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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 일병장수

by 행복한 시지프


무병장수, 일병장수.png

최근에 두 가지 불행한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10년 만에 치과에 갔더니,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두 번째는 가까운 사람이 암 말기로 운명을 달리한 일이다. 한동안 슬프고, 힘들고, 원망스러웠다. 왜 그 병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무병장수 보다, 일병장수 가 더 맞는 말이라고들 한다. 일병을 가지게 되면, 또 다른 병을 얻기 싫으니까, 그게 너무 힘든 걸 아니까, 다른 병들을 예방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무병장수는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그것은 행운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아주 건강한 신체를 타고난 행운. 그러므로 일반인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인간은 꼭 아파봐야만 안다. 아프지 않은데, 아파본 적이 없는데, 굳이 예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불행한 일, 후회할 일이 찾아온다. 내가 생각하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은, 살면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가, 처음 맞이한 아픔이 암인 경우이다. 아파본 적이 없으니, 병원을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건강하다고 착각하며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비극은, 살면서 한 번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다가, 처음 잃어본 사람이 부모님인 경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된 경험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므로, 후회해 본 적도 없고,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후회 가득한 말이 대체 어떤 아픔 후에 태동했는가, 모를 것이다. 그런 채로 가장 큰 죽음을 마주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도 인간은 예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사실 큰 일은 대부분 예방 가능하다. 하인리히 법칙은, “심각한 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에, 경미한 사고 29건, 아차사고 300건이 있다.” 는 법칙이다. 내 치아도 그러했다. 잇몸에 물집이 잡혔던 순간이 있었다. 돌아보면, 정상적인 잇몸에 물집이 잡힐 리가 없다. 다만 비슷한 아픔을 겪어본 적이 없고, 건강히 살아왔고, 병원을 방문하는 게 어색하므로 치과를 가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 보니 이게 예방할 수 있었음을 알았다. 아프고 나니까, 그게 너무 싫으니까, 이제 병원에 가는 게 익숙해졌다.


인간관계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행복한 커플은 어떻게 싸우는가?” 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 책 전반적으로 갈등이 얼마나 필수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지 설명한다. 결혼 초기에 많이 다투는 커플이 이혼을 오히려 적게 한다고 한다. 많이 다툰다는 건, 큰 갈등이 되기 전에 조기 진압한다는 것이다. 보통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수십 번의 작은 신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나중에 병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생에서 작은 불행은 필수 불가결인 것 같다. 불행이 있어야 대불행을 예방할 줄 알고, 행복을 알 수 있다. 그 필요악이 최대한 덜 아프면서, 나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최적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삶의 불가항력이 있기에, 그냥 한 대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기에 안타깝다. 아무쪼록, 적당히 아프면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일이 종종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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