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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검 Sep 13. 2022

어서 와 검도는 처음이지

30년 생활 검도인의 초보에서 5단까지

프롤로그 



훌쩍 시간이 흘렀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검도를 시작했으니 햇수로만도 강산이 세 번째로 변하고 있다.


단군이래 가장 축복받은 세대였다고 할까?.

대학교 학과 사무실마다 대기업 원서가 넘쳐났고 썩 괜찮은 중견기업들은 졸업도 전에 입도선매하듯 괜찮은 학생들을 모셔(?) 갔다.


기업체 몇 군데에 원서를 넣고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나 싶었는데 웬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찬바람 불던 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마감 10분 전에야 원서를 접수하고 또다시 '나머지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딱 2년만 더 공부해 보자'며 시작했던 공부가 어린 시절 사주팔자 봐주시던 할아버지 말씀대로 평생 연구하는 직업이 됐다.


대학원생.  참 불쌍한 존재다.


집에 학비 달라며 손 벌리기도 어렵고, 친구들이랑 만나서 술 한 잔 하려고 해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니 어느 자리 하나 떳떳하게 나설 수도 없다. 교수님을 하늘로 알고 모시지만 기껏해야 하는 일은 용역 보고서 편집이나 발표자료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조교일을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용돈도 적지 않게 벌었지만, 양복에 넥타이로 멋지게 차려입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만 보면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 녀석 들하고 신사동 근처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자정이 넘어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더니 새벽 네시에 작은 놀이터 그네에 앉아 까딱 거리며 아침 해를 맞이했다.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을 빗어 넘기고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거슬러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신세라니.

버스에 내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아저씨 한분이 운동복 차림으로 허름한 상가 사이로 들어가는 게 보였고  칠이 다 벗겨진 상가 입구에 '검도'라고 써진 간판이 하나 서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지금은 보기 힘든 노란색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검도' 도장을 찾아 전화를 했고 그렇게 첫 인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검도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일을 겪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검도를 하지 않았으면 생업과 연구에 더 큰 진전이 있었을지, 아니면 검도 덕분에 지치지 않고 더 잘 버틸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검도가 내가 되고 내가 검도가 되면서 얻을 수 없는 답을 찾으며  함께 해 왔다. 학위논문을 마치려고 일 년간 검도를 중단했던 적 말고는 유학생활 중에도, 연구 중에도 크게 오래 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검도를 한다고 하면 많은 질문을 받는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부터, 정말로 젓가락 하나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냐는 이야기까지.

어떻게 그렇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냐는 동경 어린 눈빛이 있는 반면 바쁜 세상에 검도할 시간이 어딨느냐며 한심한 듯 쳐다보는 눈길도 많았다.


남들이 어떤 궁금증을 갖든,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어제도 도장에 들러 죽도를 뽑아 들었고, 내일도 큰일이 없으면 호면을 벗으며 젖은 땀방울을 닦을 것이다.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두 손으로 중단을 잡을 수만 있다면 내일도 도장에 있을 것이다.  내 곁에 있는 많은 검도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나와 함께 교 검하며 늙어갈 것이다.


돌아보면 검도에 대한 열정만큼 갈증도 컸다.


눈이 벌게지도록 서점과 유튜브를 뒤지며 검도 자료를 찾았지만 단편화된 블로그와 아직은 이해가 쉽지 않은 고단자 선생님들의 어려운 해설서가 대부분 이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검도 서적을 구입하고 읽어봤지만, 초보자들이 손쉽게 참고할 만한 서적은 많지 않았다. 검력이 뛰어난 선생님들의 어려운 말씀과 전통검도에 대한 설명, 그게 아니면 대형서점의 취미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 서적을 용어도 맞지 않게 번역한 책들이 대부분 이였다.


검도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도장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도복과 호구, 시합과 합동 연무, 그리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최소한으로 갖춰야 하는 각종 자격증과 심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자료를 정리해 본다면 새로 검도를 수련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검도인들이 동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검도는 인연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뵙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시간이 될 때 틈틈이 적어놓고 정리했던 글들을 모아 선생님의 가르침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컸다.   


글을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갈등을 했고, 여전히 주저한다.


선수 출신 전문 검도인도 아니고, 크고 작은 지역대회에서 몇 번 입상한 게 고작인 순수한 아마추어 검도인의 경험을 정리하는 것이 과연 새로 검도를 접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도와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가족을 이루고 소중한 친구들과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며 깨우친  아마추어 검도인의 이야기를 솔직히 전달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검우들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생활 검도인이 직접 체험한 검도 생체실험과 좌충우돌의 소사라고나 할까?  우공(愚公)의 이산(移山) 정도로 가볍게 보아주시기 바란다.


부단한 평생의 검도 수련을 통해 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모든 검도인의 수행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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