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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야 Feb 19. 2023

04. 그리고, 제니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강아지, 그리고 "때"에 도달한 강아지

 자신이 없어졌다.


 짜장이를 만나고 온 뒤 2주 동안 나는 뭣도 모르고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상처받은 동물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도 모르는 내가, 그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문제 행동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가 임시보호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동물을 들이는 것에 심드렁했던 신랑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또 나의 병적인 완벽주의가 발동하는 거라며, 어떻게 모든 상황과 마음가짐이 철저히 계산되고 준비된 뒤에 일어날 수 있는 거냐며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몇 년을 늘 생각해 왔던 거고, 그 정도면 충분히 고민한 거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결국 따라간 거고, 알아보기 시작했으니 일단 제니까지는 만나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65% 의 확신이 15% 의 확신으로 줄어든 상태로 제니를 만나야 했다.


 사실, 우리가 보호소에 처음 문의를 남겼던 아이는 제니가 아닌 '리사'였다. 제니와 리사는 개농장 뜬장에서 함께 구조된 자매였다. 둘은 작은 체구의 황색 진도 믹스였고, 덤덤하고 차분한 성격 같아 보였다. 자매인 만큼 외모가 너무나 비슷했는데, 제니보다는 리사가 눈이 1도 정도 더 처져서 내 모성애(?)를 자극했다.


 하지만, 센터에서는 생각지 못한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긴 고민을 하시고 임보신청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 신중하고 사료 깊은 성향이실 것 같아 우리 아이들이 두 분의 사랑을 받으며 가족생활이라는 걸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켜보신 리사를 조금은 때(?)를 더 기다렸다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은 제니가 어떤 지 여쭙고 싶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니가 있는 보호소는 경기도라 비교적 가까웠다.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적이 드문 장소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높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나름의 숲세권이었다. 사람이나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새소리뿐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보니 펜스가 쳐져 있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하얀 백구 한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여타 보호소들과는 다른 평화로운 환영인사였다.


 봉사자님의 안내를 받으며 보호소 내부로 들어가 보니, 펜스 너머로 열다섯 마리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두 우리 냄새를 맡겠다며 펜스 사이로 코를 끼워 놓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대부분이 진도믹스의 대형견이었고 신기하게도 단 한 마리도 우리를 보고 경계하거나 짖지 않았다. 봉사자님께서 주신 수트를 입고 펜스 안으로 들어가 한 마리씩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아이들 대부분이 사람을 너무 좋아해 달려드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 역시 이런 격한 환영인사가 빠질 순 없지. (수트를 안 입었으면 옷을 댕댕이 발도장 에디션으로 만들 뻔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드디어 저 멀리 제니와 리사가 눈에 들어왔다. 보호소에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 키가 큰 진도 믹스인 반면, 제니와 리사는 다리가 짧은 지라 안 보일 .


 아무래도 처음으로 마음을 줬던 건 리사였기 때문에 리사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보았다. 그리고 리사의 반응을 본 순간, 봉사자님께서 말씀하신 "아직 때가 되지 않았어요."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리사는 아직 사람이 무서운 강아지였다. 쓰다듬어 주려해도, 간식을 주려해도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바쁜, 늘 똥꼬뚜껑이 되어있는 겁이 많은 강아지였다. (*똥꼬뚜껑 : 애견인들이 많이 쓰는 표현, 강아지가 겁이 나거나 불안한 상황일 때 꼬리를 내려 접은 상태) 지난번에 만나고 온 짜장이보다 더 경계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보호소의 봉사자들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아무래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 매너들을 (산책, 배변 훈련 등) 터득한 아이들이 좀 더 빠른 입양/임시보호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파양 될 확률도 낮아진다. 이 때문에 봉사자들은 정기적으로 훈련사를 초청하여 아이들의 사회화를 위한 훈련들을 진행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듬어 주며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 지를 알려준다. 그렇게 보호소의 봉사자들은 아이들이 한 가정 안에서 더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때"가 주어질 수 있게끔 인도해 주는 인도자들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임시보호자들은 그 바통을 넘겨받아, 아이들이 입양이 되기 전까지 실전 연습을 하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정환경을 제공하며 보호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이라든 지, 지금까지 지내온 환경이라든 지 모든 것들이 제 각각이기 때문에 각자 그 "때"에 도달하는 시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리사는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강아지였다. 봉사자님께서 말씀해 주신 제니는 먼저 사람에게 다가와 안길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먼저 다가가면 어느 정도 관심을 갖는 아이였다. 얼마나 순한 지 처음 본 신랑이 들어 안았는데도 발버둥 치거나 거부하지 않고 특유의 세상 달관한 표정으로 가만히 안겨 있었다. 그렇게 제니는 리사와는 달리 어느 정도 "때"에 도달한 강아지였다. (아, 직접 만나보니 역시나 짜장이처럼 크기가 '강아지'가 아닌 '개'였다.)


 그렇게 제니를 만나고 온 뒤, 확실히 짜장이보다는 마음이 덜 무거웠다. 짜장이만큼 크게 마음이 간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성격이라면 우리의 첫 임시보호와 맞는 레벨(?)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임시보호 진행 중에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갈 수도 있는, 미리부터 이별의 준비가 필요한 아이라면 오히려 크게 마음을 주지 않은 아이가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아주 큰 착각이었다.




* 봉사자님들의 사랑으로 리사는 현재 새 가족을 만나 행복한 견생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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