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도시집중 현상, 그 이후의 농촌에 관한 키워드는 ‘지역소멸’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사람이 모이는 마을이 있다. 바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이다. 그 중심에는 ‘실상사’라는 비빌언덕이 있고, 실상사를 중심으로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지난 1999년 ‘모든 실상이 연결된 유기적 생명공동체임을 깨닫고 우주의 생명 질서인 공존·협동·균형의 길을 간다’는 기치로 창립됐다. 20년간 생명평화운동을 비롯해 귀농학교, 지역공동체, 대안 교육, 생명 환경, 생활협동조합 등 대안적 살림 운동에 매진해왔다.
지금은 실상사, 마을공동체를 이끌어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생명평화대학’,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농촌공동체 삶을 실천하는 사단법인 ‘한생명’ 등 10개 기관·기구가 함께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실과 생활협동조합이 있고, 광주에는 ‘선덕사’와 연결된 광주전남 인드라망 지부가 있다. 하나의 가치로 세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활동하고 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통해 지역사회가 변화되고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는 자립할 수 없는 지원사업이 아닌 점이 특징이다. 실상사에서 소유 농지 3만 평을 공동체 토지로 기증해 ‘실상사귀농학교’가 만들어졌고, 학교를 통해 약 3~4천 명의 사람을 배출했다. 그 중 3분의 1이 산내에서 정착하고 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뭘까. 어떤 활동이 이 공동체를 유지해 오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남원 산내를 직접 찾아 생명평화대학, 친환경매장, 대안학교 등을 방문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3명의 활동가 뿌나, 싼초, 승현을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생명평화대학은 청년이 생명평화적인 삶으로 전환해 주체적으로 사는 것을 돕고, 스스로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는 배움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학과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1년 과정으로 진행되며, 청년들이 자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 프로그램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된다.
“1학기에 농사도 짓고, 실상사와 불교를 아는 프로젝트 참여, 한생명에서 마을과 교류, 집짓기 같은 자립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대학이라고 하면 큰 배움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질적인 배움을 얻는 시간이었죠.”
생명평화대학에 다니는 학생 승현이 말했다. 이론적인 수업을 진행할 때는 둥글게 앉아서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깊이 탐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강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체득하는 교육과, 교양으로 끝나지 않고 내 삶과 직접 연결되는 지식. 이것이 생명평화대학의 본질이다.
생명평화대학의 입학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만 39세 이하 청년이면 된다. 과거에는 생명평화대학에 입학하는 연령층이 20대 후반이었지만 최근에는 20대 초반으로 낮아지고있다. 둘째, 면접 과정을 거쳐야 한다. 1년 동안 모르는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해야하니 얼마큼 마음을 낼 수 있는지, 잘 적응 할 수 있는지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승현은 공동체 생활에서는 특히 구성원과 어울려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모였다 해도 수십 년 동안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여기도 특별한 건 없어요.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행동을 마음에 안 들어 할 때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인드라망 가치인 ‘너와 내가 연결된 존재’임을 배우고 있으니, 도시에서처럼 조금 토라진다고 해서 사람 간에 관계가 끊어지진 않아요. 문제가 생기면 꼼꼼히 따져보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아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 내 감정 때문에 혹은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상대가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했는지 먼저 돌아봅니다. 생명평화대학에서도 어울려 사는 기술 배움을 최상위 목표로 두고 있어요.”
생명평화대학에서는 일요일마다 자치회의가 열린다. 이때 좋지 않은 감정이 오래 쌓였거나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면 자치회의에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만든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직시하여 모난 감정을 깎아내고 상대를 이해하며 풀어가는 것이다. 각자가 한 명씩 ‘사람책’이 되어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도 보낸다. 2학기에는 대화법에 대해 배울 예정이다. 조금 더 평화롭고 자유로운 화법을 위한 것이다. 생명평화대학 학생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생명평화대학 청년들과 ‘목금토공방’ 팀이 모여 ‘작은목수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한 번씩 모여 청년이 바라볼 수 있는 금액의 집, 서로 협동하며 짓는 집, 자연에서 빌린 재료를 활용해 잘 쓰고 그대로 자연에 되돌려 줄 수 있는 집을 짓고자 공부했다. 그리고 올해 6월 10일부터 펀딩을 받아 집을 짓고 있다.
