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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Mar 22. 2020

20 문명의 비밀: 신경가소성. 첫 번째 이야기

어떻게 인간은 이렇게 뛰어난 환경 적응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고 상상해보자.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편안하게 동네를 활보한다. 조금 더 지역을 넓혀보자. 인간은 적도의 열대 우림과 건조한 사막, 북극, 외딴섬, 고산지대에 이르기까지 날씨나 기후에 상관없이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많은 척추동물 중에서 이런 일은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어떻게 인간은 이렇게 뛰어난 환경 적응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의 비밀은 바로 뇌에 있다. 인간의 뇌는 환경이 바뀌면 작동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이내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진다. 주변 환경에서 오는 자극에 따라 뇌세포인 뉴런들의 신호전달 패턴에 변화가 생기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반응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경가소성 덕분이다.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이용하게 되면서 지금의 놀라운 현대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이해하기 위해 꽤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과 그 이상의 지지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뉴런은 이웃한 뉴런으로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이웃한 뉴런과 밀접하게 연결돼야 한다. 이 연결 부위를 시냅스라고 하는데, 그 간격이 20만 분의 1밀리미터로 매우 좁다. 각각의 뉴런은 주변 뉴런과 대략 1000개의 시냅스를 이루므로 뇌에는 약 100조 개의 시냅스가 있다. 실로 무지막지한 숫자다. 


그런데 시냅스는 그 연결 강도가 모두 동일하지 않다. 여기에 신경가소성의 비밀이 있다. 많이 이용하면 시냅스는 더 강화되고 뉴런과 뉴런의 신호전달이 더 긴밀해진다. 반대로 적게 이용하면 시냅스의 강도는 감소하고 뉴런 사이의 신호전달도 약해진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한다. 


바벨 운동을 많이 하면 팔뚝이 굵어지지만, 팔을 쓰지 않으면 팔뚝이 가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즉 어떤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일을 잘하도록 만든다. 수영을 배울 때 좋은 자세를 만들기 위해 팔 돌리기 연습을 많이 하는 거나, 열심히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것도 신경가소성을 이용해 실력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런A가 뉴런1과 뉴런2와 각각 시냅스를 이루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엄지 손가락을 구부리라는 신호는 뉴런A를 통해 뉴런1로 전달되고, 엄지 손가락을 펴라는 신호는 뉴런A를 통해 뉴런2로 전달된다. 만약 엄지 손가락을 구부리는 동작만 하고 펴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면, 뉴런A와 뉴런1의 시냅스는 강화되는 반면 뉴런A와 뉴런2의 시냅스는 약화된다. 이처럼 신경가소성은 사용 빈도나 강도에 따라 시냅스가 더 강해지기도 하고, 더 약해지기도 하는 현상을 말한다. 


초기에 뉴런A는 뉴런1과 뉴런2와 비슷한 강도로 연결되어 있다. 뉴런1은 엄지 손가락을 구부리는 근육에 신호를 전달하고, 뉴런2는 엄지 손가락을 펴는 근육에 신호를 전달한다.
엄지 손가락을 구부리는 동작만 하고 펴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면, 뉴런A와 뉴런1의 연결은 강해지고 뉴런A와 뉴런2의 연결은 약해진다.

시냅스가 변화하는 것이 아닌 뉴런 자체가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를 뇌의 특정 부위에서 잘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위가 해마이다. 해마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다. 페니실린 발견처럼 위대한 발견이 우연히 일어나듯, 이러한 발견도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 암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추적하기 위해 암 환자들에게 염료를 주입하기도 하는데, 해마에 이러한 염료 표시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거치면서 새로운 기억을 무수히 만들어낸다. 새로 생겨난 경험들을 저장하기 위해 해마에서 새로운 뇌세포가 생겨나는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인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신경가소성 덕분에 인간의 뇌는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변할 수 있다. 자극의 유무나 빈도에 따라서 시냅스의 강도가 변하고 뇌의 신호 전달 패턴에 변화가 생겨 이전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이게 된다. 뇌는 주변 환경에 맞춰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생태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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