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밀실에서의 싸움 1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묵상

by 진리의 테이블

대학 시절 어느 날, 오후 호숫가 어느 자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 안에 두 존재가 있는 것일까?"

한 마음은 무언가 옳은 것을 좇는 존재라면, 다른 한 존재는 원하지 않는 것을 하려는 힘이었습니다.

저는 호숫가를 바라보며, 이 신비로운 인간이라는 존재의 내면으로 인해 경이에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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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7:18-23, 새번역]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인격은 하나님의 법으로 표현되는 '옳은 일'을 좇으나, 또 다른 법은 마음과 맞서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인격은 격돌하며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내면의 갈등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선과 악의 싸움은 단순히 마음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마음 속의 싸움은 현실에 반영되고, 그 현실이 하나의 거대한 구조(공중의 권세)를 형성하여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마음 속의 싸움은 단순한 심리적인 작용이 아니며,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두 존재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킬 박사의 친구인 어터슨 변호사는 어느 날 거리에서 흉칙한 한 사내를 목격합니다. 거칠과 무례하며 살기마저 느껴지는 이 사내는 거리를 자나다 사람에게 부딪혔는데, 미안하다는 말한마디는 커녕 넘어진 여자아이를 짓밟고 그대로 도망하려 하였습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흉칙한 그 남자를 잡아 배상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배상한 수표에 지킬박사의 이름이 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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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턴슨 변호사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지킬 박사의 집사인 엔필드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엔필드는 그가 '하이드'라는 사람이며, 그가 지킬 박사의 연구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습니다.

도대체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어떤 관계이길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연결되는 것일까요?

어느날 저녁 지킬 박사의 집 하녀가 자신의 집에서 템즈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강변을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평범한 저녁이었습니다.

거리 저 편에서는 멋진 백발의 노신사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 길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하이드였습니다. 백발의 노신사는 길을 물어 보려는 듯 하이드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 순간 하이드는 미치광이 처럼 지팡이를 휘둘러 그 노인을 공격했고, 급기야 그가 죽을 때까지 때려 살해했습니다.


이야기는 전개되어 결국 지킬 박사가 하이드였다는 사실이 밝혀 지게 되고, 결국 지킬박사는 하이드라는 추악한 존재가 되어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격과 외모가 다른 또 다른 인격이 한 사람으로부터 탄생하게 된 것일까요?


"나의 결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점은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정신을 고결하게 유지하고 사람들 앞에서 위엄있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싶은 오만한 성격과 그런 욕구를 조화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 몰래 쾌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과거를 뒤돌아볼 만한 나이가 되어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이중 생활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 1)


지킬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윤리적 이상이 높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선악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자신을 윤리적으로 몰아붙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내면에 자기 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깊은 욕망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끔직한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은 그 연구의 와중에 발견한 부분적인 사실, 즉 인간은 본래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두 개의 존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여기서 인간이 두 개의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내가 인간의 근본적이고도 완전한 이중성을 인지하게 된 것은, 나 자신 안에 내재된 도덕적 측면을 통해서였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선과 악의 두 인격이 철저하게 두개의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존재를 서로 분리시켜 줘야만 상호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삭정이들이 한다발로 묶여 있어 양심은 고뇌에 빠지고, 극적으로 다른 선과 악이 계속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재앙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두 본성을 분리 할 수 있을까? 언급했던 것처럼 나느 연구실 테이블에서 우연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접적인 실마리를 발견했다."


지킬 박사는 선한 자신과 악한 또다른 자신을 분리 시켜 줄 약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약을 먹으면 지킬 박사는 외모까지도 완전히 변하며 하이드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결국 지킬 박사는 하이드로 변하여 저지르게 되는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약을 먹게 되고, 점점 더 지킬 박사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다가, 결국 영영 지킬박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https://youtu.be/E2FCks0-KFc

하이드가 장악한 온라인 공간

인간 내면의 두 존재는 사회적인 양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시선이 닿는 오프라인의 세상과 그러한 시선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각각 지킬과 하이드처럼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https://youtu.be/EVF_GGphPUY

10월 14일은 고인이 된 연예인 설리가 죽은 날입니다. 2019년 10월 14일, 당시 나이 만 25세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녀를 그토록 괴롭혔던 것은 무엇일까요?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하나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이전에는 수많은 사건과 결정들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이겨내고 살아가지만, 소수의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돌아보아 회개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설리는 악성 댓글로 인해 많이 힘들어 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의견입니다.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고, 관심의 대상이 되면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언론의 관심사가 됩니다.