“그동안 집을 구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집을 구해도 돈을 벌면 반은 집값으로 나갔거든요. 그래서 집하면 떠오르는 인식은 주인은 따로 있고, 나는 얹혀사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강했어요. 그런데 ‘팜프라’처럼 직접 집을 짓는 청년을 보며 집을 짓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죠.”
프로젝트 제안자인 목금토공방의 목공지기 뿌나는 이번 프로젝트로 집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후 산내에서 뿌나에게 집을 짓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여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대안주택을 마련해 농촌에서의 생활을 고민하는 청년의 불안함을 덜어주고,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집을 만드는 것이다. (작은집 프로젝트에 더 관심이 있다면 여기 사이트를 참고해봐도 좋다.)
실상사 앞 친환경 매장 느티나무는 산내에서 귀농한 사람들이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과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만든 물건을 파는 장터다. 인드라망 세계관에 맞춰 생산부터 소비까지 이 매장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매장 안에는 정성스럽게 만든 식자재, 빵, 가공품까지 친환경 먹거리가 제공되며, 이를 소비하는 사람도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선순환이 동네장터의 핵심이다.
지역의 농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는 구조는 지역경제가 순환되는 것 말고도 많은 의미가 있다. 유통과정과 거리가 단축되는 것은 환경과 관련이 있고, 생산자와 소비가 가까워야 서로를 지지하며 책임감 있는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산내 마을 내에는 모임이 100개가 넘는다. 공부, 운동, 요가, 명상, 농사 등 다양한 동아리가 있고, 또 다른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직접 사람들을 모집하여 만들 수 있다.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것이다. 뿌나는 산내 마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공동체가 있어서 의식주 해결의 도움이 되고, 의식주를 스스로 기를 힘을 갖도록 주변에서 도움을 준다는 점을 꼽았다.
‘실상사작은학교(작은학교)’는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전원형 비인가 대안학교다. 인가받지 않은 학교이기 때문에 졸업해도 일반적인 중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작은학교의 일과는 ‘작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끝나는데, 작은 가정은 소수의 학생과 선생님 한 명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함께 생활문화와 생활 규칙에 대해 스스로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도 특징이다. 물론 종교 철학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인 만큼 종교색은 있다. 발우공양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100배를 해야 하는게 다른 대안학교와의 차이점이다.
학생들은 교과과정 외에 다양한 활동도 한다. 축제를 직접 기획 및 집행, 다양한 동아리 활동 참여. 간식, 먹거리 등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아이들이 직접 텃밭과 농장을 관리하고, 거기서 얻은 재료로 같이 밥도 해 먹는다. 생산부터 먹거리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다. 학교 내에는 넓은 운동장, 농장, 방방이, 도서관, 기숙사, 텃밭 등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도시 학교의 건물이 높고, 감옥같이 갇혀 있는 모습이라면, 작은학교의 건물은 낮고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작은 마을에 어린이집, 혁신초등학교, 실상사작은학교, 생명평화대학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정착되어 있어요. 산내만큼 좋은 콘텐츠를 가진 지역이 없지요. 부모 입장에서 정착하기 참 좋은 동네예요.”
한생명의 마을 활동가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싼초는 산내살이에 대해 깊은 만족을 표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가장 사랑받는 ‘핫플레이스’가 있기 마련이다. 뿌나는 ‘나눔꽃’을 추천했다. 나눔꽃은 주민자치로 운영하는 중고매장이다. 마을에 안 입는 옷, 가전제품, 잡화를 기부받고 모든 물건을 1,000원에 판매한다. 10벌을 사도 만 원밖에 하지 않는다. 가격도 놀라운데 물품을 잘 보면 대부분 여성 의류나 아동 의류다. 시골이니 작업복이나 성인복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 옷이 대부분이다. 산내 주민들은 아이들이 입는 좋은 옷을 기꺼이 기부하고, 누구나 쑥쑥 자라는 아이의 옷을 걱정 없이 입힐 수 있다. 이곳에서 아이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연결되어 있고,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인드라망 세계관을 공유하며 협동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산내마을이 활성화된 것이다. 인드라망 공동체는 한가지 가치로 마을 사람들과 마을을 변화시켰고, 이제는 지역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합법’이라는 시스템 아래 특출한 개인의 독점적인 성과나 가진 것 없는 사람의 도태가 당연하게 된 사회.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가치는 우리가 잊은 정신이 무엇인지 상시시켜 준다.
케빈(권성빈) ksb@hellofar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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