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야 Apr 16. 2023

05. "콩닥, 콩닥" 책임감의 무게

손 끝으로 느껴지던 너의 심장 박동

 결국 우리는 제니를 임시보호하기로 결정했다. 


 참 이런저런 걱정들이 가득했는데.. 막상 결정이 되고 나니 설레기 시작했다. 남편과 단 둘이서만 생활하던 공간에 다른 새 식구가 오다니! (물론 잠깐을 머물다 갈 객식구이긴 하지만) 

 

 제니가 우리 집에 올 날 만을 기다리며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사료와 간식, 패드, 켄넬, 밥그릇은 필수. 그리고 나의 사심과 취향이 한껏 들어간 강아지 방석과 하우스까지. 100% 같을 수는 없겠지만 마치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으로 집안에 제니의 물건들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2022년의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제니가 첫 임시 보호를 가는 것인 지라 봉사자님들께서 행복하고 대견한 마음에 직접 아이 목욕을 해주시겠다고 했다. 봉사자님께서 보내주신 제니는 목욕이 처음이었던 지라 물에 흠뻑 젖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목욕을 한 제니가 감기라도 걸릴까 다시 견사로 데려가지 않고 우리가 올 때까지 봉사자님 한 분께서 잠시 집에서 돌봐 주시겠다고 했다. 퇴근을 하고 늦은 저녁, 우리는 제니를 데리러 봉사자님 댁으로 향했다.


 하지만, 봉사자님 댁에서 마주친 제니의 첫 모습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제니는 센터에서와의 모습과는 너무 많이 달랐다. 분명히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뛰어다니고, 밝아 보였는데.. 봉사자님 댁에서의 제니는 축 쳐지고, 우울해 보이고, 아무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제니를 마주하니 잠시 회피하고 있었던 여러 걱정들이 다시 내 마음을 크게 휘젓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잘 지내던 아이를 내 욕심으로 데려온 건 아닐까?'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밤새 내내 자지도 못하고, 하울링하고, 짖고, 하우스 구석에만 들어가 있지는 않을까?'

 '... 그렇게 되면 나는 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인사를 하기 위해 제니에게 슬쩍 손을 내밀어 보았다. 겁을 내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다가갔다. 제니는 살짝 우리의 냄새를 맡고는 우리가 쓰다듬어주니 다행히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제니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끙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얌전히 내 무릎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제니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입성했다. 


 제니가 집을 탐색하며 적응을 할 수 있게끔 최대한 관심을 주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근데 이게 웬일… 봉사자님 집에서 와는 다르게 제 집처럼 여기저기를 훑고 돌아다니고 냄새를 맡으며 뭔가 잔뜩 신이 난 모습을 보여줬다. 사료통에 있는 사료도 코로 한 번 만져보고, 자기 꺼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물도 열심히 마시고.. 그 모습을 신랑과 나는 소파에 앉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소파에 와서 자기도 올려 달라며 소심한 발짓을 하길래 소파에 올려줬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그렇게 며칠을 소파에서 한 발짝도 안 내려오게 될 줄은…) 


 환경이 바뀌어 예민해진 데다가, 온갖 소리에 민감해하는 것 같아 소리 둔감화 연습을 좀 시켜 주려고 티비를 켜놨더니 견생 최초로 티비를 보는 건지 제니는 한참을 동물 농장을 시청했다. 그렇게 티비가 소리는 나지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웅크려 자기 시작했다. 

 

 쌕쌕 거리며 자고 있는 제니의 가슴 위에 살포시 손을 얹어 보았다. 너무나 예쁜 모습에 자동으로 손이 갔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콩닥, 콩닥 소리 그리고 따뜻한 체온. 그 순간 느껴지던 그 심장박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심장박동은 마음을 억누르는 크고 무거운 책임감을 줬다.  


 사실 키우기로 결정된 후에는 오히려 자신감이.. 아니, 자만심이 생겼다. 강아지와 17년을 함께하고 이별한 경험이 있었으니 키우는 행위 자체는 나에게 큰 어려움이 아닐 것이라 자만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내 품에 안고 나니 왜인 지 모를 두려움, 책임감, 감격스러움이 복합적으로 복받쳐 올랐다. 내가 기어코 일을 냈구나..!


 12월 17일 늦은 밤, 제니는 그렇게 우리에게 산타의 선물처럼 와주었다.


 

임시보호 첫날, 소파에서 잠이 든 제니


작가의 이전글 04. 그리고, 제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