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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25. 2024

불혹에 건네는 옥상달빛의 힐링 팝

[40] 옥상달빛

팀 이름이 그 팀의 음악을 말해줄 때가 종종 있다. 여행스케치, 전람회, 멜로망스, 에어 서플라이. 이들 음악을 들어보면 왜 저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반대로 이들은 이름에서 벌써 그 음악이 들린다. 수수하고 편안하고 달콤하며 벅차다. 옥상달빛(이하 ‘옥달’)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옥상에 올라가 달을 바라본 경험이 있다면 이들 음악을 들어보지 않고서도 그 음악이 어떨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쓸쓸함, 그리움, 행복, 설렘, 슬픔. 14년 전 이들 음악을 처음 듣고 가진 단 하나 느낌은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앞서 말한 감정들이 모두 담겨 있다. 쉽지 않은 코드 진행으로 쉽게 들리게끔, 울고 웃게 하는 그런 음악. 데뷔 EP에 있는 옥달의 ‘옥상달빛’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 이들 음악은 그래서 한마디로 ‘슬픈 웃음’이다. 그들이 쓴 에세이 제목(‘언젠가 이 밤도 노래가 되겠지’)처럼 옥달은 그 웃음을 일상의 순간을 부여잡아 노래를 입히며 짓는다. 둘은 그렇게 독백과 고백, 자조와 위로를 안고 사람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 옥달이 무려 10년 만에 3집을 냈다. 제목은 ‘40’이다. 찌뿌둥하게 시작하는 여섯 번째 ‘옥탑라됴’와 동요 같은 ‘자기소개’에서 밝히듯 그 뜻은 나이 ‘사십’이다. 뭔가 꺾이는 듯한 나이. 사회와 조직에서 안정된 자리에 오르는 사이 몸과 마음에는 하나씩 잔고장이 나는 시기(강해지고 싶은 이들은 그래서 ‘드웨인존슨’을 떠올렸다). 드라마 ‘허쉬’에 삽입한 ‘당신의 안녕’과 반대의 위로를 담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김윤주가 운영하는 레이블 와우산 소속 음악가 장들레의 곡이다)가 환기시키듯 행복과 불행의 멀지 않은 간격이 보이고 웃음과 눈물이 공존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인생의 절정. 고 이어령 선생의 책 ‘마지막 수업’에서 영감을 얻은 앨범의 백미 ‘약속할게 난 죽지 않아’처럼 필사(必死)하는 인간으로서 아직은 먼 마지막 순간의 손짓도 희미하게 보게 되는 나이, 마흔이다. 옥달의 두 멤버(김윤주, 박세진)가 바로 그 나이를 맞았고 그래서 지은 제목이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농구장, ‘40:40’이라는 박빙의 스코어, 40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 꽤 멀리 와버린 시간과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사이에서 서로 웃고 선 모습을 담은 커버 사진은 세상이 불혹이라 부르는 나이를 풀어놓은 저들만의 방식이리라.


정규 1집 ‘28’ 이후 어느새 12년이 흘렀다. 2집 이후론 10년이다. 두 사람은 30대를 통째로 지나 이번 3집을 발표했다. 물론 그 사이 활동을 쉬었던 건 아니다. 라디오 디제이를 했고 3집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그 디제이를 내려놓은 2023년도를 뺀 나머지 매해에 그들은 신곡들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왜 이리 오래 걸렸나. 아마도 “음악을 쓰면서 점차 할 이야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을 걸로 짐작되는데, 한 인터뷰에서 ‘왜 지금인가’라고 했더니 늘 해온 대로 ‘지금’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김윤주는 밝혔다. 마치 아델처럼 ‘25’라는 곡과 ‘28’이라는 앨범은 ‘서른’이라는 곡과 ‘40’이라는 앨범을 위한 빌드업쯤 됐던 셈이다.



옥달 음악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위로와 휴식이다. 저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들으려 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며 끝내 그들 마음에 힐링을 준다. 네가 내가 되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면서 펼쳐지는 휴식과 위로, 힐링의 삼단 변신 또는 ‘수고했어, 오늘도’나 ‘Blue Night’ 같은 초대받은 오지랖은 옥달을 버티게 한 옥달만의 시그니처다. 이러한 듀오의 가장 본질적이면서 중요한 성향은 “내 얘기지만 너의 이야기라 해도 믿을만한 우리의 초상화”라고 쓴 ‘스페셜 이디엇’의 곡 설명에 정확히 반영되어 있는데, 신작에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던 데뷔 EP 곡 ‘하드코어 인생아’와 정서를 공유하는 ‘다이빙’이나 정말 행복하고 괜찮은 건지 모르겠는 ‘SNS의 우리’를 씁쓸하게 반추한 왈츠 곡 ‘광고’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모두가 알아도 말을 하지 않는 밤처럼” 옥달은 이번에도 쉽고 편안한, 그러면서 은근하게 슬픈 음악을 들고 왔다. 물론 오랜만의 작품이라 해서 기존 발표 곡들을 포함시킨 안이한 싱글모음집 류의 정규 앨범도 아니다. ‘자기소개’의 따뜻한 현악과 트롬본, 반짝거리는 ‘다이빙’의 모던 록 사운드, 러브홀릭이 떠오르는 ‘서른’의 세련된 상념, 옥달이 라디오 DJ 일을 하다 알게 된 칠리(chilly)가 조원선 풍의 시린 온기를 입힌 ‘스페셜 이디엇’, 꿈결 같은 신스팝 세계로 듣는 이를 데려가는 사랑 노래 ‘혼잣말’, 앨범에서 가장 거대하고 깊은 편곡을 시도한 ‘시작할 수 있는 사람’까지. 회전율을 따지는 숨 가쁜 싱글의 시대에 코스요리처럼 느긋한 정규작이 왜 필요한지, 옥달 3집은 37분 여 동안 조용히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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