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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온 Aug 22. 2017

전역장교가 바라본 미군의 강함

들어가며


필자는 2013년 후보생 시절

밀리터리 미드, 영화, 그리고 미군의 각종 훈련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면서


도대체 미군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렇게나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이러한 호기심은 소위 임관 자대에서 2년을 복무하는 동안에도 지속되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주제였다.


누구나 뻔하게 답할 수 있는

국방예산 차이 (17년도 기준 16.7배)

실전 경험 유무

모병제 / 징병제

가 아닌,

그 외 영역에서 비롯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글은 미군의 강함에 대한 개인적인 탐구를 담은 글이다.

 

 

# 사례1. 성조기 패치의 의미

 

이제는 SNS 통해  제법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군의 성조기 패치.


성조기 패치를 한 미군

 

미군 군복 어깨에 부착된 성조기 패치는 자세히 보면 방향이 반대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발상인데,  이유는 다음 규정에 잘 기술되어 있다.

 

Army Regulation 670-1 중 일부 :

미국 성조기 패치는 오른쪽 또는 왼쪽 어깨에 부착하되 별무늬가 항상 앞을 향하거나 성조기의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부착하면 군인이 앞으로 달려 나갈 때 성조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연상시킬 수 있다.

 

필자에게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변형된 성조기의 모습보다 '규정의 근거'다.

과거 미군이 국기를 들었던 유래나 전통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다만 Army Regulation 670-1부착  군인 개개인이 얻게 되는 심리적인 효과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남북전쟁 묘사 그림

 

이는 미군의 개인주의, 실용주의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생각된다. 개인주의와 실용주의는 미국의 뿌리 깊은 사상적 토양이다. 개인주의는 건국 초부터 권리장전에 탑재된 핵심 소프트웨어이며, 이는 사회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국가 간 문화 비교를 다룬 유명한 연구에서 미국은 개인지표 부문 78개국 중 단연 1위(Hofstede 문화차원이론). 실용주의(pragmatism)는 미국에서 하나의 철학 사조로까지 발전한 바 있다(W. James, 1907).

 

그렇다면 성조기가 시답잖게 여겨지는가? 그것도 아니다. 당연히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기는 해당 국가의 공동체적인 상징물이다. 다양한 문화 매체를 통해 성조기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성조기 모독 금지 개헌 시도가 최근까지 여러 번 있었다는 점은 성조기의 위상을 잘 드러낸다. 표현의 자유가 미국 내 제일의 가치 중 하나임을 상기한다면 성조기가 얼마나 신성하게 여겨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개인의 심리적 효용을 내세워 국기를 변형했다. 두 문장의 규정 안에 함축된 이 통찰력은 시각 현상이라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들의 의아함을 단박에 꿰뚫는다. 이 왜곡된 성조기야말로 본질에 입각한 미군의 해석인 셈이다.

 

# 사례2. 법안실명제라는 관행


여기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법안실명제이다. 법안실명제는 최근 '김영란법'으로 화두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비교적 늦게 입법된 법안이다(2000년 2월 16일 장복심 의원 발의, 16대 국회부터 적용). 시행 배경은 입법과정에서 개별 국회의원의 책임감을 고양시키기 위함이었다.


미국의 경우, 사실 제도보다는 관행에 가깝다. 연방 법률 표기방식은 일률적이지 않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법안 발의자의 실명을 법률의 정식 명칭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르기로는 1873 Comstock Law에서부터, 독점 방지법인 Sherman Act (1890), 한 때 미국 버전 국가보안법이었던 Smith Act (1940), 엔론사태가 터지고 분식회계를 방지하고자 설립되었던 Sarbanes-Oxley Act (2002), 리먼사태 후 많이 회자된  Dodd-Frank Act (2010)  실명 법안들이 여럿 있다.


이런 미국 입법부의 법안실명제 관행은 개인의 책임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관료제의 핵심을 반영한다. 법안 발의자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이는 법안의 내용과 효과에 대한 그들의 전문 지식과 확신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법률 제정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있는 의사결정을 촉진한다.

 

# 관료제에 대한 고찰


위 두 사례를 통해 다음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관료 조직의 실용성은 개인 단위에서 구현된다.'


성조기 패치 사례는 그 중요성에 대해, 법안실명제 사례는 그 방법론에 대해 말한다.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납득을 하므로 자연스레 후자에 무게가 실린다.


