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근원에 대하여 2

성어거스틴 고백록 묵상하기

by 진리의 테이블

악의 원천을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움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원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먼저, 하나님은 최고선이시며 타락할 수 없는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악의 원천일 수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악이 나오고, 그분이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면, 하나님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논증은 논리적 귀결이라기보다는 직관적 귀결입니다.


"나의 도움이 되신 하나님, 이리하여 당신은 나를 그러한 쇠사슬(점성술)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악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도 그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이러한 신앙은 내 마음속에 안전하고 튼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악이 어디서부터 왔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해 내 마음은 심히 불안해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근원을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워 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좋은 것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원천을 존재론적으로 풀어갑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보다 좋은 것이다.

사실 이 전제는 얼핏 받아들이기 힘든 것 처럼 보입니다. '왜?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보다 낫다는 거지?' 사실 이 전제는 고중세 인들이 당위적으로 여긴 것이어서, 증명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지식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모든 과정과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일어난다'고 합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대로 두면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즉 존재에 무질서가 증가하여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쁜 모양을 유지하던 빵도 1년 후에는 썩어 사라져버리는 것 처럼 말입니다.

즉, 형태를 가지고 존재하는 사물에 '엔트로피가'이 증가하면, 그것은 존재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질서의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안에 무언가 좋은 것(질서)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질서는 좋은 것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확실한 것은 무엇이 나빠지게 됨은 그 안에 좋은 것이 상실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존재가 그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상실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존재'와 '좋음'을 연결시킨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전제로부터 '악'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절대 악'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 성격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그 근원을 찾아왔던 악은 사실 실체가 아닙니다. 만일 악이 실체라면 그것도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이 하나의 실체로서 나빠질 수 없다면 그것은 최고로 좋은 것이 될 것이요, 나빠질 수 있다면 그 안에 좋은 것이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당신이 모든 것을 좋게 지으셨다는 것과 당신이 창조하시지 않은 실체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더 나빠지려면 그 안에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나쁜 것은 존재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면서도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것은 '절대선' 밖에는 없습니다.

반면 '절대악'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으면서도 '존재'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논리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창조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그가 마니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마니교는 우주를 선과 악의 극단적 대립으로 바라보며 물질적인 세계를 악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마니교의 관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계 안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악이 정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만 아니라, 당신이 창조한 것을 전체적으로 볼 때 악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위에 있는 존재가 아래에 있는 존재보다 더 좋으나 모든 피조물이 함께 회합해서 존재한 것이 위에 있는 존재가 홀로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전환을 시도합니다.

그는 세상의 많은 부분은 악이며, 그 악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에는 악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물질)는 모두 선한 것이고, 행여 불완전해 보이는 어떠한 것도 큰 차원에서 균형을 잡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악을 경험하고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사악이란 무엇인가?' 추구한 결과 내가 알게 된 것은 사악이란 어떤 실체가 아니고 (인간)의지의 왜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지의 왜곡이라 함은 그 의지가 최고 실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자신 안에 깊이 놓여 있는 보배를 버리고 낮은 부분으로 떨어져 밖으로 잔뜩 부풀어 있음(교만)을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 물질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악은 바로 인간 의지의 왜곡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의지의 왜곡이란 순리를 버리고 역리를 선택한 인간의 '자유의지'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인간의 의지'가 악의 원천이라면, 또 다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마땅히 선택해야 할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더 낮은 가치를 선택한 것 뿐입니다.


예를들면, 친구에게 화를 낼 수도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을 보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친절이 아닌 화를 선택하게 될 때 화는 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더 낮은 가치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즉, 악이라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적절함을 선택하지 못한 '자유의지의 왜곡'이 악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노예가 된 의지)

영화 스파이더맨 1에 보면 '그린 고블린' 이라는 빌런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스파이더맨의 절친 '헤리 오스본'의 아버지 입니다. 헤리 오스본의 아버지 '노먼 오스몬'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열정으로 스스로 과학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가 그린 고블린이라는 악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노먼 오스본은 그린 고블린으로 나쁜 짓을 일삼는 자기 자신을 보고 놀랍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린 고블린이 가지고 있는 '파워'를 탐내하기도 합니다. 어느날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때, 그린 고블린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힘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목소리입니다. 노먼 오스본은 이를 거부하려하지만, 결국 그린 고블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고 말죠.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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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강력하게 우리에게 힘을 행사하는 하나의 자아가 존재하며, 동시에 이를 통제하려는 또 다른 자아가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이를 두고 id(이드)와 super ego(수퍼에고)사이에서 중재하는 ego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리비도를 만족시키려는 자아와 또한 이를 다스리려는 또 다른 존재를 단순히 '심리적 차원'에서만 다루는 프로이드의 입장을 지지 하지 않습니다.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실체적 입장'을 지지합니다.

수퍼에고는 하나의 심리적 작용으로 감지되기는 하지만, 좀 더 높은 초월적 차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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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근원'이 오염된 인간의 의지로 부터 발생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의지가 '노예화'되었다고 말하며 스스로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쇠사슬에 의해서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의지의 쇠사슬에 의해 묶여 있었습니다. 원수가 내 의지를 지배하여 그것으로부터 쇠사슬을 만들었고 그 쇠사슬에 의해 나는 묶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왜곡되어 육육(libido)이 생겼고, 육욕을 계속 따름으로 버릇이 생겼으며, 그 버릇을 저항하지 못해 필연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쇠사슬의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쇠사슬이라고 불렀습니다-나를 노예의 상태에 강하게 붙들어 매어 놓았습니다...이제 나는 내 경험을 통하여 내가 읽은 '육체의 소욕은 영을 거스르고 영이 원하는 것은 육을 거스린다 (갈 5:17)'는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악의 원천은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그 자유의지가 오염되어 노예화 되었으며, 잘못된 선택이 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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