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밀공작소가 뽑은 농밀한 이슈
경자유전의 원칙에 맞는 토지개혁에 대한 농업계의 목소리가 커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토지개혁이 뭐냐고요? 농민들이 이걸 왜 요구하냐고요? 조금더 알기 쉽게 <농밀한 이슈>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에디터가 조금 더 친절하게 농업계 이슈를 읽어드립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토지개혁을 할 때 원칙으로 삼은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도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반영돼 있습니다.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헌법 제121조
여기서 ‘소작제도’란 농업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지주로부터 농장을 빌리는 형태를 뜻합니다. 봉건시대의 지주와 소작농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네요. 농지를 갖지 못한 농민이 농사지을 땅을 빌리고 수확량의 일부를 납부하는 방식을요.
농지의 소유는 농지법 제2장 제6조에 따라 ‘자기의 농업경업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라고 제한되었는데요. 농부, 그러니까 농지원부를 갖고 농업경영체를 등록한 전업농부가 아니라면 가질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나의 농지개혁의 시초는 이승만 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49년 이승만 정부는 농가가 소유하지 않는 농지, 농가가 직접 경작하지 않는 농지를 국가가 사들여 직접 농사지을 사람들에게 분배했습니다. 그리고 1가구당 3정보(약 9,000평)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강제했습니다. 3정보를 초과하는 농지는 정부가 사들이는 ‘농지소유상한제’를 도입했습니다. 2008년 중앙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전북 김제의 한 농민이 “소작농들은 ‘노예지 국민이 아니다’고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일자무식에 한 끼 해결하기도 급급한데 나랏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나. 그런 시절에 농지개혁은 일대 혁명이요, 일대 진전이었다. 땅을 가진 소작농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농지개혁은 암울한 과거를 딛고 오늘의 풍요를 일군 밑천”이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토지개혁을 시도한지 딱 70년이 지났습니다(개혁안은 1950년에 공포).
농지개혁 이후 70년, 현재 국내 농지 중 임차농가가 농사를 짓는 비율은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2018년 기준 50.2%) 우리나라 현행법상 상속인이나 8년 이상 영농한 사람은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1만 제곱미터(3,025평)의 농지를 기간 제한 없이 소유할 수 있고, 비농업 상속자가 늘어나며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습니다. 이에 김현권 의원실에서는 2018년,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 있습니다. 기업들이 농업에 관심을 보이며 농업법인에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예외가 생겼고, 농지를 구입해 투기로 사용하는 편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농지면적도 많이 줄었습니다. 2013년 171만 1천 헥타르였던 농지는 지난해 159만 6천헥타르로, 전체 농지 중 7%가 넘는 면적이 감소했습니다.
한겨레에서는 그동안 농지법이 이렇게 유명무실한 법이 된 이유 중, 법을 다루는 국회의원 중 1/3이 농지를 소유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농지문제에 대한 탐사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럼 토지개혁에 대한 해외 사례를 찾아볼까요? 필리핀은 토지개혁이 실패한 나라입니다. 1950년대만 해도 부유했던 필리핀은 오랜시간 토지개혁을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대다수 농민의 가난과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토지개혁의 실패를 꼽기도 합니다. 필리핀은 여전히 지주가 농업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인 플렌테이션(Plantation) 형태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대표 수출작물인 사탕수수와 코코넛 등을 생산하며 지주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소수의 자작농은 파산하는 등 지주의 권력은 점점 세지고 농민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더 공고히 경자유전을 지키고 있는 나라는 어떨까요? 농업 선진국이라 일컫는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국내보다 더 강화된 수준으로 경자유전의 법칙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위스는 연방헌법에 농업의 다원적기능과 지속가능한 농업, 식량안보 등의 지원의무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104조(농업)
1. 연방은 농업이 지속가능한 발전 및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며 다음 사항과 관련하여 실절적인 기여를 하도록 보장한다.
a. 국민에 대한 식량공급의 보장
b. 천연자원의 보존 및 농촌경관의 유지 c. 인구의 지역분산
2. 연방은 농업에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자구조치에 더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자유경제의 원칙을 배제하고 농지를 경작하는 농장을 지원한다.
3. 연방은 농업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조치를 강구한다. 연방은 다음 사항에 관하여 특별한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a. 연방은 농민이 농업활동에 대한 공정하고 적합한 보수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생태학적 요건을 충족하였음을 증빙하는 조건으로 직접지불의 방법으로 농업소득을 보전한다.
b. 연방은 특히 자연친화적이고 환경과 동물을 고려한 생산방식에 대해 경제적 추가지원을 통하여 장려한다.
c. 연방은 식료품에 대해 원산지, 품질, 제조방법 및 가공공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d. 연방은 비료, 화학물질 및 기타 첨가물의 남용으로 발생하는 피해로부터 환경을 보호한다. e. 연방은 농업조사, 상담 및 교육을 장려하고 투자를 지원한다.
f. 연방은 농지소유(agricultural property holding)를 강화하는 법률을 제정한다.
4. 연방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농업분야 및 일반연방기금으로 조성된 전용기금을 조성한다.
헌법 정신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보상하지 않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정부가 정당화한 결과 스위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 농업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청정 농업 경관과 국토의 균형발전은 연방헌번 104조 에서 비롯됐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들어 세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선임됐습니다. 32년간 농정을 담당해 온 실무자 출신인 김현수 장관입니다. 취임하며 ‘사람 중심의 농정개혁’을 추진할 것을 밝힌 김현수 장관은 “농정의 기본 축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고 농업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해 중소농과 규모화 된 농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의 체계를 바꿔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그가 말한 사람중심의 농정개혁에 농지개혁은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요. 그가 말한 ‘사람’에 절반이 넘는 임차농가는 어떤존재일까요? 농밀공작소도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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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펑크(이아롬) arom@hellofar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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