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 어이가 없다. 3일의 여행 기간 동안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오란다. 심지어 여행지도 내가 고를 수 없는데 행복을 어찌 찾아올 수 있을까. 돈만 대주면 다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난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N포로 일컬어지는 세대의 일원이었지만 난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다. 좋은 직장, 예쁜 마누라, 공부 잘하는 자식까지... 난 누가 봐도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어찌됐든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제안에 응했다.
여행 첫 날, 집 앞에는 이미 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이 보낸 차였다. 차에 짐을 싣고 기사님에게 여행지가 어딘지 물었다. 하지만 그는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참 거 미리 알려주면 덧나나...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이내 차가 곧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니 어느 한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요즘 시대에 아직도 모래바닥 운동장이라니... 어지간히 촌구석인 듯 했다. 운동장에는 아이 몇몇이 모여 야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야구에 미쳐 살았다. 저 시절에는 야구 선수가 꿈이었는데...
나는 스탠드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아이들은 해가 완전히 지고 저녁 먹을 때가 돼서야 돌아갔다. 해가 졌기 때문에 여행은 더 이상 무리였다. 때마침 차가 와있었고 나는 기사님께 숙소로 가달라고 했다.
첫 날부터 여행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야하는데 일단 행복감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뭐 아직 이틀이 남았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여행 둘째 날이다. 숙소 앞을 나서니 역시나 차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기사님은 목적지를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니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래 이게 여행이지. 군복과 제복 입은 사람이 많은 것으로 봐선 군 관련 축제 같았다.
축제 구경이 한창인 와중에, 굉음과 함께 머리 위로 전투기 편대가 v자를 그리며 날아갔다. 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난 탑건 세대도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전투기 조종사를 꿈꿨다. 하지만 왜 군인이 되려 하느냐, 군인 되면 고생밖에 더하느냐는 가족의 반대에 사관학교도 지원해보지 못한 채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축제도 구경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전투기 곡예비행도 봤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영 찝찝하다. 아직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 여행을 떠나고 나서 더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일 여행을 끝마쳐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날에도 역시나 기사님은 일찍 도착해계셨다. 오늘은 체험 일정이 있을 거란다. 뭐 그래도 나름 여행이라고 다양한 코스인 것 같다. 차가 멈추고 내리자 한 젊은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카메라 한 대를 내게 쥐어주더니 오늘 촬영하는 것 좀 도와달란다. 어이가 없다. 오늘 예정된 체험이 촬영이라니... 이럴거면 미리 언급이라도 해주던가...
갑작스러웠지만 대학 시절 카메라 들고 이것저것 찍어봤던 나였다. 보아하니 나에게 촬영을 부탁한 친구들도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촬영이 끝나니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촬영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아니 즐거웠다.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무엇인가에 집중했던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촬영이 끝난 것이 아쉬웠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늘도 돌아가는 길이 씁쓸하다. 이제는 회장에게 돌아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야 하지만 아직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난 지금 행복하지가 않다.
차가 회장의 집 앞에 멈춰 섰다. 이제 답을 들려주러 가야 한다. 회장은 집 앞 마당에 서있었다.
“여행은 즐거웠나” 회장이 물었다.
“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내가 내준 숙제는 잘했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사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행복이 무엇인지 더 어려워졌습니다.”
회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자넨 여행을 떠나기 전 내게 행복하다고 말했네. 그러면서 포기한 게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지”
...
“자넨 정말로 포기한 것이 없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내 꿈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것도 세 번이나... 인생에서 포기한 것이 없는 줄 알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살았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네가 우리 회사에서 해준 게 있으니 자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려하네”
“네? 다시 꿈꾸던 것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장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다.
탕!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내가 죽은 건가? 서서히 다시 눈을 떴다. 굉장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내 방이었다. 꿈이었다. 더 이상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