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영화와 달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예술이다. 방안에서 기타 한 대로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경험은 어쩌면 음악이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짜릿한 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방을 벗어나 스튜디오에서 앨범 한 장을 제작할 때 함께 하는 연주자,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을 감안해보면 음악이란 게 또 마냥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예술이라 단정 지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 때 곡을 쓴 사람은 ‘나’지만 곡을 완성한 주체는 ‘우리’가 된다.
‘콜라보’라는 말이 있다. 협업을 뜻하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의 줄임말이다. 콜라보는 대중음악계에서도 흔한 작업 방식이다. 평소 흠모했거나 가까웠던 아티스트가 다른 장르, 소속사라는 벽을 넘어 음악으로 하나 되는 콜라보의 경우를 대중은 그간 숱하게 목격해왔다. 강인원과 전인권이 소속됐던 70년대 후반 한국 포크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따로 또 같이’ 참여하는 그것은, 혼자라면 힘들었을 결과물을 함께 고민해 이루어낸 아름다운 시너지였다.
지금 감상할 네 곡은 그런 콜라보가 동갑내기 음악가, 업계와 업계, 선배와 후배, 그리고 떠난 자와 떠나보낸 자들 사이에 감행된 사례들이다. 모쪼록 이 곡들을 통해 서로를 딛고 더 높은 곳에 이른 협업의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질주’ 신해철 X 윤상 (1996, 킹레코드)
노땐스는 스물여덟 살 동갑이었던 신해철과 윤상이 1996년에 결성한 전자음악 프로젝트다. ‘질주’는 노땐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인 ‘골든힛트’에 수록된 곡으로, “이게 한국의 사운드다, 해외 것과 비교해 뭐가 부족한지 찾아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작품의 대표 트랙이었다. 분명 노래는 신해철이 부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윤상의 멜로디가 또렷이 스며있다.
‘변화’ 최백호 X 타이거JK (2022,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PNP)
낭만에 대하여 노래한 최백호가 ‘변하는 것에 대하여’ 부른 곡이다. 흥미로운 건 비트가 힙합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인데, 이 낯선 풍경 아래 베테랑 래퍼 타이거JK가 선배에게 직접 힘을 실어주고 있다. 먼 후배의 지원은 과연 노장에게 영감이 됐는지 최백호는 평소보다 더 치열한 열창을 선보인다. “수많은 찰나가 이어져 만들어낸 변화, 그 자체가 인생이다.” 어색할 듯 보인 선후배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남기고 간 진한 깨달음이다.
‘I Want’ 아이브 X 펩시 (2023,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듣기 좋은 멜로디, 부담 없는 비트,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한 영상과 메시지. ‘I Want’는 ‘즐거운(Fun) 음료’라는 펩시의 핵심 가치에 아이브 측이 공감해 이뤄진 기업과 걸그룹의 콜라보였다. “걱정은 잠시 미루고 매일을 축제처럼 즐기자”는 이 들뜬 협업을 두고 아이브 소속사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이훈희 대표는 “브랜드와 정서적으로까지 결합된 사례”라고 자평했다.
‘Somebody to Love’ 조지 마이클 X 퀸 (1993, Hollywood/Parlophone)
1992년 4월 20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7만 2천여 관중 앞에 내로라하는 영미권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모인 건 불과 몇 달 전 에이즈로 삶을 마감한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좋은 무대들이 있었지만 이날 최고의 무대는 조지 마이클이 부른 이 곡이 울려 퍼질 때였다. 나는 이 버전을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부른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와 나원주가 부른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에 버금가는 ‘원곡을 넘어선 커버 곡’으로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