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에서 성도로 가는 길
나는 뺀질뺀질한 사람이다. 교회 안에서도 늘 그랬다.
사춘기가 되면서 교회 프로그램이 대중문화에 비해 촌스럽다며 싫어했고, 청년이 되고서는 교회의 가르침이 진보적이지 못하다며 불만했다. 밥벌이를 시작하면서는 교회가 타락했다고 비난했고, 리더가 되거나 직분을 갖게 되면서는 교회의 제도나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며 불평했다.
‘주님. 한국에는 치킨집보다 교회 숫자가 더 많다고 하던데요. 대체 왜 제대로 된 교회는 없는 건가요?’ 이러면서. 좋은 교회를 만나게 해 달라 기도하고. 늘 가슴 한 구석에 교회를 탓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터치 몇 번만 하면 바로 재생이 되는 온라인 예배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낯설었지만 흥미로웠다.
‘타교회의 예배를 드리는 게 정말 쉽고 간편해졌잖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환영한다고 박수치거나 세워두고 축복송을 불러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좋았다. 조용히 존재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매주 매 시간마다 다른 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이곳저곳의 예배를 시청하고 다니는 유령신자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거나 기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아주 담백하게 입장했다 퇴장하면 되니까. 덕분에 참 편해졌다 생각하며 콘텐츠를 소비했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통찰력 있는 설교도, 뼈 때리는 듯한 날카로운 설교도, 따뜻한 울림을 주는 설교도 다 은혜롭게 들렸다.
넷플릭스보다 기독교 영상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말씀에 대한 열성은 그래도 꽤 훌륭한 평신도라 자평하며 성경도 더 많이 읽었다. 그렇게 나는 인터넷 쇼핑처럼 교회 쇼핑을 하며 반년가량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 방역 지침이 해제되고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는 게 익숙해져 갈 때쯤,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질주하는 내 모습. 정말 별로네. 성경을 알고 싶다면서, 말씀대로 살겠다면서,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쏟지 않고 있잖아.
'이게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일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창조주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영상 예배를 시청 중인 사람 숫자 '1'이 되어버린 한 신자. 그는 함께 찬양하는 기쁨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예배 공동체를 향한 기도가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제야 공동체를 이루는 게 왜 필요한지 겨우 조금 알 것 같았다. 신앙공동체로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공통된 말씀을 읽고, 성찬을 나누고, 목소리 높여 찬양을 부르고, 중보기도를 하고, 전도에 힘쓰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조용히 속삭이는 혼잣말을 했다.
신자(Beliver)가 아닌 성도(Saint)가 되어보자. 택함 받은 백성이니까. 교회를 신앙의 터전 삼아 함께해야지.