"관료제가 실용적이려면, 조직 내에서 각 개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이는 관료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진단해 봐야 하는 주제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의 경험을 하나의 사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 흥미로운 미군 보고서

 

필자의 군 복무 시절, 미군에 대한 흥미가 있어 인트라넷을 통해 미군에서 발간한 원문이나 번역 자료들을 심심치 않게 즐겨보았다. 대부분의 자료들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① 첫째, 실패에 대해 논의가 굉장히 활발했다. 미군 기관의 발간물들을 보면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실전 경험들을 바탕으로 비판적 분석 및 평가를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류의 글들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② 둘째, 특정 사람을 깐다. 까도 아주 대차게 깐다. 전략 실패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개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단순히 뭉뚱그려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조준사격을 하듯 해당 전략을 구상한(또는 주장한) 인물, 직위까지 낱낱이 언급을 한다. 논쟁을 다루는 번역자료나 원문들을 보면 필자가 읽었을  오죽,  사람들은 그래도 장군을 지낸 사람들일 텐데 만약  글을 읽는다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걱정 아닌 걱정, 연민 아닌 연민이  정도다.

 

가령 2007년 국방저널에 실린 Paul Yingling 중령의 <장성 리더십의 실패>의 글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베트남전에 관한 얘기다.

 

Ex.1
동맹국들의 경험과 대통령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미 장성들은 부대들에게 비정규전을 준비시키지 않았다. 미 육군참모총장 George Decker 장군은  "뛰어난 장병이라면 누구나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다" 고 대통령에게 단언하였다. 케네디의 지침과는 반대로, 미 육군은 베트남에서의 분쟁을 정규전의 형태로 보았다. 1964년 말이 되어서야 합참의장인 Earle Wheeler 장군은 "베트남전의 근본적인 문제는 군에 있다"라고 단호하게 지적하였다. 그러나, 미 육군이 대통령의 촉구에 따라 미미한 편제 조정을 하는 동안에도 미 장성들은 적의 괴멸에 초점을 둔 전쟁 비전인 Andrew Krepinevich의 '육군 개념'에 집착하고 있었다.

 

Ex.2
… 이런 부정적인 전략에 가장 기여한 출판물은 Harry Summers 대령이 저술한 'On Strategy: A Critical Analysis of the Vietnam War'이다. 미 육군대학 교관인 Summers 대령은 베트남전이 패전 원인이 정규전에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육군이 듣고 싶어 하는 교훈'을 주장했다.

 

공론장에서 후배 장교가 선배 장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상상조차 어려운 모습이다.


이런 부류의 글을 읽었을 때 처음 든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낯설었기 때문.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사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여느 학계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논문의 전개였기 때문이다.

 

# 관료제와 개인주의

 

관료제에서 개인주의가 무슨 의미 있느냐는 반론은 충분히 있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관료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주의는 더욱 부각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여긴.  이유는 관료제를 돌아가게 하는 핵심 원리  전문가주의에서 기인한다.


관료제의 꼭대기는 원칙적으로,  기회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다.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특정 혈연이나 연고지에만 한정된다면 그것은 관료제가 아닌 왕정 또는 귀족주의 체제다. 관료제는 , 높은 계급에 대하여 요구하는 필요조건이 있다. 바로 전문성이다. 해당 인원이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었다면 그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개연성에 따라 조직은 개인에게 해당 전문성에 준하는 직급(계급) 부여한다. 만약 상급자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경우, 그에 따라 행동하는 하급자는 불필요한 의사결정 비용을 절감하는 혜택을 누린다. 동시에 상급자는 그에 따른 보상으로 권위가 세워진다. 바람직한 관료제의 모습이다.

 

전문성을 소유하고 발휘하는 것은 언제나 개인이다. 그러므로 관료제에서는 개개인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었는지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에게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필요가 있다. 출처가 명확해야 논쟁이 가능하고 결국 이론이 발전할  있듯이, 개개인의 책임소재가 명확해야 경쟁의 공정성이 보장되고 개인은 두각을 나타내어 인정을 받을  있다.

 

군인은 기술직이다. 중간 계급에서는 전투  보급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알아야 하고 계급이 올라갈수록 가용자원을 활용하는 ()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군대라는 조직은 여타 조직과는 다르게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사람의 목숨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인명의 가치를 고려한다면 군대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전문성은 여타 조직의 것보다 영향력이 훨씬 크다.

 

# 교육사령관이 4성 장군?

 

따라서 군 조직은 전문성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산하 조직과 개인에서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 전반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지식체계에 대한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구하기란, 특히 군대라면 보안 상의 이유 일반인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최상위 부서 또는 직책의 위계를 살펴봄으로써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조직의 인적 자원 배치는 조직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항상 조정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미군의 4성 장군 직위를 나타낸 표이다.

