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제나 차원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차원에 대해 얘기할 때면 항상 어떤 의지가 그에게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차원에 대한 그의 열정과는 달리, 그의 차원 얘기는 주변 사람에게 환영 받는 주제는 아니었다. 대다수는 차원 얘기에 대해, 처음에는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곧 시큰둥한 반응들을 보였는데 차원에 대한 그의 얘기가 너무나 진지해서 결국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4차원이니 5차원이니 심지어 10차원이니 하는 것들은 그리 와 닿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복잡했다. 그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럼에도 간혹 (적어도 나에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고 동전에 관한 이야기가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흰 종이 위에 동전을 하나 놓고는, 동전을 둘러싸는 원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선 흰 종이 위에 사는 2차원의 존재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나의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2차원의 존재조차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나의 모습을 눈치 챘었던지 그는 질문을 다시 바꿨다. 종이라는 평면 위에서, 동전을 원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동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원밖에 동전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그것이 동전이 종이를 벗어난 방식이라 지적했다. 그래서 난 동전을 들지 않고는 원 밖으로 동전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답을 듣고서는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2차원에 사는 존재는 그렇기 때문에 원 안의 동전을 절대 꺼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3차원의 존재는 동전을 꺼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질문을 하나 이어갔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전을 꺼내는 모습을 2차원의 존재가 바라보면 어떨까?”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신이 난 듯 대답을 이어갔다.
“눈앞에서 동전이 사라질 거야. 그리고 왜 사라졌는지도 모를 거야”
난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동전 드는 것을 보고 있는 거 아니야?”
“그들에겐 앞뒤, 오른쪽 왼쪽은 있어도 위와 아래는 없어. 그러니까 동전이 위로 들리는 순간, 2차원의 존재한텐 동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거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다음에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러면 3차원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4차원으로 간다면, 우리 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그럼 우리가 4차원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야?”
“아직은 몰라”
난 그의 대답에 실망감을 느꼈고 이 복잡하고 지루한 얘기는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의 어떤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가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왜냐하면 그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덧 사회도, 사람도 그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누구는 그가 큰 빚을 져서 해외로 도피했다고 했다. 누구는 그가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도 금세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누구도 그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문득 기억해낼 수 있었다. 4차원에 갈 수 있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불가능하다가 아닌 아직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어쩌면 그가 정말 4차원의 세계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세계. 그의 모든 열정과 관심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던 세계. 하지만 도달하는 순간 사라질 수밖에 없어 누구도 알 수 없고 알아줄 수 없는 세계. 그는 그런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4차원의 세계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결과를 알 수조차 없었다.
그는 그 여정의 끝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인생의 목표와 성취를 누구도 알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차원 얘기를 그토록 한 이유가 누군가는 알아 달라 외치고 있었던 것일까. 내게 동전 얘기를 해준 것은 끝에 대한 예고에서였을까. 나는 그가 사라진 지금에서야 그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