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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7. 2024

아이유가 노래한 '사랑이 이기는 세상'


공중에 뜬 정육면체(네모)에 쫓기는 여자(아이유)와 남자(뷔). 영상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다. 극 중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저 네모는 무엇이며 두 사람은 왜 네모를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저기로 가자.” 연기 선배인 아이유가 연기 초보인 뷔에게 하는 첫 대사는 몸짓과 자막으로만 처리된다. 극 중 아이유는 말을 못 한다는 얘기다. 아이유가 가리킨 쪽으로 둘은 다시 달려 어떤 공간으로 들어선다. 이때 환영처럼 번지는 키보드 멜로디(너무 자엽스럽게 영상에 스며 감독과 음악가의 사전 조율이 얼마나 치밀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어 아이유의 깔끔한 발성이 연인을 우주에 빗대며 들어온다. 유리처럼 불안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아이유가 “가난한 상상력”을 노래하는 사이 뷔는 낯선 공간에서 캠코더를 들고 아이유를 바라본다(극 중 뷔는 왼쪽 눈으로만 볼 수 있다). 렌즈를 통한 아이유는 방금 전과 달리 상처도 그늘도 없는 밝은 모습이다. 이번엔 아이유가 캠코더를 들고 뷔를 바라본다. 세계가 반한 BTS의 조각남이 그 안에 있다.



그뿐인가. 눅눅했던 폐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초라한 음식은 넉넉한 만찬으로, 영상 속엔 이내 환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연인으로 밝혀진 주인공들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웨딩 촬영을 하는 사이 얼굴 없는 하객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환상의 세계. 겉으론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앞서 찍은 네 컷 사진은 상처 입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때 둘을 쫓던 네모가 다시 등장하고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던 두 사람은 배터리가 다 된 캠코더 화면 속에서 무언가에 빨려가 천천히 사라진다. 주인을 잃은 옷들이 이미 쌓여 있던 옷들의 무덤 위로 떨어지며 영상은 끝난다.


시작부터 미장센이 낯이 익다 싶더니 이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다. ‘우리’가 ‘서로’라는 표현이나 “외로움의 반대말”을 찾는 모양새가 언뜻 단순한 사랑 고백처럼 보이지만 노래와 영상은 아이유가 직접 썼듯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네모는 세상의 차별과 억압을 은유한 것이라 하고 캠코더는 ‘사랑의 필터’였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이제 알 만하다. 감독은 비록 “이질적이고 추상적인 설정”이라 했어도 알고 보면 곡과 뮤직비디오는 꽤 본질적이고 직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제목을 대번에 와닿는 'Love Wins All'로 지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Love Wins All'의 가사는 아이유가 썼고 곡은 서동환이 썼다. 서동환은 아이유의 스페셜 미니 앨범 ‘조각집’에 실린 ‘정거장’의 스트링 편곡과 ‘겨울잠’의 편곡을 담당한 인물로 둘은 구면이다. 물론 아이유와 서동환은 그보다 앞선 정승환의 ‘십이월 이십오일의 고백’에서 이미 소통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승환의 곡에서 아이유가 가사를 썼고 서동환이 스트링 어레인지와 편곡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런 서동환이 이번 아이유 신곡에선 드럼과 베이스, 피아노, 신시사이저, 미디 프로그래밍에 스트링 편곡까지 맡으며 사실상 프로듀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이유와 서동환의 이 조용하면서 거대한 협업 아래 '사랑히'라는 아이유만의 따뜻한 언어가 느린 왈츠에 실려 가고 후반부의 “전투하듯 휘몰아치는 보컬”은 아이유만 들려줄 수 있는 섬세한 팔세토를 더해 애절함이 배가된다.


사실 “필연에게서 도망”치려는 연인의 절박함을 담은 곡의 원래 제목은 ‘Love Wins’였다. 그러나 원제는 지난 1월 19일 ‘Love Wins All’로 바뀐다.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한 이후 성소수자들의 슬로건이 된 'Love wins' 속 이념과 메시지가 퇴색될 것이란 여론 때문이었다. 그 여론 중엔 이런 주장도 있었다. “이성애는 언제가 이겨왔는데 왜 '사랑이 이긴다'를 가져다 붙이는가.” 아이유는 이에 곡의 메시지와 정반대에 있는 개념을 ‘혐오’로 규정하고 “혐오 없는 세상에서 모든 사랑이 이기기를” 응원했다. 물론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내자는 고백의 속삭임과 사랑은 승리한다는 성명적 구호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사랑은 전부(love is all)’에서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love wins all)’로 옮겨가는 코러스의 진화도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무기로 눈에 띄는 적의와 무관심에 승리”하기 위한 곡의 속내를 가만히 보면 이 곡이 성소수자들의 외침에 정말 무례를 저지른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적어도 내 눈에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옷 무덤은 ‘사랑의 무덤’이 아닌 사회의 불편한 시선과 대우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차별의 무덤’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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