육군만 보았을 때, 4성 장군 직위는 총 6개이고 놀랍게도 그중 하나가 교육사령관이다.

 

미군 4성 장군 정리 도표


# 패전에서 탄생한 육군교육사령부


여기서 우리는 미군의 육군교육사령부의 유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점은 베트남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은 사실상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을 식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징병제 도입으로 조직이 급격하게 팽창한 반면 개인 단위에서의 자질과 전체적인 사기는 형편없었다. 첨단화된 탱크, 대규모 기갑, 헬리콥터, 다양한 방공무기, 향상된 통신수단 등 새로운 무기체계가 도입됐지만 이를 다루는 전술 교리의 발전은 미미했다. 전략과 리더십이 부재했다.


산재한 난제들을 두고 미군은 통합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하는데 이것이 1972년 육군참모총장 Creighton W. Abrams Jr.이 실행한 'STEADFAST 작전'이다. 이 결과로 기존의 미본토육군사령부(CONARC)는 단일 부서로써 관리 역량이 제한적이라고 판단되어 폐지된다. 그리고 그 기능이 이분화되어 육군전력사령부(FORSCOM), 육군교육사령부(TRADOC)가 설립, 각각에 분담된다. 육군전력사령부는 전력운용을, 육군교육사령부는 교육훈련을 맡았다.

 

육군교육사령부의 3가지 Agenda


육군교육사령부(이하 TRADOC)는 다음 3가지 영역 ① 조직 통합, ② 내부 피드백 구조, ③ 외부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교육훈련 기능을 극대화시켰다.


① 조직 통합: 육군교육사령부(이하 TRADOC)는 단순히 기존 부서에서 기능적으로 떨어져 나온 부서가 아니었다. TRADOC은 기존 미본토육군사령부와는 별개로 존재하여 전투발전을 담당했던 전투발전사령부(CDC)를 흡수 통합했다.


② 내부 피드백 구조 도입: 수정된 훈련방법은 전투훈련센터에서 실전적인 쌍방 모의전투를 통해 실험되었고 그 결과는 데이터로 축적되었다. 개발된 전투기술은 휘하의 양성/학교기관에 도입됐고 교육담당자는 훈련생에게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분석에 기반한 수치와 결과를 가르쳤다. 훈련생 개개인이 최신 매뉴얼을 적극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육군훈련평가계획(ARTEP)을 추진하여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③ 외부 협력관계 구축: 교리발전에 관해서는, 공군과 파트너십을 맺고 육군전력사령부 및 독일군과 연계하여 교리에 포괄성, 실전성, 지역성(소련과의 전쟁 염두)이 고루 반영케 했다. 여기에 설립 초 터진 욤 키푸르 전쟁(1973)의 전훈 분석까지 더해, 무기체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휘하 전투훈련센터의 의견도 적극 수용했으니 교리 발간에 총력을 기울였다 할 수 있다.



William E. Depuy 장군


이 모든 과정을 총괄 지휘한 사람이 바로 1대 교육사령관 William E. Depuy 장군이었다. 그는 앞서 기술한 대로 군 개혁에 요구되는 실전적이고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실행하여 베트남 전후 군 개혁 과정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이후 미군이 1980년대 모병제의 안착과 1990년 걸프전쟁의 승리로 이어지는데 주춧돌 역할을 한 인물로 Depuy 장군은 평가받고 있다.

 

육군교육사령부의 위상


Depuy 장군이 체스판 위에서 말들을 사방에서 끌어모아 이리저리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대폭 신장된 권한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TRADOC의 위상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는 상술한 4성 장군 리스트에서 뿐만 아니라 예산 규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TRADOC 홈페이지에 따르면 1년 예산은 80억 달러(한화 9.2조)다. 인력비를 제외한 운영비는 41억 달러(약 한화 4.7조). 중요한 것은 비율일진대, 2016년 기준 미 육군 예산은 1469억 달러(한화 169.5조)이므로 TRADOC이 차지하는 예산 비율은 약 5.4%이다(인력비 제외할 경우 2.8%).


반면 우리나라는 약 1.4% 수준이다('11~'15). 이는 육군국방 분과위원회에서 발간한 <2016~2020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나온 수치로 다음 표와 같다. 육군만의 자료는 아쉽게도 구할 수 없어 국방부 차원의 예산 자료를 인용했다.

