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달콤한 어쿠스틱 기타로 속삭이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음반을 파는 곳에서 음반에 관해 글 쓰는 일을 할 때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었고, 그 음악들을 들으며 음악에 관한 글까지 쓸 수 있었으니 남부러울 것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기, 나는 약속이나 한 듯 괜찮은 어쿠스틱 앨범 두 장을 만났는데 한 장엔 검푸른 빛 상심 어린 표정의 한 남자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풍 그림과 나란히 있었고, 다른 한 장엔 통기타를 쥐고 커다란 망고나무를 바라보는 사람 실루엣이 노란 바탕 위에 그려져 있었다. 바로 2004년 발매 후 이듬해 리이슈 된 제임스 블런트의 ‘Back To Bedlam’과 2005년 3월 첫 날 세상에 나온 잭 존슨의 ‘In Between Dreams’다.
두 앨범은 장르 상 포크 록(Folk Rock)이라는 데선 같았지만, 내면의 정서에서 두 음반은 달랐다. 제임스 블런트가 끝난 사랑의 기억을 안고 상실의 아픔을 달랬던 반면, 잭 존슨은 지금 곁에 머무는 사람과 사랑의 환희를 긍정했다. 그것은 마치 앨범 커버 색이 뜻하는 것 마냥 우울(Blue)과 활력(Yellow) 사이에서 어쿠스틱 기타라는 악기가 두 싱어송라이터를 도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를 들려주려는 듯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취향이 변했지만, 그땐 일과 취미의 경계가 따로 없어 마냥 행복했던 터라 나는 제임스의 그늘보단 잭 존슨의 햇살에 더 마음을 빼았겼다. ‘In Between Dreams’는 TV 광고에 쓰여 비교적 한국 대중에게도 익숙할 ‘Better Together’가 수록된 앨범이다. 오늘 다룰 ‘Banana Pancakes’는 달콤한 ‘Better Together’와 비트감 있는 ‘Never Know’ 뒤 세 번째 트랙으로 이 앨범에 자리 했다.
벡(Beck), 엘리엇 스미스 등과 안면이 있는 톰 로스록(Tom Rothrock)과 ’What’s Up’으로 유명한 포 논 블론즈의 린다 페리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제임스 블런트의 앨범이 데뷔작이었던 반면, ‘In Between Dreams’는 프로 서퍼였던 잭이 앨범 커버에 있는 나무와 같은 이름의 스튜디오(하와이 ‘Mango Tree’ 스튜디오)에서 2004년 10월에 녹음한 자신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이 앨범은 전 세계로 무려 1,500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잭의 음반 판매고 역사에 전무후무한 수치를 남기게 된다.
‘Banana Pancakes’. 곡이 시작되면 굵은 통기타 리프와 함께 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비는 차분하다. 이 비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 속 폭우보단 투둑투둑 떨어지는 재주소년의 ‘봄비가 내리는 제주시청 어느 모퉁이의 자취방에서...’에 더 가까운 일상의 비다.
비 내리는 날 가장 있고 싶은 곳, 바로 집 또는 차 안이다.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온갖 사건, 긴장, 행복, 기쁨과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영화처럼 비 오는 날 내 방과 차 안은 똑같은 아늑함을 준다. 이 곡은 바로 그곳을 포착했다.
곡에 나오는, 침대에서 함께 눈을 뜨는 둘은 연인 또는 부부처럼 보인다. 둘은 이제 막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일어난 남자가 퍼커시브(Percussive: 타악기의 리듬감을 가미한 기타 주법. 이 주법의 대표곡으론 익스트림의 'More Than Words'가 유명하다-필자 주) 주법으로 기타를 뜯으며 아직 덜 깬 연인(또는 아내)에게 “더 자라”고 속삭인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비가 보이고, 커튼을 달아 저 비 내리는 세상 따위 우리가 없앨 수도 있으니 부디 오늘은 주말인 척 전화도 받지 말고 알람에도 신경을 끄라고 그 남자는 말한다. 남자는 끝내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바나나 팬케이크를 만들어 주리라며 “당신 품에 온 세상이 있으니 여유를 가져요” 시럽처럼 달디 단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음악으로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나는 지금 이 곡을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내친김에 'Banana Pancakes'를 포함, 15년 전 기억을 되살려 두 앨범을 다시 들어본다. 그때와 지금 음악을 듣고 쓰는 나는 많이 달라져 있는데 저 두 사람의 목소리는 옛날 그대로다. 한 명은 울고 있고 또 한 명은 웃고 있다. 처음엔 둘로 나뉘어 단순한 감정의 대비로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하나로 뭉쳐 삶의 숙명으로 와 닿는다. 덧없는 인생 길에서 웃음과 울음이란 결국 같은 것이었다.
글/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사진/워너뮤직코리아, 유니버설뮤직코리아
Recipe 미국인들의 대표 아침 식사 ‘팬케이크’
집에 있는 도구와 재료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팬케이크는 ‘팬’에 구운 ‘케이크’란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미국인들 아침 식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팬케이크는 속이 빈 빵처럼 많이 달지 않고 식사 때 베이컨이나 소시지를 얹어 먹기도 해 우리가 먹는 팬케이크와는 그 맛이 사뭇 다르다.
