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었더라. 너무 사소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분명 무슨 계기는 있었던 거 같은데, 아니 어쩌면 이 또한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를 이토록 미워하고 있는지, 미워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이유 따위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된 건가. 이젠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그토록 피해왔다. 최대한 도망쳤다. 마주하기 싫었다. 그런 그를 몇 년이 지나서야 마주할 수 있었다. 거의 그대로였다. 다만 얼굴은 좀 더 창백했고 몸에는 힘이 없었으며 좀 더 야위었다. 무엇보다 숨을 쉬지 않는 채 누워있었다.
그게 동생을 본 마지막이었다. 앞으로는 영영 왜 멀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옷을 몰래 입어서? 밤마다 시끄러워서? 그런 이유일 리가 없다. 애도 아니었고 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동생이 성인이 됐을 무렵부터다. 그런 애같은 이유로 멀어졌을 리 없다. 돈 문제? 돈 문제는 얽힌 적이 없다. 동생에게 몇 번 용돈을 쥐어준 적은 있지만 서로 큰돈을 주고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무슨 이유였을까. 딱히 감정을 드러낸 적도 없다. 크게 화라도 냈으면, 소리라도 지른 적이 있었으면 그걸 이유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멀어졌다. 멀어지고 미워졌다.
동생은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떠난 것도 그 이유겠지만 평소에 기록이란 것을 하는 애가 아니었다. SNS를 하지도 않았다. 뭐 했었더라도 볼 방법도 없었을 뿐더러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알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진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없어지고 나서야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니... 영화 속 클리셰 같은 이야기를 내가 경험할 줄은 몰랐다. 이젠 내게 진짜 형제가 없다.
동생이 죽은 후 한 달여쯤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았기에 그 번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전화가 몇 번이나 더 온 이후였다. 그는 문자로 본인이 누구인지 밝혔다. 동생의 친구란다. 그가 실제 동생의 친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동생을 모르는데 동생의 친구를 알 리 없었다. 그가 진짜 친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약간의 기대감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보통 이 시기에 이런 사람이 내게 연락했다면, 동생에 대해 말해주려 연락하기 마련이니까. 나 자신이 우스웠다. 죽은 이후에나 궁금증이 생겼으니.
동생의 친구란 자를 만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자를 확인하고 일주일 만에 약속을 잡았다. 일도 한가했고 직접 찾아온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만났다. 그는 본인의 이름을 경수라고 소개했다. 난 그제서야 이 경수란 사람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졌다. 물어보니 민혁이에게 받았단다. 그래 민혁이. 그는 동생의 중학교 동창이다. 당시에야 동생과 같이 어울렸으니 번호도 서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에야 연락이 끊긴지 한참이다. 동생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봐선 동생과도 연락이 끊긴지 한참인 것 같았다. 나는 민혁의 연락처가 없었다. 경수란 자가 어떻게 민혁이를 알고 있는지는 궁금했지만 더 캐묻진 않았다. 그만큼 내가 민혁이를 잘 알지도 못했다.
나는 경수에게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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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형님 동생 할게요. 아니 해야 해요. 일주일만...”
내가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사람에게 이런 뜬금없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동생이 되겠다니... 그냥 술자리의 스쳐 지나가는 농담이었을 뿐인데. 그걸 진지하게 지키겠다는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정민이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장례가 완전히 끝나고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대학 때는 그래도 가깝게 지냈었다. 학과 생활을 거의 안했기에 대학 친구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정민이 만큼은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낸 동기였다. 하지만 으레 대학시절 친구들이 그렇듯, 군입대, 휴학, 취준 등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다보니 점차 마주치지 못했고 그렇게 자연스레 멀어진 인연이었다. 서로 겹치는 인연도 거의 없었기에 점차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건덕지조차 없었다. 심지어 그의 죽음까지도.
정민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카톡 프로필을 훑어보다가였다. 익숙한 얼굴의 사진이 있었고 정민이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계정의 이름은 민혁이었다. 민혁이 누구였더라... ‘아 그때 몇 번 같이 껴서 어울렸던 정민이 친구...’. 상태 메시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정민이가 죽었구나.