 


 

# 1973년과 2008년의 차이

 

물론 TRADOC도 결국 일개 조직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가령 비정규전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8년, 즉 1976년 FM100-5 <작전> 교범이 첫 출간한 지 30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여기에는 2001년 9·11 테러 후 미군이 치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은 앞서 치른 걸프전과는 달리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뒤섞인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1973년(베트남전)과 2008년(아프가니스탄전)은 둘다 비정규전 성격의 전쟁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발간된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주제의 교범에서, 1976년에는 비정규전에 대한 논의를 소홀히 했고, 2008년에는 비정규전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차이는 무엇인가?

 

혹자는 1976년 당시 미국이 냉전체제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가장 개연성 있는 미·소 간 전쟁은 분명 게릴라보다는 핵을 동반한 정규전 양상을 보일 것이므로. 당장 1973년 반발한 욤 키푸르 전쟁이 좋은 선례를 제공했다. 일단 상대하는 적은 정규군이었다. 또한, 고원이 드리운 중동의 전장은 소련과 전쟁을 치를 공간으로 예측되는 서부 유럽 평야지대와 유사했다. 이스라엘의 후퇴에서부터 미국의 개입과 반격, 이 모든 과정은 최신 무기체계로부터 비롯된 재래전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줬고, 실제로 미군은 이에 고무됐다. 그러니 자연스레 정규전 연구가 활발히 후속됐고 논의의 무게추는 비정규전에서 정규전으로 옮겨갔다. 정석적인 답변이다.

 

필자는 답변을 더 단순한 데서 찾는다. 간단하다. 역량 차이다. 전훈 분석 결과를 최신 교범에 반영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특히 그 결과가 패배한 전쟁에서 염출된 것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미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조직의 연구역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었다. 1976년 전까지 비정규전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단적인 반증이 앞서 기술된 Harry Summers 대령의 저서 'On Strategy: A Critical Analysis of the Vietnam War'으로, 이는 교리 발간 6년 뒤 1982년에 발간된 책이다. 그것도 베트남전의 패인을 오판했던. 비정규전에 대한 연구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규전에 대한 방대한 양의 연구과제가 새롭게 등장했다. 미군은 양자택일의 구도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규전 연구로 선회를 했다.


반면 2008년은 기존에 이미 연구가 축적된 상태였다. 2004년 발간된 Thomas X. Hammes 예비역 해병대 대령의 '제4세대 전쟁'이 주목을 받았고 다음 해에는 이라크 전쟁 수행방식을 비판한 H.R.McMaster 대령의 논문이 저널에 실렸다. 군 외부에서도 워싱턴 포스트지, 싱크탱크 RAND, 국회 등 비정규전에 대한 비판과 분석이 나왔다. 이 결 2006년 미 육군과 미 해병대는 비정규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FM 3-24 대반란전(counterinsurgency)' 교범을 발간한다. 당연히 이는 불과 몇 년 내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었다. 당장 교범 발간을 주도한 David Petraeus 통합군연구센터(TRADOC 산하 기관) 사령관만 하더라도, 일찍이 1987년 그의 프린스턴대 박사학위 논문 (The American military and the lessons of Vietnam : a study of military influence and the use of force in the post-Vietnam era)을 통해 베트남전의 비정규전 양상을 연구했었다.


이러한 예는 전문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시사한다. 돈으로 무기는 언제든지 살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무기를 어떻게 운용할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과 체계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역량에 관한 것이고, 곧 전문성이다. 전문성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창출하는 것이고, 이 과정은 장기적 관점과 시간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 조직에 대한 리더의 지향점 - 학습 조직

 

한정적인 자원은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하게 만들지만 문제 해결이라는 근본적인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의사결정권자는 이 단순함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권자는 편의의 이점을 배제해서라도 대안을 조달하는 자원에 관심을 갖고 관리, 개발해야 한다. 이것이 조직이 최적의 결과에 근접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미군이 베트남 전쟁 이후 개혁에 성공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Depuy 장군과 그의 후임자들이 확립한 지식관리체계에 의해 군 조직은 학습조직의 성격으로 차차 변모했다. 전문지식을 갖춘 군인 개개인의 지적 교류가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패러다임 구축, 교육사령부의 가장 큰 공헌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훗날 Donn A. Starry 장군은 2대 교육사령관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교리가 나머지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I believe doctrine should drive everything else). - Donn A. Starry"


