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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야 Feb 13. 2023

03. 짜장이

그는 "김남길"을 닮은 잘생긴 푸들믹스였다

 우리가 만나볼 아이는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충청남도에 있는 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는 짜장이, 또 다른 한 마리는 경기도의 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는 제니였다. 


 짜장이는 푸들믹스의 1세 추정 검은색 강아지였고, *애니멀 호더에게서 구조된 아이였다. (* 애니멀 호딩 (Animal hoarding) 은 동물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동물을 키우는 행위로서 동물을 수집하는 행위 자체에 집착하는 것을 뜻한다. 엄연한 동물 학대이다.)


 중성화가 되어있는 수컷이었고, 아직 예방접종은 다 마치지 않은 상태이며, 순하고 소심한 소형견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성격인 지라 보호소의 다음 카페까지 들어가서 봉사자님들께서 적어놓은 짜장이에 대한 모든 소식과 댓글들을 다 읽어 보았고, 짜장이는 우리가 고려한 여러 요소들에 적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보다 나는 사진을 뚫고 나오는 아이의 우수의 찬 눈빛과 시크한 검은색 털색깔에 빠져들어버렸다. 연예인으로 치면 검은색 목티를 입은 "김남길" 같은 스타일 이랄까? 마치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엄마를 지켜줄 잘생기고 바르게 자란 아들이 될 것 같다는 망상을 좀 해보았다. 하하. 뿐만 아니라, 봉사자님께서 간식을 나눠주는 영상을 보았을 때 난리가 난 다른 강아지들과는 달리 저 멀찍이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더 "이 친구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 


 11월의 눈이 많이 내렸던 날, 우리는 충남에 있는 짜장이부터 만나보기로 했다. 짜장이가 있는 보호소는 충남에서도 꽤 구석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차가 없으면 접근조차 어려운 환경이었다. 차에서 내려 눈을 자박자박 밟으며 7분 정도 걸어갔을 때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좀 더 들어가 보니, 허허벌판의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인 컨테이너 박스가 한 채 서 있었다. 


 우연히 그날도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20대 때 학교 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던 시절, 취재를 위해 유기견 보호소라는 곳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곳은 고양시 구석의 다 찢어진 비닐하우스로 세워진 보호소였다. 아이들이 마실 물과 밥은 모두 얼어 있었고 (봉사자님들이 정기적으로 녹여 주셨지만, 날씨의 영향으로 시시각각 얼어버리는 물과 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통은 한 울타리에 한 마리씩 분리해 놓지만, 보호소 앞에 아이를 유기해 놓고 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 그 아이들까지 다 품다 보니 개체수가 너무 많아진 탓에 공간이 부족해 두세 마리가 함께 지내는 울타리가 많았다.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 치우고 또 치워도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금세 똥과 오줌으로 더럽혀졌다. 두 눈으로 처음으로 마주했던 보호소의 현실이었고,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하루 종일 우울했다. 애먼 태웅이만 계속 쓰다듬으며 "너는 참 다행이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런 보호소가 아닌, 아이들이 그래도 실내에서 머물며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컨테이너"라는 사실에 아주 조금 안심했다. 노크를 하니 금방 봉사자님께서 "짜장이 보러 오셨죠? 이쪽 아이들 운동장에서 기다리시면 짜장이 데리고 나올게요" 라며 안내해 주셨다. '운동장' 이라길래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매우 넓은 운동장을 상장헀는데, 사람이 8초면 한 바퀴 돌고 끝날 아주 작은 실외 공간이었다. 


 그렇게 짜장이를 처음 만났다. 사진과 영상에서 본 대로, 짜장이는 매우 잘생기고 시크한 푸들 믹스였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크기와는 사뭇 달랐다. 6kg의 푸들믹스라고 적혀 있길래, 일반적인 푸들정도의 크기를 예상했으나 (우리 태웅이가 5kg였으니까.. 아 태웅이는 배 나온 살찐 시츄였지..) 나의 잘못된 상상이었다. 짜장이는 다리가 매우 긴 훨씬 큰 푸들이었다. 그리고 성격은 차분할 수 있으나, 그 높은 울타리를 양치기 개처럼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게 아주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여기까지는 '그래, 개니까 (만나보니 강아지 아님)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짜장이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많은 시간을 함께한 봉사자님에게도 곁을 잘 주지 않았다. 짜장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쥐고 불러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짜장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닐까?


 보호소에 있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애완견이 아닌 하루아침에 주인에게 버려지거나, 친구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태어난 순간부터 차가운 뜬장에서 한 번도 땅을 밟아보지 못했던 그렇게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사람도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든 겁이 나고 조심스럽다. 그리고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이야 대화를 하고 소통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더 품어줄 수 있겠지만, 동물은?


 짜장이가 생각보다 크고 에너지가 넘치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사람에게 절대 다가오지 않는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임시보호가 처음인 내가 상처받은 동물의 닫힌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까? 방법은 뭐고, 어떻게 해야 할까? 저렇게나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데, 임시보호를 오면 하루종일 사람과 붙어 지내야 하는데 그럼 너무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생각지 못한 행동을 보일까? 그럼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지금까지 이런 고민도 없이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나섰다니, 나는 자격도 없는 게 아닐까? 


 결국 우리는 짜장이의 임시보호를 신청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니를 만나기까지 나 스스로에 대한 여러 의구심과 생각들로 또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 이제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고, 하네스도 잘 입는다는 짜장이. 봉사자님들의 진심과 사랑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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