그때만 하더라도 딱히 민혁이한테 연락해볼 생각은 없었다. 정민이조차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었고, 내가 민혁이를 기억 못 했던 것처럼 그도 나를 기억 못하고 있을 테니까. 그냥 한 때 알았던 인연이 떠나갔구나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래도 지난 그와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 정민이와의 관계는 남달랐다. 아무리 친해도 가족의 뒷담을 서슴없이 나눌 수 있는 관계는 흔치 않았으니까. 심지어 서로의 가족을 대신 욕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친구였다. 정민이는 본인의 형을, 나는 내 아버지 욕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의 가족이 더 거지 같은가. 이상한 데서 경쟁 심리가 붙었다.
“야 그래도 너네 아저씨 정도면 훌륭하시지. 진짜 네가 우리 형을 몰라서 그래. 형이라 부르기도 그렇다. 걔는 진짜... 아...시발...하...”
“형제가 그 정도 안 친한건 그냥 평범한 거 아니냐. 그리고 나이도 엇비슷하잖아. 진짜 꼰대하고 살아봐라. 집이 제일 싫다 나는”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가족 욕을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경쟁을 했다.
“야 네가 우리 형하고 일주일만 살면 그런 소리 안나온다”
“그래? 난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럼 지금은 우리가 살아있으니까 좀 그렇고. 둘 중 한 명 먼저 죽으면 그 사람들 찾아가서 일주일만 가족으로 살아보자. 내가 죽으면 넌 내 형 동생하고. 네가 죽으면 난 네 아빠 아들하고. 길게는 그렇고 일주일만”
“뭔 소리야. 너 곧 뒤지냐? 그리고 그 양반들이 우리보다 먼저 죽을텐데 그런 가정해서 뭐하냐?”
“사람일 모르는 거야. 둘 다 경험해보면 누가 더 거지 같은 가족 뒀는지 알겠지”
“근데 그걸 우리 둘 중 한 명 뒤지고 나서 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
“그런가? 그러네. 헛소리 나오는 거 보니까 나도 취했나보다”
“그래도 재미는 있겠네. 다시 말하지만 난 너네 형하고 잘 지낼 거다”
그냥 대학시절 지나가는 술자리 농담이었을 뿐이다. 왜 이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그런데 생전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농담을 지켜야만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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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 동생이요?” 정석은 자신이 경수의 말을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생각했다. ‘친한 동생이 되겠다는 말이겠지, 가족이 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그런 말이 아니겠지’
“네... 일주일만 저하고 친형제... 아니 친형제가 될 수 없지만... 의형제? 아니 그건 또 아닌데... 죄송해요 저도 이런 얘기를 진짜로 드리게 될 줄은 몰랐어서...” 경수는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선 정민이 정석을 증오에 가깝게 싫어했단 사실을 말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의 말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는데, 일단 경수씨 오늘 저 처음 본 거 아니에요?” 정석은 경수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사기꾼처럼 보이는 자의 말을 계속 듣고 싶어졌다.
“네 처음 뵈는 거죠... 실은 제가 정민이하고 약속을 했거든요...” 경수는 그 말을 시작으로 정민가 한 어떤 약속을 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단 약속의 목적, 서로 본인의 가족을 미워했고, 비교우위를 가리기 위한 내기의 일종에서 비롯된 약속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못했다. 당연히 정석에 대해 정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한 말할 수 없었다.
