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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Mar 24. 2021

쿠바에 왔으니 살사를 배워볼까요?

남미 여행기 #9. 춤춰라

트리니다드에서 첫 아침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어디를 둘러볼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해변에 갈 계획이었지만 오전에는 할 일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다녀간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방명록을 읽으며 상의했다.


그러던 중 살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

“살사 배워볼까요?”

나는 A와 C에게 조심스럽게 살사 수업을 제안했다. 살사의 본고장인 쿠바에 왔으니 한번 배워보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던진 제안이었다.


C는 의외라는 듯 나에게 물었다.

“H 춤 잘 춰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해보는 거죠.”

사실, 살사가 뭔지도 잘 몰랐다. 마지막으로 춤이란 걸 춰 본 게 언제인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했다. 춤을 춰본 일 자체가 오래전 일이라 내가 과연 관절 마디를 움직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왠지 재밌을 것 같았다.


다행히 A도 살사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C는 우리의 수업을 구경하기로 했다. 우리는 곧바로 호스텔 주인아저씨에게 수업 예약을 부탁했고, 아저씨는 속전속결로 예약을 해주셨다. 그렇게 그 날의 할 일이 정해졌다.


아침을 먹고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소화를 시켜야 한다는 핑계를 더해 살사 교습소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선생님이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카리스마 있는 레게머리 남자 선생님이었다.


“반가워요. 살사 처음 배우는 거예요?”

“네 처음이에요.”

“릴랙스 하고 준비해주세요. 곧 시작할게요.”

선생님이 상체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몸풀기의 바른 예시를 보여주었다.


막상 몸을 움직이려니 살짝 쑥스러워진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재밌게 해 봅시다’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는 결의를 다지며 파이팅 동작을 취해 보였고, A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때부턴 부끄러운 감정을 내려놓고 오로지 살사에 집중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능숙한 솜씨로 우리를 살사 리듬 속으로 데려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둘. 셋.


수업은 기본 스텝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정신없이 진행됐다. 한 스텝을 두세 번 연습한 다음에 바로 다음 스텝을 배웠다. 선생님은 쉴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둘. 셋.


진도에 따라가려다 보니 모든 집중력을 쏟아야 했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스텝은 더 복잡해졌고 외워야 하는 동작도 늘어났다. 응용 동작이 더해지고 순서가 복잡해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둘. 셋.


나는 실수를 연발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그런 나의 실수를 상관치 않았다. 살사는 점점 흥을 더하며 쉬지 않고 이어졌다. 실수도 신나게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신이 나는 수업이 계속됐다. 나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살사인지 실수인지 모르겠는 춤을 췄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둘. 셋.


온 정신과 체력을 세 박자에 집중하다 보니 순식간에 한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배운 모든 동작을 이어서 춤을 춰보고 수업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못 알아들었겠지만 나는 나에게 말하듯 한국말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우리의 댄스 타임은 끝이 났다.


“재밌었어요?”

수업이 끝나자 C가 내게 소감을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엄지를 추켜올려 보였다. C는 자신이 지켜보기에도 내가 즐거워 보였다고 말하며 엄지로 화답했다.


나중에 C가 촬영해준 영상을 보니 나의 동작은 정말 형편없었다. 엉거주춤한 내 몸놀림은 선생님의 자연스럽고 유연한 동작과 거리가 멀었다. 살짝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살사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다리 동작은 엉성했지만, 눈코 입엔 웃음기가 차오르는 시간이었으니까. 살사를 배우는 동안은 즐거웠으니까. 그저 만족스러운 댄스타임이라 결론 내렸다.


‘쿠바에 왔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핑곗거리가 없었다면 아마 난 평생 살사를 춰보지 않았겠지. 이런 재밌는 댄스타임을 못 가졌겠지.


생각해보면 쿠바는 참 간단한 논리로 내게 춤바람을 일으켰다. 여행 왔으니 춤을 한번 배워보라며. 여행자니까 괜찮다며. 그렇게 못 추는 춤을 추게끔 만들었다.


사실은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 즐길 준비가 되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춤을 못 춘다고 해서 춤을 출 때 신나지 않는 건 아닌데. 춤의 모양새는 그리 중요치 않은데. 이때까지 흔들고 즐기지 못한 건 내가 즐길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을 여행처럼 채우고 싶다. 마음껏 즐길 준비를 마친 여행자처럼.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둘. 셋. 춤을 추듯이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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