팬케이크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특히 팬케이크엔 중세 유럽 서민들의 애환도 담겨 있는데, 수확한 농산물을 지주들에게 빼앗긴 농민들이 조금 남은 밀가루에 저렴한 메밀 가루를 섞어 만들어 먹었던 것이 저들식 팬케이크였다. 물론 그 시대 양식은 오늘날 팬케이크와는 형태나 맛이 매우 다르긴 하다. 그나마 비슷한 게 ‘알리타 돌시아(Alita Dolcia)’로 ‘또 다른 단 것’이란 뜻을 가진 로마의 납작한 빵이다. 밀가루, 우유, 달걀, 향신료로 만든 알리타 돌시아는 후추와 꿀을 곁들여 먹었다.
팬케이크의 종교적 기원은 카톨릭 절일의 하나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서 엿볼 수 있다. 흔히 사순절(기독교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참회 기간)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사순절 40일 전부턴 육식과 생선은 물론 달걀도 금했다. 때문에 금식 전 기름(지방)을 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날 즉, 재의 수요일 전날에 기름과 달걀이 들어간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팬케이크였다. 사람들이 재의 수요일 전날을 ‘팬케이크 날’이라 부르는 이유다.
팬케이크는 할인마트에서 파는 ‘팬케이크 가루’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밀가루에 달걀과 물(또는 우유)을 섞어 반죽해 굽기만 하면 되는 이것의 레시피를 굳이 더 압축, 생략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계절에 맞춰 이번 시간엔 따뜻한 봄을 담은 바나나 팬케이크를 만들어 보겠다.
우선 볼에 달걀 3개를 넣고 거품기로 푼 뒤 설탕 3큰술을 넣는다. 이어 설탕이 녹을 만큼 가볍게 거품을 내고 잘 익은 바나나 200g을 으깨 넣어준다.(바나나는 잘 익어야 으깨기 쉽고 단맛이 많이 난다.) 그런 다음 우유 150g과 소금 두 꼬집을 넣고 으깬 바나나와 잘 섞이게 반죽 후 샐러드유 3큰술을 넣어 잘 섞어준다. 혹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운 팬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면 녹인 버터 3큰술을 넣어 버터 풍미를 살릴 수도 있다.
다음은 밀가루 300g과 베이킹파우더 1작은술, 베이킹소다 1작은술을 합쳐 체에 친다. 이 가루를 달걀과 우유, 설탕, 바나나를 섞은 반죽에 한꺼번에 넣고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섞어준다. 이때 너무 저으면 글루텐이 생겨 반죽이 질겨지니 가볍게 섞어 주는 것이 좋다.
이제 케이크를 구울 차례. 팬에 식용유를 둘러 중간 불에서 달군 뒤 키친 타월로 한 번 닦아내고 불을 끈다. 이어 팬에 적당한 크기로 반죽을 붓는데, 반죽이 너무 크면 뒤집을 때 힘이 드니 손바닥 크기 정도가 좋다.
반죽을 뒤집는 타이밍은 약한 중불에서 반죽 표면 전체에 기포가 생길 때다. 구체적으론 기포가 몇 개 터질 때가 가장 잘 구워진 상태인데 단, 기포가 너무 많이 터지고 뒤집으면 색이 너무 강해지고 더 이상 부풀지 않으므로 주의하자.
반죽이 알맞게 구워지면 뒤집어 팬 뚜껑을 덮고 바닥 면을 1분 정도 더 구워준다.(잘 구워진 팬케이크는 뒤집고 나서도 부풀어 보송보송하고 표면이 갈색이 된다.) 그리고 다 구워진 팬케이크를 꺼내 넓은 접시에 담는다. 담은 팬케이크는 마르지 않게 행주를 덮어주고 나머지 반죽도 같은 방법으로 굽는다.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운 팬케이크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갓 구운 팬케이크는 역시 시럽과 최고 궁합을 이룬다. 시중에 파는 시럽들도 있지만 개봉하면 보관 기간이 짧아지니 여기선 필요한 만큼 바나나 시럽을 만들어 먹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시럽은 끓는 동안 저을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작은 냄비에 갈색 설탕을 반 컵 정도 넣고 물을 다시 그 반 정도 넣어 설탕을 녹인다. 설탕이 어느정도 녹으면 불 위에 올려 설탕을 완전히 녹인다.(이때 젓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설탕이 끓기 시작하면 썰어둔 바나나를 넣고 다시 불에 올려 살짝 조려 바나나가 으깨지지 않게 시럽을 만든다. 혹여 시럽을 만들기 귀찮거나 만들 시간이 애매하다면 아가베 시럽 또는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어도 좋다. 이렇게 구운 팬케이크를 쌓아 올리고 케이크 사이사이에 바나나시럽을 적신 다음 딸기를 얹어 토핑 하면 완성.
이번 시간엔 특별히 바나나 팬케이크 위에 딸기를 얹어 봄의 풍미를 강조해 봤지만 팬케이크엔 과일 외에도 초콜릿 시럽이나 크림치즈, 생크림, 통조림 과일, 잼, 견과류 등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글, 사진, 요리/강인실 (요리연구가, 푸드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