경수의 설명에도 정석은 의심을 풀 수 없었다. 정석은 온통 경수란 작자가 나한테서 무엇을 빼먹으려 이 말도 안되는 얘기를 꺼내고 있는 것인가,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작은 부분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혹시라도 경수를 통해 정민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정민에 대한 본인의 죄책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경수씨, 제 입장에선 경수씨 말을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그런 약속을 했다하더라도 술자리 농담에 불과한 얘기를 왜 굳이 지키려 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경수씨도 정민이를 못 본지 한참 됐다면서요”. 경수는 이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본인의 부탁을 거절당할 수도 있음을 말이다. 경수는 정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생각에만 빠져있었고, 이를 형인 정석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만 몰두해, 말을 꺼낸 이후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러네요... 어...” 경수는 마땅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입을 쉽사리 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석은 오히려 이러한 경수의 모습에서 약간의 진실성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경수의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러면 만약 우리가 일주일간 형제가 되기로 했다고 칩시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이 생활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어... 그것도 실은 생각해보지 못해서...” 경수는 정석에 질문에 대답하면 할수록 본인이 얼마나 대책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음에도 본인이 한심해 보였다. 한동안 침묵 끝에 경수는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정말 무턱대고 찾아온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심란 하실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술 취해서 한 헛소리였는데...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흘러간 인연에 미련을 가지는 게 아니었는데. 심지어 정민이는 죽지 않았는가. 어쩌면 죽었기에 인연을 되살리고 싶었던 건가. 그래 이정도면 됐다. 그래도 이정도면 약속을 지키려는 시도는 한 거니까. 경수가 자리를 뜨려 했을 때 정석이 말했다.
“같이 밥이나 먹으러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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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동안 그 둘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이렇게 정민과 경수의 약속은 없는 일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날 이후, 정석과 경수의 머릿속에는 정민의 존재가 더욱 각인이 되어버렸다. 정민이 죽기 이전에는 기억 저편에나 있던 존재였던 정민이, 이제는 기억의 한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나 이는 정석이 더욱 심했는데, 일종의 죄책감을 덜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죄책감은 정석에게도 의무감을 지우게 했다. 본인의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선 본인이 동생과 왜 멀어졌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정석은 민혁에게 연락해 경수를 실제로 알고 있는지 물었다. 민혁도 경수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진 못했지만 대학시절 정민과 함께 셋이 몇 번 어울렸던 사실은 기억해냈다. 또한 경수에게 정석의 번호를 준 사실 또한 확인해주었다.
정석은 정민의 흔적을 찾고 싶었기에 이전엔 관심도 없었던 정민의 카톡 프로필을 들여다 보는 일이 잦아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화 내용을 확인하여도 역시나 그 둘 사이에 카톡이 오간 적은 없었다.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정석은 대화창을 굳이 확인했다. 정민의 프로필 사진들을 확인하던 정석은 그래도 정민이 본인을 차단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때마다 약간의 실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민의 죽음이 정석에게 죄책감이란 형태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면, 경수에겐 조금은 다른 형태로 작용했다. 본인과 본인의 아버지의 관계를 상기 시킨 것이다. 정민이 정석과의 관계가 틀어졌던 것처럼 경수는 본인의 아버지와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문제가 있었다고 하기엔 또 모호한 것이 완전히 틀어진 형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의절한 상태도 아니었지만 그렇다하여 가족이라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린 시절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그는 경수에게 껄끄러운 존재였으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분명 부자 사이 관계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존재했을 것이지만,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 만큼 중대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며 어쩌면 남들이 들었을 땐 이 상황을 이해조차하기 어려운 이유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정석은 본인이 정민과 틀어진 이유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지만, 경수는 나름의 이유를 들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조차 정말 그 이유들이 정말 아버지를 멀리하게 된 이유로 작용했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으며, 남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단 생각에, 타인에겐 단 한 번도 본인의 생각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단 한명 예외가 있다면 정민이었다. 그렇기에 정민의 죽음은 경수에게 아버지와의 관계와 그 이유에 대한 상념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다.
경수는 홀로 식당을 찾아 술 한 잔을 기울이는 날이 잦아졌다. 밥 먹을 땐 술을 잘 하지 않는 그였지만 최근 들어 국밥에 반주를 곁들이는 날이 늘었다. 정민의 죽음이 그에게 다시 번뇌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경수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수는 못 본 체 하고 싶었다.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대화가 의미 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네 무슨 일이에요?”
“바쁜가 보네”
“네, 지금은 괜찮아요”
“아니 아까 뭐 물어볼 거 있었는데 됐어 이제”
“네 알았어요”
“그래 들어가라”
경수는 이런 식의 통화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