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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an 22. 2024

마음만 바쁜 '5세대' 아이돌

‘케이팝’은 영리하면서 교묘한 이름이다. ‘팝’을 붙여 국적 불문의 장르 이름을 취하면서 특정 국적(Korea)을 약자(K)로 써 민족성도 붙잡는다. 즉 케이팝은 한국이면서 세계이고 싶은 국가 산업적 바람에 가까운 장르 아닌 장르다. 그리고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케이팝은 그 바람대로 수직 성장했다. 어쩌면 ‘K’가 글로벌 팝의 심장을 향한 열쇠(Key)의 약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열기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적어도 표면적으론 세계적인 차원에 이르렀다.


케이팝은 아이돌과 사실상 동의어다. 한국의 아이돌이 곧 케이팝의 주체다. 더 정확히는 한국의 기획사들이 기획한 아이돌 그룹들이 결국 케이팝을 대표한다. 그 아이돌계도 어느덧 '5세대'를 맞았다. 5세대. 4세대까진 그러려니 했지만 5세대는 너무 이른 느낌이다. '세대(世代)'가 무엇인가. "같은 시대를 살며 공통 의식을 갖는 비슷한 연령층"을 뜻하는 한편, "아이가 성장해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 기간"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4세대까진 비교적 사전 정의의 전후자를 모두 아우르는 모양새였지만 5세대부턴 뭔가 억지스럽다. 4세대 그룹들과 데뷔 시기에서 길어야 1년 안팎 차이인 신인들에게 굳이 세대 구분이 필요할까. 1년 새 '의식'이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지고 '성장'을 하면 또 얼마나 하겠나. '5세대'라는 말은 확실히 공허하다.


어쩌면 이 서두름은 케이팝에 대한 지구적 환호에 너나없이 뛰어드는 업계의 초조함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무릇 초조하면 얕아지게 마련이고 성공한 걸 반복하고 싶어 하는 법. 이른바 5세대 아이돌 그룹들의 면면을 보라. 'In Bloom'이라는 곡 하나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붙여 송캠프의 진수를 보여준 제로베이스원은 지난 시절 수많은 케이팝 그룹들이 표방한 "찬란하고 불안정한 청춘"을 담아내리라는 포부를 밝히며 데뷔했다. 라이즈와 비슷하게 성장과 도전을 앞세운 루네이트의 다국적 멤버 구성도, 키스 오브 라이프가 내세운 자유와 자아도, 쉬운 음악과 일상을 모토로 "순수와 혼란, 그리고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청춘의 주제를 선택한 보이넥스트도어도 모두 지난 한국 아이돌 계보에서 어느 곳을 펼친들 하나 이상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콘셉트다.


이뿐인가. 아하의 'Take on Me' 오마주 하거나 보이그룹의 조상 같은  키즈   블록의 이름을  제목에 담아 레트로를 챙기는 제로베이스원의 전략은 과거 1세대 때부터 아이돌 그룹을 목격해  중년팬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작금 아이돌 업계의 불문율에 가까운 공식이다. 'Live in the Moment' 같은 루네이트의 올드스쿨 펑키 스타일과 라이즈의 레트로 펑키  'Get a Guitar' 코러스에 숨은 'Another One Bites the Dust'() 그루브 역시  전략과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석연치 않은 기시감이 비단 생각만이 아니라고 느낀  YG  시간 야심 차게 준비한 베이비몬스터의 'Batter Up' 혹평한 NME 글을 보고서다.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리사의 'Money', 트레저의 'Bona Bona' 코러스를 템플릿으로 쓰며 뭔가 색다른 요소를 넣는  잊은 듯하다고  리뷰어 리안 달리는 대략 이렇게 썼다.



신시사이저 브라스 멜로디는 피곤하게 느껴지고 모자란 베이스의 중량감은 곡 전체 사운드를 어정쩡하게 만든다. 이 반쪽짜리 사운드와 힘찬 가사의 결합은 결국 치명적인 균열로 이어져 트랙 전체를 무너뜨린다. 게으르고 형편없는 송라이팅 앞에선 (퍼포머가) 제아무리 노력한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리안은 '타석에 들어선' 베이비몬스터의 데뷔작을 "헛스윙"이라 최종 진단했다.  기대를 모았던 대형 기획사 신인의  성적은 홈런이 아닌 ' 스트라이크'였다는 얘기다. 리안의 혹평은 YG 창작 시스템의 자기 모방 정황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지만  YG 상황이 사실은 '5세대' 급히 부르며 딱히 새로운  없이 어떻게든 새로워 보이길 바라는 아이돌 업계 전반의 상황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끝엔 거대 자본의 그늘 밖에서 정통 케이팝 그룹 형태로 나름 선전을 펼치고 있는 키스 오브 라이프나 '군무' 대신 '합주' 택해 다른 틈을 노리는 QWER 가능성이 자리했다. 마음만 바쁜 '5세대'라는 말장난 같은 구분은 지양하고 케이팝 자체의 내실을 다져야  때다. NME 리뷰는 그런 면에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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