특정 연예인에 관한 기사가 올라가면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게 되고, 그렇게 클릭된 기사는 돈을 벌게 됩니다. 즉, 대중이 클릭하게 되는 기사는 돈이 되는 것입니다.

부적합한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기사가 그 반대의 기사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한 기사가 훨씬 더 많은 조회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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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의 죽음을 둘러싼 기사도 그녀의 일탈과 부적절한 행동을 비난하는 듯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좋게 보면 괜찮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고, 그 나이에 그정도의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인데, 그것이 마치 그녀의 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처럼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왜곡된 내용에 자극된 악플러들은 스트레스를 풀듯이 악플을 올리고, 안타깝게도 설리는 이 세계의 왜곡을 진실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녀에 대해서 우호적인 사람들이 더 많았을텐데 말이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은 사회적으로 나타납니다.

겉으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면은 '선하고 싶은 욕망'과' 상호 감시'라는 작용 속에서 악한 면이 통제를 받습니다. 지킬이 그러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온라인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자신의 악한 면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웹진에 게재된 악플 관련 글 중 악플러의 심리에 대한 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악플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악플러들의 내면에는 어떤 삐뚤어진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악플러들이 대부분 심리적 열등감으로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면서 순간순간 긴장감과 짜릿한 느낌을 맛보려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은 자신의 분노, 비난의 감정 등을 쉽게 올릴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마음껏 올려도 자신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생각 없는 10대들이 주로 악플을 달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경찰에 적발된 악플러들을 보면 40~50대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순간적으로 짜릿한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익명의 공간에서 악을 응징해야 한다는 심리도 한 몫을 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정의의 사도’가 되곤 한다. 본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로의 보복운전도 이와 비슷한 심리다. 아울러 군중심리도 영향을 미친다. 나만 악플을 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비난과 부정적인 글 을 올리는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배설한다. 게다가 악성댓글은 알코올 의존증이나 도박 중독과 같이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중독성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악플이 만들어진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규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사람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생각하여 악플을 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과거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해보겠습니다. 과거 대중문화를 극단적 선과 악으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콘텐츠가 청소년과 사회에 많은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그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자료를 읽다 읽다 '레이디 가가'라는 한 미국 여성가수의 콘텐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보이는 기괴하고, 부도덕하며, 반 기독교적인 콘텐츠를 악으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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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이러한 생각을 페이스북에 게재하며, 당시 예정되어 있었던 '레이디가가 한국 콘서트'를 반대했습니다.

그 콘서트의 스폰서가 현대카드였는데, 페이스북에 현대카드를 가위로 잘라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당시 저의 제자가 한명 있었습니다. 미국 UCLA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그 제자가 저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요약하면 '레이디가가의 개인적 일탈이 모두 수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매체의 역학과 대중의 인지 등 다양한 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저 레이디가가를 무조건 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제자의 반론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좀 더 공부를 하게되고, 생각하면서 저의 행동이 전혀 그리스도인답지도 않았고, 정상적이지도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사랑'이 없는 혐오의 행동이었다는 생각에 지금도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해당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고,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다시 이 기회를 빌어 저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우리 사회에 온라인 공간은 지킬박사의 하이드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잇다른 연예인들의 죽음으로 지금은 연예 관련 기사에는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되었고, 온라인 상에서 실명 댓글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빛을 소망한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은 인간의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eL9DRqR_64

김영호라는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다양한 악을 접하며, 스스로 악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존재가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혐오하며 스스로 자살하게 됩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과연 한 인간이 절망적인 존재로 변해버린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자신의 선택인가? 구조적인 문제인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은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화되고 제도화 됩니다.

하나의 메카니즘을 형성하여 인간을 그 안에 가두게 됩니다. 그 안에 갇히 인간은 개인의 선한 양심에도 불구하고 악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는 구조화된 악을 '사탄'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로 의인화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조화된 악'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탄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며, 인간의 구원에 관한 중요한 질문입니다.

주인공 김영호는 무수한 악을 만나고, 스스로 악을 저지르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한 양심과 순수한 사랑을 상실합니다. 이 둘을 잃어버린 인간은 추악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아플 때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온 졸업생의 얼굴에서 삶의 소망과 기대를 잃어버린것 처럼 보일 때 입니다.

세상을 알만큼 알았다고 하는...어쩌면 자신감? 어른이 된 느낌? 같은 것을 확인할 때 마음이 참 아픕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빛이 어둠을 이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빛을 상실하며, 우리는 어둠이 되어 버리며, 그 삶은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는 절망을 안겨준다는 메세지가 영화 박하사탕에 있습니다.


To be Continued.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헨리 지킬의 최후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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