하는의빛, 믿음의 의지, 도움의 존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는 빛을 보았고, 그곳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온전히 자신의 힘만을 의지했을 뿐, 도우시는 존재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죄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일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해내실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 위에 서 있지 않을 때, 그는 낙담하고, 유혹에 흔들렸으며,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 찬양과 감사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를 때 인간 실존은 변화를 경험하며, 종국적으로 선한 빛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끝.


마음의 밀실에서의 싸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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