# 대한민국 군조직을 위한 제언


1. 개방성 제고


조직 내에서는 반드시 논쟁과 건전한 비판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다양성이 전제돼야 한다. 군의 다양성 문제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육사를 지적한다. 고위직에서 출신성분에 의한 편중이 극심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 육사는 그저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육사는 애초에 고위급 장교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정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육사 선후배 간 비판이 불가능한 경직성일 것이다. 이 부분은 조직의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군인-민간인의 구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육사-비육사 구도는 오히려 매우 지엽적인 문제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군대 내 민간인력 비중이 놀라울 정도로 낮다. 현재 우리나라의 현역군인 대비 국방민간인력 비율은 '15년 기준 고작 5.14%다(2016~2020 국가재정운용계획 국방 분야 보고서). 다른 선진국의 경우, 미국 47%, 영국 43%, 독일 45%, 프랑스 32%, 일본 9% 수준이다(국방 민간인력의 운영 원리와 발전 방향, 2004, 조영진).


국방이 현역 군인의 전유물이 되는 것은, 군이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생각해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또한 군대에 의한 국방의 일방적인 점유는 그 자체로 거대한 사일로를 구축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국민의 무관심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가령, 민의를 대표하는(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국회를 보자. 20대 국회에서 국방위에 지원한 국회의원은  3명뿐이었다(이종명, 김중로, 김종대 국회의원). 국방위 정원이 17명이므로, 나머지 14명은 타의에 의해 위원직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2. 간부 교육 인프라

 

군이 학습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군 내의 간부 개개인도 지적인 갈증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는 초기 양성교육 과정과 이후 지속적인 보수교육 및 앞서 언급한 역량개발 프로그램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에 연계되어, 지식정보가 활발히 공유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지적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계속해서 확장시켜주는 것이 교육기관과 프로그램의 역할이다.


특히 저널이나 각종 발전지, 전투실험 결과 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는 매우 절실하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관련 자료가 있는 인트라넷 사이트 내 각 게시물 조회수는 고작해야 두세 자리 수준이었다. 육군 간부 수가 10만이 족히 넘는다는 점에서 구우일모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다.


분명 육군 각 산하 기관에서는 나름의 정보를 다양하고 부지런히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검색 기능 툴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자료들이 산재되어 축적되고 있으니, 정보 유통 측면에서 그 비효율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정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간부가 태반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움만 남긴다.


# 꼬리를 움직이게 하는 패러다임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들어 추진력을 얻듯이, 조직도 개인 간 상호작용이 활발해야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다. 패러다임이 생산해내는 결과물이 다양해질수록 탑 티어에 위치한 전문가의(리더) 옵션은 많아지고 최적의 결정에 도달할 확률은 높아진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중요한 때이다. 일반 소총병 수준에서조차 새로운 수준의 무기체계 도입되고 있으며 과학화된 장비의 활용으로 중대 단위까지 DB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인력 감축은 불가피한 선택이며 실제로도 그럴 계획이다. 하드웨어의 전격적인 변화에서는 이를 유지·관리하는 소프트웨어가 반드시 부각된다.


우리나라 군대는 조직의 발전 속도 측면에서 기업, 교육기관에 이미 추월당한 지 오래다.

머리는 꼬리가 세차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존경하는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관료제란 지식으로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 막스 베버

 


 

참고 링크 및 문헌

1.       http://geerthofstede.com/research-and-vsm/dimension-data-matrix/

2.       http://www.lgeri.com/uploadFiles/ko/pdf/man/LGBI1427-25_20161012135202.pdf

3.       http://www.law.go.kr/lsEfInfoP.do?lsiSeq=143043#

4.       http://dbr.donga.com/article/view/1203/article_no/7849

5.       http://www.tradoc.army.mil/historian/pubs/victory%20starts%20here.pdf

6.       http://www.tradoc.army.mil/SitewideContent_TRADOC/Docs/TRADOCCommandOverview.pdf

7.       http://usacac.army.mil/cac2/cgsc/carl/download/csipubs/SelectedPapersofGeneralWilliamDepuy.pdf

8.       https://fas.org/sgp/crs/misc/R44762.pdf

9.     미국 법전의 편재방식과 법령정보의 검색인용방법, 신영수, 2010

10.   The Evolution of US Army Tactical Doctrine, 1946-76, by Major Robert A. Doughty

11.   The Army Transformed: The U.S. Army's Post-Vietnam Recovery and Dynamics of Change in Military Organization, by Suzanne C. Nielsen

12.   미국의 대반란전(Counterinsurgency) 전략 전개와 한국 국방전략에의 함의, 박영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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